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日서 효도르-크로캅 세기의 격투기 대결 관심고조

세계 최고 싸움꾼 가리기 열기 후끈
28일 日서 효도르-크로캅 세기의 격투기 대결 관심고조

'얼음펀치' 효도르(왼쪽)와 '불꽃 하이킥' 크로캅의 지상 최대 격투기 빅 매치가 28일 일본서 열릴 예정이어서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 Dream Stage Entertainment 제공>

6월26일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프라이드FC 미들급 그랑프리 대회가 열린 일본의 사이타마의 수퍼 아레나. ‘일격필살’의 강력한 미들킥으로 상대를 링에 고꾸라트린 미르코 크로캅이 마이크를 부여 잡았다. “다카다 씨, 링 위로 좀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차가운 눈빛을 뿜어내는 사내의 갑작스런 부탁에 다카다 노부히코 프라이드 총괄본부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링 위로 올라왔다.

크로캅은 말을 이었다. “효도르 선수를 불러주십시오.” 정중한 말투였지만 그 속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프라이드 헤비급 세계 챔피언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를 향해 또 다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수 차례 공개적으로 맞대결을 요구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졌고, 어렵사리 마련된 6월 대전도 효도르가 손 부상으로 또 다시 연기된 상태였다.

성난 도전자의 말이 끝나자 효도르가 챔피언 벨트를 어깨에 메고 링 위로 올라왔다. 간담 서늘한 킬러 본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미소까지 띄었다. “크로캅의 도전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챔피언의 도전 수락에 숨 죽이고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잔뜩 굳어 있던 크로캅도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웃음을 보였다.

효도르-크로캅 세기의 대결 관심 고조
마침내 지상 최대의 격투기 빅 매치가 펼쳐진다. ‘얼음 펀치’ 효도르와 ‘불꽃 하이킥’ 크로캅의 세기의 대결이 8월 28일 일본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에서 열린다. 입식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을 모두 겸비해 허점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는 ‘황제’ 효도르와 K-1 무대에서 못 이룬 챔피언의 꿈을 프라이드 무대에서 이루고자 하는 ‘무관의 제왕’ 크로캅의 대결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되며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성사 단계에서 무산되기 일쑤였다.

격투기에서 앞으로 한동안은 나오지 않을 최고의 빅 카드에 두 선수는 물론 팬들 역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격투기 관련 인터넷 사이트는 서로 승자를 점치는 치열한 갑론을박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경기 관람 티켓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에도 팬들의 응모가 쇄도하고 있다. 크로캅이 광고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면도기 회사 ‘쉬크’의 경기 관람 이벤트에는 10명 추첨에 총 5만2,000여명이 몰려 뜨거운 관심을 실감케 했다. 이번 세기의 대결은 케이블TV XTM이 8월 28일 오후 4시부터 생중계할 예정이다.

‘그라운드의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챔피언 효도르는 일명 ‘얼음펀치’로 불리는 살인적인 파운딩(눕혀놓고 주먹으로 때리기)을 필살기로 프라이드 진출 후 단 3경기 만에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프라이드를 호령하며 무적시대를 구가하던 브라질 주짓수의 마술사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조차 효도르의 얼음주먹에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두 차례나 무너졌다. 효도르는 그의 또 다른 별명인 ‘무결점의 사나이’처럼 격투기에서 필요한 그라운드(링에 누어서 싸우기), 타격, 파운딩의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무림 지존이다.

1976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효도르는 유년 시절에는 유도와 삼보(러시아 전통 무술) 선수로 활약했다. 1996년 유도러시아선수권과 1997년 삼보러시아선수권에서 잇달아 정상을 차지하며 파이터로서 명성을 떨친 효도르는 2000년 링스(RINGS)라는 일본 격투기 무대에 진출했다. 그라운드 기술 위주로 경기가 진행되는 링스에서 그는 타고난 격투가로서의 기질을 맘껏 펼치며 데뷔 이듬해인 2001년 링스 초대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 뒤 2002년에는 링스 세계무차별급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링스에서 승승장구하던 효도르는 2002년 6월 열린 ‘프라이드21’대회를 통해 종합격투기 프라이드에 첫발을 내딛었다. 데뷔 첫 상대는 격투기의 ‘사이보그’라고 불리는 타격 전문가세미 슐츠. 효도르는 211㎝의 ‘거인’ 세미 슐츠를 맞아 큰 신장차이를 극복하는 적극적이고 영리한 공격으로 판정승을 거둬 화려한 프라이드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효도르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경기는 히스 히링과의 대결. 히링은 ‘텍사스의 미친말’이라는 별명처럼 저돌적이고 거친 플레이는 다른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2년 ‘프라이드23’에서 효도르는 히링의 얼굴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리 꽂히는 ‘자석 펀치’를 작렬, 1라운드 TKO승을 거뒀다.

