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춤 솜씨로 '아이돌 스타' 반열에 오른 기대주, 4년 여의 노력 결실

[최성은의 S 다이어리] SIC "남산을 사는 글날까지…"
화려한 춤 솜씨로 '아이돌 스타' 반열에 오른 기대주, 4년 여의 노력 결실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 10 순위에 올라와 있는 서적들은 대개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 준비된 말이 성공을 부른다’ ‘내 이생을 바꾸는 성공노트’ ‘날마다 마음속에 성공을 그려라’등과 같은 성공학 개론류의 책들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성공학 아이템이 인기가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성공은 그리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로또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대박이 터진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인기가 급상승해 음반이 200만장 이상이 나가지 않는 이상 성공을 단번에 잡기란 쉽지 않다.

가요계에선 하루에도 수 십장의 신보가 쏟아진다. 또 매니저들은 수십 명의 신인 프로필을 가지고 다닌다. 스타를 키우기 위한 전략이자 성공을 위한 노력들이다. 정말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실력을 다져 온 신인, 기대주는 과연 누구일까.

뜨기위해 3, 4년간의 트레이닝은 기본

연예계는 점점 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한국 엔터테이너들이 국빈 대접을 받고, 동남아와 유럽 각국에선 우리의 영화를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스타 마케팅은 국내가 아닌 해외시장을 겨냥한 대대적인 사업이 되었다. 때문에 스타를 개발하고 스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완벽한 내실을 다지게 되었을 때 비로서 그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된다.

그만큼 철저히 준비하고 오랜 기간 트레이닝 된 완벽한 신인을 내세워야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인식이 갈수록 널리 퍼지고 있다.

가수 SIC가 신인 중에 유독 눈에 띈다. 그는 앨범이 나오기까지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는데, ‘제 2의 비가 탄생했다’싶을 정도로 SIC의 춤 실력은 이미 많은 여고생 팬들을 확보한 상태다.

그렇다면 SIC가 탄생되기까지 4년이란 시간동안 그가 했던 노력들은 어떤 것일까.

닮은 꼴 아버지와 아들

SIC는 중학교 시절부터 필드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미래의 비전이 없을 것 같다. 필드하키를 그만두라”는 큰누나의 권유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평소 “몸만 쓰던 사람이 앉아서만 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무엇보다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충남 온양 자신의 집 근처에서 4ㆍ28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을 기리는 행사를 했고, 그 행사장을 우연이 찾은 SIC는 선배가 멋있게 춤추는 것을 보고 그만 매료됐다. 순간 춤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바뀌었고, 공부보단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춤을 추기로 결심했다.

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춤을 막상 춘다고 해도 온양 바닥은 너무 좁다고 판단했고, ‘춤 도 큰 물에 가서 배우자’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서울행을 감행했다.

아직은 고등학생이었기에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SIC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버지가 반대를 하더라도 끝까지 우길 것을 결심하면서 진지하게 말을 했다. “저 서울 가겠습니다.

서울 가서 꼭 성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17살짜리가 홀홀 단신 서울로 가겠다고 했기에 아버지가 분명 반대를 하리라 믿었지만, 아버지는 “갔다 와” 라고 간단히 말했다.

아버지의 반응에 너무 당황한 SIC는 순간 자신을 잡지 않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한편으론 서운함까지 느꼈다. 이런 오해는 얼마 뒤 서울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풀 수 있었다.

서울 간다는 손자의 말을 들은 할머니는 SIC를 보고 “어쩜 그렇게 아빠를 닮았냐. 네 아빠도 딱 너 나이에 ‘어머님 저 서울 갔다 오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홀로 서울로 유학을 갔다”고 옛 일을 들려줬다.

가수가되기 위해 얼굴에 철판 깔다

고 1때부터 부모로부터 철저히 독립한 SIC는 용돈도 스스로 벌 수 밖에 없었다. 서울에 무작정 왔지만 생활비가 부족해 아는 형의 집에서 합숙을 했다. 그 형이 ‘더 원’ 이라는 가수였다.

처음엔 가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터라 그저 춤을 배우기 위해 형을 따라다녔지만, 방송국과 연습실을 여기저기 오가며 다른 신인들이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자신도 연습을 하게 되었다.

또한 프로듀서 형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노래를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몰래 춤 연습과 노래 연습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인들이 형에게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날이었다. 몰래 연습을 하고 나가던 길에 우연히 프로듀서 형을 마주쳤다. 형은 “넌 여기 왜 왔냐”라고 물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에게 형은 다시 “너도 해볼래?”라고 했다.

그리고 SIC가 노래실력을 충분히 발휘한 후 프로듀서 형은 다시 “너 노래가 좋냐?”라고 물었고 “예 ”라고 대답한 SIC에게 형은 이렇게 얘기했다. “솔직히 음정, 박자 무시하고, 박치에 노래도 진짜 못하는데 다만 온몸으로 불러 놀랬다”라고 평가했다.

그 후 프로듀서 형은 어딜 가나 “노래 잘하는 동생이야”라며 소개해 주며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 그 후 4년이 흘렀고, 오늘날 SIC를 무대에 서게 해준 사람은 바로 프로듀서 형이다.

생활의 달인,이젠1등 신랑감.

노는 걸 무척 좋아하는 SIC는 서울에 오자 마자 성공이란 목표 하나만을 보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노는 것을 포기했다. 매일같이 형들을 따라다니며 춤이며 노래 연습을 했다. 음악이나 댄스를 하는 형들 7명과 함께 생활했다. 모두 자신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막내로서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집안의 빨래와 청소는 SIC 몫이었다. 춤을 추는 형들이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세탁기를 2번 이상 돌려야 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타지 생활이었지만 식사는 정확히 했다.

국, 밥, 반찬을 모두 차려놓고 제대로 된 정식을 먹었기 때문에 7명의 식사그릇은 어마어마했다. 식사를 하는 것까진 좋으나 결국 설거지를 담당해야 했던 건 막내의 몫이 되었고, SIC는 자신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처음엔 7인분 설거지를 하는데 드는 시간이 40~ 50분 정도였지만, 요즘은 설거지의 달인이 되어서 30분이면 끝난다.

또 4년간의 자취생활을 통해 터득한 요리 솜씨는 김치만 빼고 모든 요리를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김치를 담지 않은 이유는 식구가 7명밖에 안돼 김치를 많이 담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젠 초보주부 보다도 싱싱한 생선 고르는 법이라던가 야채 구별법 등 살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남산을 사겠다는 꿈을 가진 SIC

남산을 왜 살 것이냐는 물음에 서울 어디에서 보든 남산은 한눈에 들어온다며,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보였던 게 남산이라 남산을 살 거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성공으로 가기 위해 수천, 수만 걸음이 필요하다고 하면 SIC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꿈과 자신감과 노력과 의지는 그 누구보다도 크고 절실하다.

입력시간 : 2005-08-2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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