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기의 골프이야기] 박세리 선수에게


한 달 간의 긴 휴식을 끝내고 재기에 나섰던 박세리 선수는 프랭클린 아메리칸 모기지 챔피언십 대회에서 첫날 81타, 둘째날 73타를 쳐서 컷오프 됐었다. 그리고 박세리는 바로 다음주에 열렸던 미켈롭울트라오픈대회의 공식기자회견에서 디펜딩챔피언으로서 “온통 골프뿐인 생활에 지쳤다”고 털어놓으면서 “골프가 아닌 다른 즐거움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뉴스매체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박세리가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했다고 한다. “LPGA투어에 입문한 이후 7년간 오로지 골프에만 매달렸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도 다들 골프 얘기만 했고 쉴 때는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때론 스키나 산악자전거를 타는 등 뭔가 즐겁고 신나는 취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후회하기도 했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 입회야말로 최종목표였다.”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225야드에 불과한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에, 페어웨이 안착률과 온그린 확률은 나란히 50%, 퍼팅수는 무려 34번, 그 결과 버디는 1개에 그친 반면 보기 7개에 더블보기 1개. ‘골프여왕’ 박세리의 초라한 스코어카드 내용이었다.

이러한 박세리선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LPGA투어에 진출한 후 승승장구하던 박선수가 잠시 멈칫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세간에는 박세리선수가 이제 배가 불러서 골프를 게을리 한다느니 홍콩출신의 중국계 어떤 남자와 연애를 하느라 골프를 등한시 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럴 때 필자는 모일간지에 박선수에게는 휴식이 필요할 뿐 비난 받을 점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필자는 그 때 과년한 여성으로서의 박선수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다는 일은 오히려 축하할 일이라고도 말했었다. 왜냐하면, 박세리선수는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 때가 되면 이성 친구를 만나 행복을 누려야 할 인간이며 따라서 골프에 있어서의 성취는 박세리선수의 삶에 있어서 궁극의 목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추구의 수단이요 방편에 불과하리라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박세리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입회 하는 것이 최종목표였는데 그것이 달성되고 나니 허탈감에 빠졌고 이제 자신에게 있어서 골프가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취지의 감회를 쏟아놓고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는 것이 최종 목표이었다는 박선수의 말의 의미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필자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박선수가 골프를 하는 궁극의 목적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함에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변호사인 필자가 훌륭한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한편, 박세리선수가 골프에 몰입하였던 자신의 지난날의 삶에 대하여 푸념을 늘어놓으며 지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때마침 유럽축구연맹챔피언스리그 본선 4강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후 귀국한 이영표선수가 이런 말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즐기는 것도 직업이 되면 싫다 잖아요. 그런데 전 아직 재밌으니 다행이에요. 팬들께 즐거움까지 줄 수 있다면 더 바라는 게 없죠. 그게 제가 축구를 하는 이유예요. ”

필자는 박세리선수에게 있어서의 골프는, 이영표선수에게 있어서의 축구와 똑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박선수,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시오. 아니 골프를 더욱 사랑하고, 심지어 골프에 대하여 감사하도록 노력하시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와 명예를 당신에게 가져다 준 골프가,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니, 이 무슨 망언이란 말이요. 하루빨리 명예의 전당입회 이후의 당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그 속에서 골프가 어떤 몫을 담당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시오.

입력시간 : 2005-05-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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