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쿨하게 벗기다

[영화 되돌리기] 불순한 제안
프랑스를 쿨하게 벗기다

스파이크 리, 짐 자무쉬, 나이트 샤말란, 곽경택. 영화계 인물이란 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관련성이 적어보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모두 뉴욕대 영화학과 출신들이라는 점이다. 뉴욕대는 최근 미국 고교생이 가고 싶어하는 대학 1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이 곳 영화학과는 교육여건이나 전통면에서 미국 내 최고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데 뉴욕대 영화학과의 인기가 미국내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요즘에는 영화의 본고장 프랑스를 제치고 미국의 영화학교가 더욱 뜨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마르셀 카르네나 장뤽 고다르보다는 올리버 스톤이나 마틴 스콜세지에 열광하는 젊은 예비 영화 감독들이 더 많은 모양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배트맨 비긴즈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사랑은 타이밍’을 감독한 세데릭 클라피쉬도 마틴 스콜세지에 열광하던 학생이었다. 결국 클라피쉬는 23살 되던 해 마틴 스콜세지가 졸업한 뉴욕대 영화학과에 진학, 여러 단편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졸업 후 다시 고향 프랑스로 돌아와 독립영화나 TV 다큐를 만든 그는 96년도에 발표한 두번째 영화 ‘고양이를 찾아서(Chacun cherche son chat)’로 베를린 영화제 비평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의 감독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소위 ‘미국물’을 먹은 그의 영화는 과연 어떨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다음 작품인 ‘불순한 제안(Ni pour ni contre)’를 보면 클라피쉬가 무엇보다 바깥에서 프랑스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클리셰에 갇힌 프랑스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 던지는 쿨함이 느껴진다.

영화는 방송사 프리랜서 카메라맨 카트린느가 우연찮게 범죄조직에 가담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리고 있다. 투박한 점퍼에 운동화 차림의 소박한 카트린느는 한 방송사에서 고급 콜걸 인터뷰 장면을 촬영하던 중에 그녀로부터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는다. 일은 간단하다. 청부 살인 현장을 촬영해서 의뢰자에게 보내주는 것. 돈을 벌기 위해 혈혈단신 파리에 입성한 그녀로서 거액의 아르바이트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결국 카트린느는 ENG 카메라를 들고 난생처음 불순한 다큐를 찍는다.

그런데 범죄에 가담하면서 카트린느는 어느덧 파리 뒷골목의 사내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불온한 목적으로 만난 범죄 집단일 뿐. 사내들에게 범죄의 기술을 익힌 카트린느는 수익배분의 번거로움을 피해 개인영업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대단한 한 탕을 하기 위해 이들은 다시 뭉친다.

평범한 여자가 팜므 파탈로 타락해 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영화는 어찌보면 무난한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물론 타란티노만큼 발칙하지도 않고 브라이던 드 팔마만큼 대담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이 영화에 한 가지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프랑스답지 않은 모습을 통해 진짜 프랑스를 드러내 보이겠다는 감독의 순박한 의지다.

클라피쉬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서 “화려한 에펠탑이나 정겨운 아코디언 연주자가 나오는 우편엽서 속 프랑스가 아니라 진짜 프랑스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아프리카, 아랍, 스페인, 미국 등의 다국적 문화가 어우러져 있는 프랑스 내에서 범죄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주변부의 문제들과 인종적 갈등이 그가 영화 속에서 담아보고 싶은 리얼 프랑스의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할리우드 키드의 감성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프랑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클라피쉬. 그는 미국 영화의 수혜를 받고 자국영화 시장에서 떠오르는 요즘 시대 젊은 감독들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교배가 영화시장의 다양성에 기여할 것인지 할리우드 영화의 전지구화가 될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07-21 18:36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