엑스터시에 이르는 길

[영화 되돌리기] 카마수트라
엑스터시에 이르는 길

‘1990년대 말 라틴 문화가 미 전역을 달군 이래 가장 눈에 띄는 민족 현상’.

얼마 전 한 미국 시사 전문지에서는 미국 내에서 불고 있는 인도문화 열풍을 이 같이 표현한 바 있다. 동양과 서양 문화의 장점을 결합시킨 인도 문화가 미국 대중 문화 산업 속으로 깊이 파고 들면서 미국 내 ‘인도 재발견’ 움직임에 불을 당긴 것이다. 특히 ‘발리우드’라고 불리는 인도 영화는 전세계 영화 시장에서 헐리우드 못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국내 관객들에게 인도 영화는 낯설다. 하지만 영화 ‘식스 센스’의 감독 샤말란 감독이나 ‘슈팅 라이크 베컴’의 거린더 차다 감독을 생각하면 그리 생경하지만도 않다. ‘몬순 웨딩’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라 나이르 감독도 인도 영화 산업의 대표 주자다. 특히 그녀의 전작 ‘카마수트라’는 서구인들이게 일종의 처녀지와도 같은 인도의 매력적인 풍광을 담아 내고 있어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는 서구인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다.

영화 ‘카마수트라’는 아마도 그 제목만으로 관객을 흥분시키기 충분할 것이다. 동서고금의 3대 성전(性典) 중 하나인 카마수트라. 인도의 방술서인 이 책은 3~5세기 인도의 현자 바차야나가 썼다고 전해진다. 이 책에는 중국의 방술서에 나타난 성의 기교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에 등장하는 유혹의 기술이 혼합되어 있다.

그렇다면 영화‘카마수트라’에 바차야나가 말하는 성애의 기교나 교접의 방법, 애무의 테크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놀라운 방중술이 영화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쉬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미개척지로 불릴만한 인도 땅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교합은 간혹 여느 에로 영화보다 아찔하다. 이는 엑조티즘에서 에로티시즘을 발견하는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16세기 인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 네 명의 사랑 이야기이다. 인도 공주 타라는 자신의 몸종 마야를 늘 질투하며 자라왔다. 평범한 숫처녀인 자신에 비해 타라는 육감적인 몸매에 섹시한 마스크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나이부터 사랑의 기술(일명 카마수트라)를 연마해 남성을 만족시켜야 하는 궁중 여인에게 태생적으로 남성을 홀릴만한 자태를 타고난 타라가 맘에 들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타라의 정략 결혼 상대자 라신 왕은 첫 눈에 마야에게 반해 신부와 첫날밤을 보내기도 전에 마야의 몸을 범하고 만다.

이 일로 왕궁에서 ?겨난 마야는 궁중 조각가 제이 쿠마를 만나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만 이들의 사랑은 엇갈린다. 사랑에 상처받은 마야는 본격적으로 카마수트라 연마에 돌입해 라신 왕의 후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엇갈린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이 네 명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간혹 혹자는 여성이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치부된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성차별 영화로 낙인 찍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마수트라는 오히려 이전에 금기시 된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적이고 인식하고 남녀의 결합을 종교적인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점에서 남녀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성교육 지침이다. 즉, 남녀 모두 엑스터시에 이르는 길, 이것이 바로 카마수트라 정신이다. 하지만 영화는 수천 가지 체위와 순서를 이야기하는 카마수트라보다 더 중요한 점을 말하고 있다. 유혹의 기술을 허물어트렸던 그것, 바로 사랑이다.

그 어떤 다양한 체위도 그 어떤 현란한 테크닉도 필요 없게 만드는 사랑. 사랑이야말로 최고의 엑스터시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1-12 13:19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