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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믿음과 칭찬으로 독수리를 춤추게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덕장, 4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 견인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에 오기(吳起)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와 함께 최고의 병법가로 꼽힌다.

오기는 덕장(德將)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그는 병사를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그들과 함께 먹고 같이 잤다. 어느날 병사 하나가 다리를 다쳤다.

부상 부위가 곪자 그는 입으로 고름을 빨았다. 이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내 아들이 죽게 생겼다”며 통곡했다. 장군이 말단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는데 그 병사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아끼겠냐는 설명과 함께.

신출귀몰한 병법의 대가 제갈공명은 용장(勇將)이었다. 총애하던 장수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명령을 어기자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주위에서 “유능한 마속을 없애면 적에게 이로울 뿐”이라며 처형을 말렸다. 제갈공명은 단호하게 “그대의 말이 맞지만 군율은 꼭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삼국지의 명장면 제갈공명이 울면서 마속을 벤다(泣斬馬謖ㆍ읍참마속)는 대목이다.

오기처럼 사랑을 베풀어 충성심을 자아내는 덕장과 제갈공명처럼 잘못한 부하의 목을 가차없이 베는 용장 가운데 누구의 방법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데 더 효율적일까.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세계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은 대부분 용장의 차지였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자랑하는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고함을 치면 제 아무리 유명 스타라도 벌벌 떨었다.

냉철한 승부사 김재박 현대 감독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야구에만 몰두한 끝에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그래서인지 야구계에는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떠돈다.

그러나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덕장 김인식 한화 감독은 올해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통설을 깨트리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시즌 전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 받은 ‘독수리 군단’을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김인식 감독은 지연규, 김인철, 조성민 등 한물간 선수들을 재기 시켜 ‘재활의 신(神)’으로 불리는 등 수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믿어주시니 열심히 뛸 수 밖에요"

김인식 감독의 리더십은 믿음과 칭찬으로 요약된다. 그는 후보 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고 성적이 나빠도 믿고 기다린다.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가. 선수는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게 된다.

홈런 3위를 차지한 이범호(26홈런)는 “감독님께서 우릴 믿어주시니까 열심히 뛸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성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감독에게 미안해서 고민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악동으로 유명한 용병 타자 데이비스는 김 감독의 인품에 반해 “당신은 진정한 나의 보스입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믿음의 야구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훈련하는 자율야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김 감독은 좀처럼 선수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단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장점을 칭찬한다. 칭찬은 선수에게 자신감을 심어줬고 기량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는 “프로 선수쯤 되면 자기 잘못을 안다. 감독이 꾸짖으면 혼났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만 쌓인다. 꾸짖기 보다는 다독거려 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 선수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믿음의 야구는 한화 선수단에 의식의 변화를 일으켰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선수 위에 군림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하나의 목표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능동적인 야구를 펼치기 시작했다. 눈 앞의 성적에 허둥지둥하던 모습과 경기에 나서지 못할까 두려워 부상을 숨기는 현상은 사라졌다.

부활의 날개 달아주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해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병문안을 간 야구인들이 김 감독의 야구인생이 끝났다고 판단할 정도로 병세는 심각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한 열정은 기적을 만들었다. 병마와 싸워 이긴 김 감독은 한물갔다고 버림받은 선수들을 하나씩 재활시켰다.

올 초 기아에서 외야수 김인철(34)이 방출되자 “어깨가 강하고 발도 빨라 아직 뛸 만하다”며 한화 유니폼을 입혔다.

은퇴 후 대전고 코치로 변신한 지연규(36)도 김 감독의 부름을 받아 뒤늦게 전성기를 맞았다. 지연규는 어깨부상에 시달리면서도 20세이브로 세이브 3위에 올랐다. 게다가 야구계의 풍운아 조성민까지 복귀시키자 김 감독에게는 ‘재활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쥔 삼성 선동열 감독과 ‘600만불 사나이’ 심정수(삼성)의 인기를 넘어섰다. 스스로 “올해처럼 인터뷰를 많이 한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장점은 끌어내고 단점은 보완한 뒤 충분한 기회를 준다.

눈 앞의 성적에 급급하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주기 때문에 지연규 등의 부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재활의 신’이나 ‘재활공장장’으로 불리길 거부한다. “선수들이 잘하는 건 내가 아니라 본인이 열심히 노력해서다.

나는 그저 운동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준 것 뿐이다. 나는 덕장도 아니고 재활공장장은 더더욱 아니다. 선수들이 잘해주니 복은 많은 것 같다.”

노련한 승부사 기질

한국시리즈 우승팀은 공통점이 있다. 이기는 야구를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절대선은 오직 승리 뿐이기 때문이다.

김응용 감독 시절의 해태가 그랬고 김재박 감독의 현대가 그랬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승패를 점칠 수 없다고 믿는 두 용장은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어도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했고, 잘 던지던 투수도 안타 하나에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김인식 감독은 승부사 기질이 있다. 승부처에 과감한 결단을 내릴 줄도 알지만 막히면 돌아가는 여유도 갖고 있다.

한국시리즈 2회 우승이라는 이력도 노련한 승부사의 자랑거리다. 그는 상황에 따라 경우의 수를 점검한 뒤 확률 높은 야구를 추구한다.

김인식 야구에 번트보다 정면돌파가 많다는 사실 또한 타자를 믿어서가 아니라 목표와 확률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김 감독은 3회 이전에는 좀처럼 번트를 지시하지 않는다. 1점으로 승리가 보장되지 않아서다. 경기 후반에도 1점 승부가 아니면 정면돌파를 선택할 때가 많다.

다득점이 가능할 때는 번트로 1점을 확보하는 것보다 아웃카운트를 하나 줄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제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한화는 전력상 삼성, 두산, SK에 비해 열세다. 예전에 OB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 때도 그랬다.

이번에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리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승부사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다. 절반의 성공을 이룬 ‘믿음의 야구’는 10월1일부터 SK를 상대로 5전3선승제로 벌어지는 준플레이오프에 나선다.


이상준기자 jun@hk.co.kr


입력시간 : 2005-10-0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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