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은 두려움 없는 사랑

[시네마타운] 박진표 감독 <너는 내 운명>
죽어도 좋은 두려움 없는 사랑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사건은 우리가 사는 곳곳에 널려있다. <너는 내 운명>은 그 드라마틱한 현실의 사건으로부터 모티프를 취했다.

수년 전 일간지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사건 하나가 이 영화의 아이디어가 됐다. ‘에이즈에 걸린 윤락녀가 복수심에 들 떠 수천명의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알려진 사건은 인면수심의 패륜적 행태가 만연한 한국 사회의 도덕 불감증을 증거하는 사례로 공개적인 장에서 성토됐다.

70대 노인들의 로맨스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은 한 줄의 신문 기사를 보고 이 마녀사냥에 몰린 윤락녀의 재판을 참관하기로 한다.

재판정에서 박진표 감독은 그녀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과 기구한 그들의 사연을 들게 되고 바로 <너는 내 운명>을 구상하게 됐다. 최루성 통속 신파 멜로드라마 <너는 내 운명>은 이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의 어느 지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농촌 총각 애정공세에 마음 여는 다방 레지

30대 중반이 넘도록 장가를 못 간 농촌 총각 석중(황정민)은 우연한 기회에 스치듯이 만난 순정다방 레지 은하(전도연)에게 한 눈에 반한다. 석중의 애정공세를 기피하던 은하도 끈질긴 그의 구애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행복한 생활도 잠시. 은하의 전남편이 찾아와 협박과 공갈을 일삼자 행복했던 부부의 삶을 위협당하고, 은하는 석중을 위해 집을 나가 여수 사창가로 흘러간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매춘을 하던 은하는 단속에 적발돼 철창 신세를 지고, 석중은 가족과 이웃의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은하와의 재결합에 목숨 걸고 매달린다.

<너는 내 운명>은 70대 노인의 실제 삶을 재구성한 재구성 다큐멘터리 <죽어도 좋아>로 알려진 박진표 감독이 극영화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고스란히 살려낼 수 있을 관심을 모았던 영화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캐스팅해 그들의 삶을 재구성했던 <죽어도 좋아>가 다큐멘터리와 픽션에 한 발씩 걸친 영화라고 한다면, <너는 내 운명>은 전도연과 황정민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동원해 드라마틱한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최루성 통속 신파극’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바뀌고, 노인들의 성생활이라는 파격적인 소재가 또 다른 센세이셔널한 소재인 에이즈 걸린 창녀와 농사꾼의 사랑으로 옮겨갔을지라도, 그가 다루는 근본적인 주제는 변한 게 없다. 박진표의 관심사는 한결같이 '두려움 없는 사랑'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또 다시 현재로 이어지는 소박한 이야기 구성도 <죽어도 좋아>와 마찬가지다. 감독은 특정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관객의 뇌리에 그 인물의 성격을 뿌리깊게 각인시킨다.

예를 들어 시골에서 농장을 하려는 꿈에 부푼 노총각 석중은 첫 등장 장면에서 결혼소개소에서 돈을 돌려 받기 위해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서 소란을 피우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다.

앞뒤 재지 않고 황소처럼 달려드는 그는 그가 막무가내로 소란을 피우다 힘과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제지 당하는 운명의 캐릭터다.

이는 희대의 에이즈 범죄자로 낙인 찍힌 은하 앞에서 경찰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석중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에이즈에 걸린 매춘부 아내임에도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그의 외골수 기질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세심하게 배치돼 있다.

정공법 신파 멜로의 매력

<너는 내 운명>은 석중의 심성처럼 우직한 정공법으로 신파 멜로드라마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의 감동을 끌어낸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은 신파 멜로의 곰팡내 나는 단골 메뉴지만 애써 세련을 가장하지 않는 진심은 눈물의 카타르시스가 줄 수 있는 쾌감을 보여준다.

현란한 이미지도,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카메라 기교도, 인물을 멋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장식도 없지만이 영화가 순박한 감동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박진표의 이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그가 배우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죽어도 좋아>의 노인들의 사랑, <너는 내 운명>의 에이즈 걸린 연인 등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받기 충분한 소재지만 감독은 인물들의 남다른 가치관에 대해 개입하지만중립적 태도를 취한다.

예컨대, 석중이 커피 배달을 간 은하를 밖에서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박진표 감독은 카메라를 멀찍이 세워놓는다.

이러한 캐릭터와 관객 사이를 벌이는 의도적인 거리 두기는 시종일관 인물의 감정에 밀착하는 일반적인 통속극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방식이다.

<죽어도 좋아>에서도 그러했지만 <너는 내 운명>에서도 감독은 농촌 노총각 석중이나 에이즈에 걸린 창녀 은하의 캐릭터를 충실히 묘사하는데 그칠 뿐,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그들의 개인사는 가능한 한 건너뛴다.

은하의 과거는 폭력적인 전남편의 등장으로 희미하게 그 윤곽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며, 석중의 기이한 순진성에도 특별한 동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대한 훔쳐보기의 쾌락을 의도적으로 배반하는 설정이다. 일반적으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부분이 그 사건의 주인공의 과거의 행적임을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설정의 의도는 더욱 명백하다.

죽어도 좋은 노인들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 전작이 그랬듯이, 박진표 감독은 오로지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해서 그 사랑을 힘겹게 이어가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다.

둘 이외의 세계에서 그들을 판단하는 근거는 여기서 모두 논외다. 그들만큼 절박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원하는 자들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영화의 수미상관적인 시점은 오로지 그들의 비루한 삶에서 서로 사랑하고 있는 시간만을 담아내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현재성은 다큐멘터리 감독이 대상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일종의 윤리일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5-10-05 11:21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