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 잇단 졸전으로 감독 경질론 빗발, 여론재판 경향도

[스포츠] 본프레레를 어찌 하오리까
축구국가대표팀 잇단 졸전으로 감독 경질론 빗발, 여론재판 경향도

위기에 봉착한 ‘본프레레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난 7일 끝난 동아시아축구선수권에서 2무1패로 꼴찌수모를 당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축구감독에 대한 축구팬 들의 경질론이 거세다.

본프레레호는 8명이 싸운 중국전에서 0대1로 끌려 가다 간신히 1대1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북한전에서도 졸전 끝에 득점없이 비겼다. 그뿐 만 아니다. 일본과의 라이벌 대결에서는 골 결정력 부족으로 0대1로 패했다. ‘모두가 축구 전문가이자 광적인 축구 민족’인 한국팬이 잠잠할 리 없다. ‘본프레레 퇴진론’으로 아우성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난감하기만 하다. 2006독일월드컵 본선을 불과 10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교체의 득실 계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월드컵 6회 연속 본선진출의 쾌거를 거둔 한국축구가 때아닌 ‘집중’과 ‘선택’의 기로에서 홍역을 앓고 있는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지난해 6월 한국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자신의 이름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프랑어말의 본프레레가 영어식으로 해석하면 ‘좋은 형제(bonfrre)’라는 뜻이라며 한국 국민, 서포터, 선수 모두와 좋은 형제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망을 잃은 본프레레 감독이 한국축구와 ‘좋은 형제’ 관계를 회복할지 관심을 끈다. 본프레레는 왜 불신을 받나.

불명예 퇴진한 코엘류 감독 후임으로 지난해 6월24일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본프레레 감독은 그 동안 한국 축구팬 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줄곧 불신임을 받아왔다. 귀국 첫날부터 기자들로부터 “‘3류 감독’이라는 외신보도가 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 등 화려하지 않는 감독 경력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지난해 7월 국제경기 데뷔 무대였던 아시안컵에서 이란에 3대4로 패해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지난해 9~10월 열린 월드컵 2차 예선 베트남 및 레바논전 등에서 졸전을 펼쳐 축구팬들의 퇴진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표팀을 맡은 지 불과 3~4개월만의 일이다. 7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주고 데려온 대표팀 감독치고는 너무 일찍부터 시련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본프레레 감독은 지난 6월 쿠웨이트를 꺾고 월드컵 본선 행을 조기 확정지으면서 퇴진론이 잠잠해지는 듯 했지만 동아시아대회 부진으로 또 다시 이 문제가 불거졌다. 본프레레 감독은 지금까지 10승8무5패를 기록 중이며 올해 들어서는 4승5무4패로 저조한 성적이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본프레레 감독 퇴진론은 외형적인 성적보다 ‘색깔 없는 축구’, ‘선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성’, ‘카리스마 부재’ 등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다. 한마디로 불신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다.

본프프레레는 지난해 10월 월드컵 2차 예선 레바논전에서 1대1로 비긴 뒤 “나는 전술적으로 완벽했으나 선수들의 정신 상태가 해이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사우디전은 커다란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후 0대2로 패하자 그는 또 다시 “선수들의 정신력에 크게 문제가 있어서 패했다”는 등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축구팬들의 비난을 샀다.

팬들의 또 다른 불만은 ‘색깔’이 없다는 점이다. 본프레레 감독만의 전술이나 내용 있는 축구를 보여주지 못한 채 선수 개인들의 능력으로 플레이를 풀어가고 있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아직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인지 선수 선발과 기용에도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축구팬들의 경질론 아우성과는 달리 감독선임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대한축구협회와 당사자인 본프레레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축구협회는 그 동안 여러 차례 경질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축구협회는 동아시아대회 기간과 직후에 “이번 동아시아대회 성적 때문에 감독에 대한 축구팬들의 비난이 거센 상황이지만 감독 교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지금은 더 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줄 때라간예璿慧?

본프레레 감독이 비록 동아시아선수권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냈지만 코엘류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목표로 했던 2006독일월드컵 본선진출을 달성했고, 지금시점에서 뾰족한 대안이 없는 만큼 경질을 논하기 보다는 본선에 대비해 힘을 실어줄 때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축구팬들의 비난이 좀처?가라앉지 않자 대표팀이 14일 남북통일축구와 17일 사우디전에 대비해 소집훈련에 들어간 11일에는 "모든 것은 17일 독일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사우디전 이후에 논의될 것이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남북통일경기와 사우디전 두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팬들의 따가운 눈총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은 애국심을 갖고 대표팀을 응원해 주시기를 바란다. 본프레레 감독의 거취는 그 다음 문제다”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사우디전의 승패를 떠나 기술위원회 차원에서 회의를 열어 본프레레 감독에 대해 종합 평가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본프레레 감독도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본프레레 감독은 7일 일본전이 끝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감독경질을 요구하는 팬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번 대회의 목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 가야 한다”면서 “이번 대회는 국내의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소집해 테스트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감독경질의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이다.

11일 대표팀 소집훈련을 앞두고 공식 기자회견을 가진 본프레레 감독은 “축구팬 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경기에서 이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선수 테스트와 함께 새로운 팀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면서 “그러나 우리의 최종 목표가 확실하다면 현재 상태의 비판보다는 팀의 발전을 위한 격려가 필요하다”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인터뷰에 나선 김두현(성남) 선수는 “경기 결과의 책임은 감독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정작 뛰는 선수들이 잘한다면 유능한 감독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게 축구”라며 “앞으로 지적 받은 부분들을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거들었다.

정경호(광주) 선수는 대표팀 분위기에 대해 “좋지않은 여론을 선수들이 모두 잘 알고 있다. 감독 경질얘기가 오가는 상황에서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직접 경기를 뛴 선수들의 가슴은 더 아프다. 북한전과 사우디아라비아전을 통해 반드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17일 사우디전이 본프레레에게 운명의 날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본프레레 감독에 대한 축구계의 입장은 두 가지로 맞서 있다. 본프레레 감독으로는 더 이상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경질론’과 문제점을 보완해 본프레레 체제를 유지하자는 ‘신중론’이다. ‘경질론’의 경우 본프레레 감독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만큼 다른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변화를 꾀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경질 이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신중론’은 월드컵 본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와 시간이 촉박한 데다 후임 감독 카드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신중론’의 경우 향후 본프레레 감독의 신뢰를 끌어 올릴 수 있는 가시적인 후속 조치 마련이 급선무로 지적된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도 졸전을 면치 못할 경우 본프레레 감독은 물론 한국축구를 위해서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여론 재판식의 결정이 날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대표팀이 축구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감독교체보다는 방법 보완으로 본프레레 감독 체제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정동철 스포츠한국 기자


입력시간 : 2005-08-18 11:38


정동철 스포츠한국 기자 ball@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