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19승으로 독주체제 구축, 김응용·김재박과 견줄만한 기록선수단 개혁 이끌며 성공적 지도자 데뷔, 프로야구 활력소 역할도

'감독'선동열, 명장 반열에 오르다
월간 19승으로 독주체제 구축, 김응용·김재박과 견줄만한 기록
선수단 개혁 이끌며 성공적 지도자 데뷔, 프로야구 활력소 역할도


프로야구가 태동한지 올해로 24년째. 선동열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뒤 MVP 3차례, 골든글러브 6차례를 수상하며 ‘국보’로 군림했다. 또 96년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 일본에서도 특급 선수로 인정 받았다.

선동열은 지난해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김 감독이 사장으로 취임하자 선동열은 삼성 사령탑에 올라 올 시즌을 맞았다.

선 감독의 ‘초보운전’은 기대 이상이다. 삼성은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선두권으로 뛰쳐나가더니 5월엔 19승6패를 기록,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월간 19승은 김응용 감독이 해태와 삼성에서 3차례, 김재박 감독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2차례밖에 이루지 못했던 진기록이다.

스타의 고정관념을 깼다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자마자 김응용 김재박 감독과 견줄 만한 기록을 세운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최고 명장 계보를 이을 가능성을 증명했고, 스타 부재에 시달리는 프로야구 전체에도 활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 선 감독이 이끄는 팀이 야구 전체를 키울 수 있는 삼성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선 감독이 지난해 지도자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여러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선수로서의 기량과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엄연히 별개인 데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들이 자만에 빠져 지도자로서 실패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호남 연고인 해태의 상징이었던 선 감독이 영남 연고인 삼성의 사령탑에 앉았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그러나 선 감독은 비상한 머리와 남다른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고, 빠른 시간에 삼성을 개혁해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스타 출신 지도자의 약점은 승부를 쉽게 본다는 점이다. 자신이 선수 시절 뛰어난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했기 때문에 감독이 되어서도 비슷한 영화를 누릴 것으로 착각한다. 자신만 못한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프로야구 스타 출신 중 감독으로 성공한 경우가 김재박 감독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 감독은 선수 때와는 전혀 다르게 야구를 하고 있다. 선수 시절보다 열심히 상대를 분석하고 연구한다. 결국 야구는 선수들이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은 뒤에서 도와줄 방법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다. 김응용 사장이 “선 감독은 선수 때는 게을렀지만 지금은 아주 부지런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 감독의 장점은 이해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선 감독은 탄탄대로만을 걸어오다가 96년 주니치에 진출한 뒤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야구를 못한다는 이유로 감독과 구단으로부터 멸시를 받았고, 2군 생활을 하며 눈물도 삼켜봤다. 절치부심 끝에 1년 뒤에는 일본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눈부시게 재기했다.

최정상에 올랐다가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선 감독은 스타 선수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고, 무명 선수라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름값에 안주했던 스타들이 긴장하고 있고,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깜짝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선 감독은 출신과 연봉을 떠나 누구라도 똑같이 경쟁하며 땀을 섞는 삼성의 ‘통합’을 이뤄낸 것이다.

삼성의 팀컬러 바꿨다
선 감독은 빠른 시간 내에 선수단을 장악한 뒤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했다. 선 감독은 해태 시절 삼성을 숱하게 이겨봤기에 삼성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강타자를 많이 배출했다. 이만수 김성래 양준혁 이승엽 등 시대를 대표했던 타자들이 득세했던 탓에 삼성의 팀 컬러는 화끈한 공격야구였다. 삼성 야구는 이길 때 홈런이 펑펑 터지면서 시원한 쾌감을 줬다.

그러나 힘을 앞세운 삼성 야구는 견고하지 못해 한국시리즈 등 큰 경기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 에이스가 등판하면 방망이는 침묵했고, 수비와 작전 능력이 떨어져 팽팽한 승부에서 밀리곤 했다. 삼성이 항상 최고의 멤버들을 앞세우고도 2002년 우승 전까지 단 한번도 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이유다.

선 감독은 “홈런치고 이기는 ‘뻥야구’는 하지 않겠다. 대신 투수력과 수비력을 강화해 점수를 내주지 않는 팀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선 감독은 수비가 약한 양준혁으로부터 1루수 미트를 빼앗아 지명타자로 돌렸다. 대신 3루수 김한수를 1루에 세웠다. 또 박진만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10년간 무명으로 지낸 김재걸을 전격 발탁해 수비 강화에 성공했다.

선 감독이 투수 출신인 만큼 투수들에게 쏟는 기대와 관심은 대단하다. 용병 2명을 모두 투수로 뽑아 마운드 운용폭을 넓혔고, 이미 지난해 특급으로 키워놓은 배영수와 권오준을 잘 관리해 올해도 눈부신 성적을 내게 도와주고 있다. 패전처리 요원에 가깝던 전병호를 과감하게 선발진에 끼워넣기도 했다.

선 감독은 투수 운용이 우승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다. 정확하고 합리적인 투수교체로 그날 경기를 잡고, 장기적으로 투수들의 어깨를 보호하면서 한국시리즈 때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선 감독은 포스트시즌에 맞춰 팀을 운용하고 있다.

김응용 김재박을 넘는다
삼성이 내고 있는 성적으로 선 감독의 평가는 어느 정도 끝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 감독은 이미 최고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삼성 멤버가 워낙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함께 우승후보로 꼽힌 기아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가 꼴찌다툼을 하는 것을 보면 전력을 다듬고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제 선 감독에게 남은 과제는 삼성을 우승으로 이끄는 일 뿐이다. 프로야구에서는 페넌트레이스 1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우승 실적이 더 중요하다. 선 감독이 단기 승부에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다.

선 감독의 최종목표는 김응용 감독과 김재박 감독의 대를 잇는 명장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이는 최고 스타였던 그가 지도자로서도 정상에 오르기를 바라는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선 감독은 2003년 주니치에서 코치연수를 마치고 두산 베어스와 LG트윈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또 고향 연고팀인 기아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선 감독이 삼성을 선택한 것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다.

선 감독은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을 잘 정비해 80~90년대 해태, 2000년대 현대처럼 절대 강자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의 소망은 미국의 뉴욕 양키스나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리그의 최강자가 되고 싶어하던 삼성과 딱 맞아 떨어졌다.

선 감독이 따라잡으려는 김응용 감독은 22년간 해태에서 9차례, 삼성에서 1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김재박 감독은 10년 동안 4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프로야구 최고 명장인 그들의 뒤를 이을 지휘관은 선 감독밖에 없다. 삼성의 과감한 투자와 선 감독의 지도력이라면 꿈이 이뤄지는 것은 먼 훗날 얘기가 아닌 듯 싶다.


김식기자


입력시간 : 2005-06-08 16:26


김식기자 seek@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