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카리스마로 대표팀 면모 일신, 또다른 월드컵 신화위해 담금질

딕 아드보카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의 ‘월드컵 신화’를 재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용장’ 스타일의 아드보카트 감독은 취임 후 2개월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선수단을 단단히 틀어잡고 상처받았던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곧추 세우고 있다.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후 ‘한국축구의 면모 일신’은 성적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전임 조 본프레레 감독 시절 월드컵 본선 6회 연속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뤘지만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한국은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과 동아시아축구선수권을 거치며 ‘왕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동축구의 강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3월25일)에서 무기력한 경기 끝에 0-2로 완패했고 쿠웨이트를 4-0으로 대파(6월8일)하며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지만 8월 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1-1), 북한(0-0)과 졸전 끝에 무승부에 그쳤고 ‘영원한 라이벌’ 일본에게 0-1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어 8월17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최종전에서도 0-1로 패배,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독일월드컵에서 ‘4강 재현’은 커녕 1승조차 힘들다는 비관적인 여론이 비등해졌고 급기야 본프레레 감독은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할 새로운 선장으로 유로2004에서 네덜란드를 이끌었던 ‘장군’ 아드보카트 감독이 낙점됐고 그는 부임하자마자 강호들을 상대로 한 평가전에서 2승1무를 기록, 축구팬들을 신바람나게 하고 있다. 팬들은 ‘어떻게 똑같은 선수들을 가지고 이렇게 다른 경기를 할 수 있느냐’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한국축구는 아드보카트호 이후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되살아난 한국축구의 힘 ‘정신력’

축구에서, 특히나 한국축구에서 ‘정신력’은 굉장히 강조되는 부분이다. 중요한 경기에서 패한 후에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가 정신력이다.

외국인 지도자들이 한국축구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투지와 근성 등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전임 감독 당시 한국축구는 ‘강인한 투지’가 실종된 모습이었다. 목표의식이 실종된 듯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였다.

그러나 ‘아드보카트호’ 출범 이후 한국축구는 다시 ‘전투적인 자세’를 회복했다.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후 선수들의 정신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것이 선수단 내외의 평이다. 우선 대표팀 선수들부터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 후 가장 달라진 것으로 정신력을 꼽는다.

세계 최고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등 명실공히 ‘한국축구의 간판’이 된 박지성(24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28ㆍ토트넘 홋스퍼)도 이구동성으로 선수들의 정신 자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박지성은 스웨덴,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을 위해 입국했을 당시 인터뷰에서 “감독님 부임 이후 선수들의 정신 자세가 달라졌다.

그동안 좋은 경기를 못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선수들 스스로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감독님이 선수들의 정신력을 끌어 올렸다고 본다”고 말하며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빨리 파악해서 그라운드에서 이행하려고 한다.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표도 “훈련을 할 때나 경기를 할 때나 선수들의 집중력이 크게 향상됐다. 감독님이 명확한 지휘로 선수들을 바꿔 놓았다”고 아드보카트호 출범 이후 선수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고 말했다.

이같은 선수들의 ‘정신 재무장’은 아드보카트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전을 앞두고 파주 NFC에서 첫 소집 훈련을 할 당시 승용차를 타고 훈련장에 오는 것을 금지했고 훈련시각 준수를 강조하는 등 초반부터 선수들의 ‘기’를 제압하고 분위기를 확 휘어잡았다는 평이다.

무한경쟁 체제-강한 자가 살아 남는다

전임 본프레레 감독 시절 축구팬들의 가장 큰 불만 중의 하나가 ‘4강 멤버’들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새로운 선수들을 기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6월3일) 당시 부상으로 인해 정상 컨디션이 아니던 유상철(34ㆍ울산 현대)을 무리하게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장시켜 후반종료 직전까지 뛰게 한 것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당시 대표팀에는 김두현(23ㆍ성남 일화) 김정우(23ㆍ울산 현대) 등 중앙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는 젊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본프레레 감독은 베테랑 유상철을 선발 출장시켰고 한국은 선제골을 허용하며 패배 직전까지 몰렸지만 박주영(20ㆍFC 서울)의 동점골로 벼랑 끝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신예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며 대표팀내 ‘생존 경쟁’의 불을 지폈다. 대표적인 예가 ‘아드보카트호의 샛별’로 불리는 이호(21ㆍ울산 현대)와 조원희(22ㆍ수원 삼성)의 과감한 등용.