다음 상대는 헤비급 챔피언인 노게이라. 2003년 ‘프라이드25’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대결에 팬들은 만장일치로 꺾기 등 ‘관절기의 최고수’ 노게이라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노게이라의 필살기는 효도르에게 무용지물이었다. 효도르는 링에 누운 노게이라 위에 올라타서 소나기 펀치를 날렸고 무장해제 당한 노게이라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효도르의 판정승.

효도르는 격투기 전적에서 2000년 링스 시절 코사카 츠요시와의 대결에서 눈 부상에 의한 출혈과다로 TKO패 당한 것이 유일한 패배다.

‘하이킥의 달인’ 미르코 크로캅
크로캅은 무관의 제왕이다. 세계 최강 효도르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파이터로 꼽히지만 K-1과 프라이드 두 무대 어디에서도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다. 그라운드 기술에 강한 효도르와 달리 크로캅은 미들킥 하이킥 등 타격 기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1974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크로캅은 어린 시절 액션 영화배우 장 클로드 반담에 매료돼 격투기를 시작했다. 크로캅은 내전에 참전한 친구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이로 인해 정신력과 냉철함은 더욱 강해졌다.

특수 경찰 무술교관이자 현역 국회의원인 크로캅은 K-1 그랑프리 초대 챔피언인 브랑코 시카릭에게 킥복싱을 배운 뒤 1996년 K-1 무대에 처음 등장해 강타자 제롬 르 밴너와의 데뷔전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크로캅은 1999년 그랑프리 대회에서 당시 거물이었던 마이크 베르나르도를 왼발 하이킥으로 KO시킨 뒤 무사시 등을 잇따라 격파하며 결승에 오르지만 어네스트 후스트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적 파이터’로 일약 발돋움하게 됐다.

2001년 마크 헌트, 밥 샵, 레비 본야스키를 연파하며 정상급 파이터의 명성을 확인한 크로캅은 같은 해 호주대회 예선에서 무명의 마이클 맥도널드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뒤 11월에 프라이드 무대에 진출한다. 크로캅은 전매특허가 된 ‘전율의 하이킥’을 앞세워 2002년 당시 ‘빅3’ 중 하나인 히스 히링과 이고르 보브찬친을 무너뜨리며 격투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승승장구하던 크로캅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라운드 기술. 브라질 주짓수의 달인 노게이라에게 KO패 당하고 레슬링이 주무기인 케빈 랜들맨에게 또 다시 무릎을 꿇으며 격투기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타격에서는 넘볼 자가 없었지만 그라운드 기술에 약하고 어느 순간에 침착성을 잃어버리고 허둥대는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크로캅이 그라운드 기술에 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크로캅은 지난해 12월 31일 열린 리턴매치에서 랜들맨에게 1회 KO승, 최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효도르를 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누가 이길까
두 선수의 승리 공식은 확실히 대비된다. 효도르의 필살기는 상대를 넘어뜨린 뒤 무차별적인 파운딩 펀치를 날리는 것이고, 크로캅은 스탠딩 상황에서 미들킥이나 왼손 스트레이트로 상대 안면 가드를 내리게 한 뒤 공포의 하이킥을 가하는 데 능하다.

‘효도르=그라운딩, 크로캅=스탠딩’이라는 대조적인 싸움에 전문가들은 쉽사리 승자를 점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무결점 고수들끼리의 대결에서 타격이든 그라운드든 어느 쪽이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모으고 있다. 격투기 인터넷 카페들의 투표 결과에 따르면 5.5대 4.5로 효도르의 승리가 우세한 분위기다.


김일환 기자


입력시간 : 2005-08-23 15:55


김일환 기자 kev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