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호랑이와 토끼


1953년도 전영오픈 경기가 열린 곳은 카누스티(Carnoustie)챔피언십코스였다. 당시 우승자는 벤 호겐이었다. 그곳에서는 미국에서 백 티 또는 챔피언 티라고 일컫는 티잉그라운드 부분을 타이거 티로, 프론트 티를 래빗 티로 부르고 있었다. 처음으로 그곳에서 라운드를 한 벤 호겐은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라운드를 하는 동안 스코틀랜드 해안 특유의 관목들이 정글처럼 무성하게 우거져 있는 주변을 보면서 그곳에 야생 토끼들이 자주 들락거리고 호랑이가 살고 있어 그렇게 부르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우승컵을 안고 뉴욕에 돌아온 그에게 보비 죤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본래 골프는 오늘날과 같은 스트로크플레이가 아니라 매치플레이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핸디캡이라는 제도가 정착되기 아주 오래 전 영국에서는 초보 골퍼와 프로급 골퍼가 매치플레이를 하는 경우 핸디캡대신에 초보는 30내지 50 야드 전방에서 티샷을 하게 함으로써 형평을 유지하려 했다.

그렇지만 서툰 골퍼가 토끼 뜀 하듯 조금씩 그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이에 뒤에서 티샷한 능숙한 골퍼는 마치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듯 순식간에 초보를 앞질렀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초보 골퍼가 티샷하는 곳을 래빗 티, 프로급 캡퍼가 티샷하는 곳을 타이거 티라고 부른다. 이런 까닭에 영국의 골프만화에는 호랑이와 토끼가 자주 등장하고, 골프 기술서에서는 “토끼가 호랑이가 되기 위해서는”또는 “토끼에서 호랑이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골프장 한 개의 홀은 크게 티잉그라운드, 스루더그린, 해저드, 퍼팅그린 등 네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골프규칙에는 티잉그라운드에 대해 ‘플레이할 홀의 출발장소를 말한다. 2개 티 마크의 외측을 경계로 전면과 측면이 한정되며 측면의 길이가 2 클럽 길이인 장방형 구역이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국과는 달리 보통 티잉그라운드를 3분하여 레이디 티, 레귤러 티, 챔피언 티라고 부르거나 레드 티, 화이트 티, 블랙 티라고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요즘 새로 만든 골프장들에 가보면 티잉그라운드가 여러 곳에 나뉘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핸디캡을 대신하였던 티잉그라운드의 나눔이 핸디캡 제도가 정착된 오늘날에 와서 더욱 세분화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티잉그라운드는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전략적 요소로 취급되지 않았다. 1900년대에 들어서야 골프장 설계가들이 형태적 측면에서 티잉그라운드의 새로운 시대를 펼치기 시작했다. 티잉그라운드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로버트 트렌트 죤스라는 설계가에 의해서 급격히 변신했다.

그는 페어웨이 한 가운데 있는 함정들이 롱히터들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에서 벗어나 오히려 극히 일부의 고도 기술을 가진 골퍼들에게만 효험을 발휘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러한 장치들이 모든 수준의 골퍼들에게 동일한 도전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새롭게 티잉그라운드를 조성했다. 그 후 골프장 설계가들은 위치를 여러 곳으로 하거나 모습을 다양화 시켜 기술수준이 천차만별인 모든 골퍼들이 한결 같은 도전심을 가질 수 있도록 티잉그라운드를 더욱 변형ㆍ발전 시켰다.

입력시간 : 2005-05-0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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