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女 섹스男

[영화 되돌리기] 너 어느 별에서 왔니
대화女 섹스男

“남자라고 살림 못하라는 법 있나?”

드라마 ‘불량주부’에 등장하는 당당한 남자 주부(손창민)가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녀 역할이 달라진 ‘불량 주부’뿐만 아니라 요즘 드라마 키워드가 ‘여성 파워’임을 실감케 할 만큼 강한 여성상을 강조하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다.

이렇게 드라마에서까지 여권 신장을 부르짖고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모든 생물학적 과학적 자료들은 여성과 남성의 간극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운전할 때 쓰는 뇌 남녀 다르다’‘여자는 음식, 남자는 성에 대해 꿈꾼다’‘남녀는 유머도 다르다 ’는 등 흥미 있는 뉴스거리에 꼭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이런 남녀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차이를 제대로 알아야 부당한 차별이 시정된다. 남녀가 각각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말하는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남녀 모두가 한 번쯤 읽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끝냈다면 영화 ‘너 어느 별에서 왔니(What planet are you from)’로 넘어 가자. 이 영화는 섹스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집중 조명한 것이 우선 볼거리다.

영화는 외계인 해럴드 앤더슨(게리 샌드링)이 자신의 종족을 퍼뜨리고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 지구에 투입되는 데서 시작한다. 무조건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해야만 자신의 행성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 앤더슨. 그는 일부일처제에 만족하지 않고 무조건 섹스를 많이 하려는 남성의 성욕을 상징한다. 이것이 영화의 포인트다.

외계 생명체인 주인공은 사실 지구상의 평범한 남성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에로틱한 장면에서는 앞뒤 안 재고 흥분하고, 흥분하면 무조건 하려하고…. 부인과 싸우는 순간에도 성욕으로 가득 찬 앤더슨의 모습은 여자들이 그토록 이해 못하는 남자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앤더슨이 이해 못하는 여자의 모습은 어떨까. 가라고 해놓고서 막상 가면 화내고, 무조건 대화하자고 보채고, 말을 애매모호하게 하고, 막무가내로 자기 말에 공감해주길 바라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구에 투입되기 전 앤더슨은 이러한 여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학습을 한다.

학습 과정에는 여성의 말에 ‘응, 응’하고 공감의 뜻을 나타내는 추임새를 하고, 여성의 머리 모양이나 구두를 칭찬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실전은 연습과 다르다. 앤더슨은 지구 여성 수잔(아네트 베닝)을 만나 결혼하면서 지구상의 남녀가 겪는 보통의 갈등을 경험한다.

지구 정복의 야망을 버리고 일부일처제에 안주해버린 앤더슨과 도무지 대화가 안 통하는 외계인에게 남편과 아버지의 의무를 짊어지게 해야 하는 수잔. 하지만 아무리 달라도 한 지붕 밑에서는 결국 한 가족이 된다. 이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좁히고 이질감을 해소 시켜 주는 건 바로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다.

‘사랑하는 여자와 리모콘을 공유하라’라는 말이 있다. 앤더슨에게 리모콘을 던지며 대화를 요청하는 수잔처럼 부부 싸움에 애꿎은 리모콘만 박살 나는 경우가 많다. 리모콘은 조그만 물건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취향을 공유하려는 이해심과 배려심이 담겨있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가 비록 오락영화라고 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4-26 15:34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