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 격투감각으로 기량 날로 향상'야수' 밥 샙과의 대결에서도 자신감

최홍만 "K-1 주먹세계 평정하겠다"
천부적 격투감각으로 기량 날로 향상
'야수' 밥 샙과의 대결에서도 자신감


“어째 기분이 나지 않네요. 역시 우승을 하더라도 강자를 꺾어야 흥이 나는 모양입니다.”

2001년 6월 서울 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 머리카락을 노랗게 물들인 21살의 젊은 씨름꾼 최홍만. 그는 제20회 전국장사씨름대회 대학부 우승을 차지한 뒤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기자는 일단 최홍만의 거대한 키(218㎝)에 놀랐고 그의 입담에 끌렸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은 2003년 김영현을 꺾고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23세 천하장사는 주특기인 들배지기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키로 씨름한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다. 키 큰 선수도 기술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겠다.” 최홍만은 여느 선수와는 그릇이 달랐다.

최홍만(25)이 지난해 겨울 K-1 진출을 선언하자 씨름계가 발칵 뒤집혔다. 차경만 전 LG씨름단 감독은 천하장사가 일본에서 두들겨 맞으면 국가의 망신이라며 제자를 말렸다. 고생을 사서 하겠다는 아들의 고집에 아버지 최한명 씨도 발을 동동 굴렀다. 반대여론 또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최홍만은 단호했다. “어떤 종목은 몸값이 수십억원을 챙기는데 우리(씨름)는 단식농성을 해도 대기업(LG)이 팀을 해체했다”며 모래판을 떠났다. 민족의 얼이 담긴 씨름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온 스승과 실업자로 살 수 없다는 제자의 이야기는 씨름판의 현실만큼이나 우울했다.

꿈에서 안 맞았으면 좋겠다
최홍만은 지난 1월 “잠만 자면 얻어맞는 꿈을 꾼다”고 털어놨다. 커다란 덩치 덕분에 평생 맞아본 적이 없던 그는 매일 공포에 시달렸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게 있었다. ‘천하장사가 돈에 팔려 일본(K-1)에 간다’ ‘씨름선수라 아케보노처럼 얻어터지기만 할 것이다’ 등등 팬들의 비관적인 전망은 그의 가슴을 후볐다.

최홍만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얻어맞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주먹으로 머리를 맞으니 어지러웠고 걷어차인 다리는 비틀거렸다. 하지만 얻어맞을수록 오기가 생겼다. 최홍만을 신나게 두들기던 선수들은 이때부터 그의 눈빛을 보고 슬금슬금 피하기 시작했다.

풋내기 최홍만은 3월 19일 K-1 서울대회에서 일본의 와카쇼요와 아케보노를 연달아 KO로 물리쳤다. 결승전에선 지난해 챔피언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태국)마저 판정으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라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 목표는 세계챔피언이다. 서울대회 챔피언 하려고 씨름을 그만 둔 건 아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해 차근차근 목표에 다가서겠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지만 키 큰 사람도 멋진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관중에게 “밥 좀 사주세요”라고 넉살을 떤 최홍만은 세계 챔피언이란 목표와 키 큰 사람도 멋진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처음으로 밝혔다. 독도 문제로 반일감정이 드높던 당시. 그는 일본의 자존심 스모 요코즈나(한국의 천하장사) 출신인 아케보노를 KO시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큰 거인’ 최홍만(218㎝)이 6월 29일 스프리스 팬사인회에서 ‘작은 거인’ 김주희(160㎝)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최홍만의 오랜 팬이라고 밝힌 김주희는 이날 최홍만에게 복싱기술을 전수했다. 김지곤 기자

첫 단추를 잘 꿴 최홍만은 6월 14일 히로시마 대회에서 프로레슬링 출신의 톰 하워드를 무릎치기 한방으로 KO시켰다. 배우지도 않은 발기술을 사용할 정도로 그의 격투감각은 돋보였다.

밥 샙은 발차기로 KO시킨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과 ‘야수’ 밥 샙이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생각만 해도 짜릿한 대결이 9월 23일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에서 펼쳐진다. 골리앗과 야수의 대결은 샙이 지난달 히로시마 대회에서 우승한 뒤 최홍만과 싸우고 싶다고 제안하자 최홍만이 흔쾌히 받아들여 성사됐다.

최홍만은 진정한 강자와 싸李?싶鳴?외쳐온 터라 샙과의 대결이 반갑다. 샙은 전세계에 수많은 팬을 확보한 K-1의 인기스타. 버거운 상대임에는 틀림없지만 최홍만이 K-1 최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언젠가 제압해야 할 상대에 불과하다.

최홍만은 “어느 누구와 싸워도 자신있다”고 승부욕을 내비친 뒤 “밥 샙을 상대로 멋진 발차기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말을 내뱉으면 꼭 실천하는 그의 성격으로 봐서는 멋진 경기를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최홍만이 어떻게 밥 샙의 상대가 되냐’던 팬들도 이제는 ‘최홍만이 샙을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궁금하다’며 태도가 돌변했다. 최홍만도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쉽게 넘어지고 KO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최홍만은 샙과의 결전에 앞서 7월 29일 하와이대회에서 아케보노와 한ㆍ일 천하장사 재대결을 갖는다. 최홍만은 아케보노와의 재대결은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꺼렸다. 하지만 아케보노가 고향인 하와이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나서자 K-1이 이를 받아들였다.

최홍만은 “아케보노가 서울대회에서 진 뒤 아파서 졌다고 말했다”면서 “지금은 아프지 않다니 이번에는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최홍만이 K-1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

“최홍만은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챔피언을 말하기는 이르다.”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김주희(19)를 길러낸 정문호 거인체육관 관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최홍만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의 몸놀림이나 격투실력이 아직 어설픈 것도 엄연한 사실.

정문호 관장은 최홍만이 아직까지 K-1의 정상급 선수와 싸운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여태까지 강력한 주먹을 맞아본 적이 없다는 것. 정 관장은 “그래서 최홍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전제한 뒤 “최홍만의 K-1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진단했다.

최연소 여자복싱 세계챔피언인 ‘작은 거인’ 김주희도 “최홍만 오빠의 복싱실력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지만 끊어치는 기술이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최홍만(218㎝)보다 큰 선수는 거의 없다. 따라서 상대의 접근전을 봉쇄하기 위해 끊어치는 기술이 필수란다. 김주희는 “최홍만이 받아치는 기술을 익히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 관장은 최홍만이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 상대인 밥 샙과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고 점쳤다. 샙이 K-1 정상급에 가까운 선수지만 최홍만은 아직 격투기 초보. 하지만 최홍만의 승리를 예측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 정도로 그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최홍만이 2년 정도 꾸준히 기본기를 충실히 쌓는다면 K-1의 최강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 이상준 기자


이상준기자
사진=김지곤 기자


입력시간 : 2005-07-06 18:31


이상준기자 jun@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