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혹세무민


변호사로서 필자가 수행하고 있는 어떤 형사 사건에서, 상대방인 검찰이 풍수 지리를 한다는 역술인을 증인으로 신청하였다. 사건 수사 기록에 등장하지 않은 사람인데다, 지난 2년여 동안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의외의 인물이었다. 직업마저 특이하여 변호인으로서 그의 증언을 탄핵하기 위하여 어떻게 반대 신문을 하여야 할지, 재판을 앞 두고 한 동안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에, 대학 동기생이자 함께 고시 공부를 하였던 친구 중에 지금은 모 법원의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생각이 났다. 그는 시험 공부할 때부터 그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더니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분야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있는 사람이다. 그러자 그 친구의 선생님도 생각났다. 필자는 그 친구를 통하여 그 선생님을 소개 받아 몇 년 전부터 그 분과 내왕을 하여 오고 있었다. 올해로 85세인 분이다.

재판 날 직전 주의 토요일 오후, 필자는 시골에 계신 그 분을 찾아 뵈었다. 증인을 서겠다는 사람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핵심적인 몇 마디를 알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러나 그 어르신은 “풍수지리를 한다는 사람이 법정에 선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가 진정한 풍수지리가가 아님이 자명하니, 무얼 더 물어볼 것이 있겠느냐”며 대답하기를 거절하였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돌아온 뒤 생각하니 아무래도 불안하였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그 어르신을 찾아갔다. 드디어 그 분은 말문을 여셨다.

우선, 그 사람에게 ‘기취지처유이인불지지(氣聚之處有而人不知也)’라는 말의 뜻을 아느냐고 물으라 했다. 형식적으로는 세상에는 기가 모여 있는 땅이 있으나 보통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뜻이지만, 실직적으로는 기가 있는 곳을 알리는 것은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풍수지리가로서의 으뜸가는 본분을 지키라는 의미라는 것이었다. 즉, 맨 먼저 그 사람이 풍수 지리가로서의 본분을 알고 있는지를 물어 보라는 취지이었다. 나는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그 사람에게 이를 물었으나 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었다.

다음으로, 어르신은 그가 사용하고 있는 패철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에 대하여 물으라했다. 패철은 9층으로 된 것을 봉침이라 하고, 8층으로 되어 있는 것을 외반봉침, 6층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인반중침, 4층으로 되어 있는 것을 내반정침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향상수구법에 사용되는 패철은 8층 이상으로 된 패철이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패철이 내반정침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는 향상수구법을 안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식으로, 필자는 친구의 은사님으로부터 풍수지리학의 수준 정도를 알아 볼 수 있는 핵심적인 질문을 열 가지 정도를 얻어 듣고 재판에 임하였다. 그리고 앞 서 예로 든 서너 가지의 질의 응답을 주고 받았는데도, 그가 엉터리이거나 또는 아주 수준이 낮은 풍수지리가임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로부터 자문을 받은 사람이 제대로 자문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 현혹된 것이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부터 자문을 받은 이는 엉터리 자문을 근거로 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현혹시켜왔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오는데 왠지 서글퍼졌다. 마치 말만 잘 하는 레슨프로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황당한 교습내용을 가지고 순진한 골퍼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장면을 볼 때 느꼈던,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도 그 같은 일이 자행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서글퍼졌다.

소동기 변호사ㆍ골프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 2005-03-08 19:15


소동기 변호사ㆍ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