이란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소집된 이호와 조원희는 이란전에 예상을 깨고 깜짝 선발 기용됐고 중앙 미드필더와 오른쪽 윙백으로 맹활약하며 2-0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특히 조원희는 전반 2분 A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리는 등 ‘만점 활약’을 펼쳤고 이후 스웨덴(11월12일ㆍ2-2무)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11월16일ㆍ2-0승)전에도 선발 출장, 풀타임을 소화하며 ‘아드보카트의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총애를 받고 있다.

새로운 신인들의 등장은 기존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세 번의 평가전에서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죽을 힘을 다해 뛴 것은 이런 ‘무한 경쟁체제’ 때문이다.

월드컵 본선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감독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도 몇 번 없다. 현재까지 독일행을 예약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박지성도, 이영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게 현재 아드보카트호의 분위기다.

실험은 계속된다

3-4-3 포메이션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일월드컵에서 이 포메이션을 사용해 ‘기적’을 창출한 이래로 한국대표팀의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후임 움베르토 코엘류 감독과 조 본프레레 감독도 3-4-3 포메이션을 기본틀로 경기에 임했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마찬가지. 기본 포메이션은 3-4-3이다. 그러나 아드보카트 감독은 부임 후 첫 경기부터 포메이션 변화를 실험하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전임 감독들과 다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데뷔전인 이란과의 평가전에서 3-4-3 포메이션으로 출발했지만 후반전들어 포백 시스템으로 전환하며 4-3-3 포메이션을 시험해봤다.

스웨덴전을 2일 앞두고도 전술훈련에서 4-3-3과 4-5-1 포메이션을 위주로 공격과 수비를 시험하며 포백 시스템으로의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스웨덴,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는 ‘위험 부담이 크다’며 기존의 3-4-3 포메이션을 유지했지만 내년 1월 중순 떠나는 6주간의 전지훈련에서 시스템 변화를 모색할 가능성은 있다.

포메이션 뿐 아니라 포지션의 틀도 깨려고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측면 미드필더가 ‘본업’인 김동진(23ㆍFC 서울)을 수비수로 시험 기용한 것.

아드보카트 감독은 스웨덴전에서 김동진을 왼쪽 수비수로 기용하는 ‘깜짝수’를 던졌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도 김동진을 수비수로 선발 출장시켜 포지션 변화를 모색했다. 김동진은 두 경기 모두 대과없이 치러내 수비수로 합격점을 받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수비수라고 해서 무조건 공을 멀리 차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공을 컨트롤하고 공격 전환시 미드필더들과 유기적인 플레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김동진과 같이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가 수비수로 활약한다면 팀 전력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김동진을 수비수로 시험한 배경을 밝혔다.

박지성에 대한 실험도 매 경기 계속됐다. 이란전에서 오른쪽 윙포워드로 출전한 박지성은 스웨덴전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나섰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는 다시 왼쪽 윙포워드로 기용됐다.

‘멀티 플레이어’로서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이는 박지성을 축으로 최상의 포지션 조합을 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인터뷰 때마다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며 포메이션은 물론 선수들의 포지션에 대한 실험을 계속할 뜻을 내비쳤다.

자신감을 찾은 한국축구

아드보카트 감독 부임은 한 기자 회견에서 부임 후 가장 주력한 것으로 ‘자신감 회복’을 꼽았다. 좋지않은 결과로 떨어져 있는 사기를 끌어올려 경기력으로 이어지도록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전통적으로 한국에 강한 면모를 보인 이란을 완파한 것을 시작으로 북유럽의 축구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이며 2-2로 비겼고 동유럽의 전통 강호 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저 2-0으로 완파했다. 한국축구는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고 내년 월드컵 본선에 대한 희망이 되살아났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21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팀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상대도 한국을 상대로 쉽게 이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어떤 축구 강국이라도 한국을 만만히 볼 수 없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말이다. 이어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히딩크 감독이 냈던 성적도 기대할 수 있다”며 4강 진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아드보카트호’의 2005년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12월19일 내년 1월에 있을 해외 전지훈련 소집 명단을 확정, 발표하고 내년 1월15일께 소집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사우디아라비아-홍콩-미국으로 이어지는 6주간의 장기 전지훈련을 통해 월드컵 본선을 위한 본격적인 전력 담금질에 나선다.

덴마크, 러시아, 크로아티아, 멕시코 등 강호들과의 평가전도 예정돼 있다. 9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본선 조추첨 이후면 우리의 상대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용병술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내년 전지훈련 이후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의 하나는 전지훈련 기간 동안의 평가전 내용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월드컵으로 가는 과정 중에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는 법.

2002년 본선을 앞두고 미국 전지훈련에서 ‘최악의 결과’를 낸 거스 히딩크 감독은 결국 본선에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김정민기자 goavs@sport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