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도중 충격적인 성기 노출, 공영방송 도덕성 큰 흠집

패륜·선정, 막가는 공중파··· "방송, 듣고 보기가 겁나요"
생방송 도중 충격적인 성기 노출, 공영방송 도덕성 큰 흠집

“변태라는 것은 여학교 뒷동산에 나타나는 바바리맨 일명 ‘슈퍼맨’ 같은 이들을 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사방에서 아이들을 놀래킨다. 코미디 프로에서도 뻑하면(걸핏하면) 키스신이다. 춤도 너무 육감적이고 자극적이다. 그것도 모자라 성기를 노출시키고 춤까지 추는 것이 버젓이 방송을 탔다.”

한 네티즌이 블로그(blog.daum.net/nie4u/2176724)에 남긴 글이다. 지난 7월 30일 오후 4시 15분. 청소년이 주시청자인 MBC 음악프로그램 ‘음악캠프’에서 가히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인디밴드 ‘럭스’가 노래를 부르던 도중 함께 무대에 오른 오모(20) 씨등 2명의 남성 댄서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노출한 채 춤을 추는 장면이 약 4초간 생방송된 것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성폭력을 했다” “완전 충격 쇼킹 자체!”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앞서 일일시트콤에서는 시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며느리가 등장했고(KBS ‘올드미스 다이어리’, 7월 27일 방영분),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모유수유의 장점을 설명하는 출연자에게 여성 아나운서가 “아빠와 같이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죠?”라고 내뱉은 성적인 농담이 전파를 탔다(KBS 2FM ‘황정민의 FM 대행진, 7월 20일 방송분). 이 같은 사례들은 분명 성격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지상파 TV 방송들의 공공성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점에서 고삐 풀린 전파의 궤도를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패륜방송으로 물의를 빚은 KBS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경우를 보자. 제작진은 방송 직후 “노인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싶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 같은 장면을 방송하게 됐다”고 해명했으나, 현실 고발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면 시트콤이 아닌 다른 형식을 선택해 진지하게 접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프로그램의 내용과 표현 수위를 결정하는데 신중함이 부족했던 방송의 도덕불감증을 잘 보여준다.

방송 사상 초유의 성기 노출이라는 대형사고를 친 MBC ‘음악캠프’는 안이한 제작 관행의 폐해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출연자들이 고의로 성기를 노출한 사건은 제작진의 뜻과 상관없는 ‘돌발사건’이라 해도 방송사의 무책임한 제작관행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방송시간대가 주말 오후 4시로 방송심의규정상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로 방송사는 출연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나 담당 PD는 사고를 낸 출연자가 누구인지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도 이에 대한 방송법상 징계 조항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방송위원회는 8월 1일 긴급 연예오락심의원회를 열어 ‘음악캠프’와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대해 제재조치를 전제로 한 의견진술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종 징계결정은 11일 방송위 전체 회의에서 내려질 예정이지만, 방송위가 내릴 수 있는 제재조치는 방송법 100조에 의거하여 ‘시청자에 대한 사과방송’, ‘방송 프로그램 중지.정정’, ‘방송 프로그램 편성책임자와 관계자 징계’ 등이 고작이다. 실질적인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심의 규정이 없다. 출연자에 대한 규제가 없는 것도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연방통신위원회는 외설적인 내용을 방영한 방송사 외에도 출연자 또는 진행자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 하원도 지난해 2월 재닛 잭슨의 젖가슴이 노출된 사건 이후 저속한 방송과 관련 방송사에 대한 최대벌금의 종전의 3만2,500달러에서 50만 달러로 인상하고, 출연자에 대한 벌금도 1만1,000달러에서 50만 달러로 대폭 올렸다. 사고 재발방지 차원에서도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방송에 대해 상당액수의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러한 대형사고의 뒷수습방안도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MBC는 노출 사고 발생 직후 해당 프로그램 중단이라는 초강수의 내부 제재 조치를 취했으나, 이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사건 발생 후 방송의 안전 장치를 강화하고, 이 기회에 억눌린 인디밴드를 위한 다양한 음악적 통로를 마련하는 등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청률 제일주의에 편승한 대다수 연예오락프로그램은 선정성, 가학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최근 발표한 ‘지상파 방송 3사의 봄 개편 및 7월 부분 개편에 관한 프로그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사마다 개편 당시 모두 ‘공익성 강화’를 내세우지만 실제 스타들의 말장난과 선정성 위주의 오락프로그램이 안방극장을 점령한 상태다.

KBS 일요일 저녁 프로그램 ‘해피선데이’의 ‘여걸식스’코너는 여성 출연자가 수영복을 입거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은 채 게임을 하는 등 온 가족이 보기 민망한 장면이 연일 방송된다. 적극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의도와 달리 여성성의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이다. 스타급 MC들을 싹쓸이한 MBC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상상원정대’코너의 경우 “시청자들에게 각국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정보와 상상력을 통한 고품격 재미를 준다”며 시작했지만, 매주 출연 연예인들이 해외 유명 놀이기구를 타러 다니는 것 이상의 내용이 없다. ‘롤러코스터 원정대’라는 비판에다, 놀이기구를 타고 괴로워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매번 반복되며 가학성 시비까지 불러왔다.

“방송 보기가 겁난다”는 시청자들의 거센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 요즈음 공영 방송의 현실이다. 케이블TV의 성장, 위성 DMB 등 통신업체의 도전 등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지상파 방송의 위기 상황은 자극적ㆍ선정적 방송을 더욱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박진형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간사는 “시대적 추세가 방송에서 지상파가 누렸던 장악력이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러나 “경쟁의 논리에 매몰되어 공영 방송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5-08-11 18:42


배현정 기자 hjbae@hk.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