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의 화려한 출사표

명품 패션과 과감한 프리 섹스주의로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친 드라마 섹스 엔 더 시티.

이 드라마는 멋스럽고 자유분방한 뉴요커 스타일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사실 드라마가 의미있는 건 주인공들의 스타일 때문만이 아니었다.

4명의 여성이 서로 끈끈하게 맺고 있는 친밀한 관계 즉 'Female Bonding'에 대한 예찬 또한 드라마가 남긴 이야기거리 중 하나다.

'Female Bonding'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연애나 섹스, 몸 치장하는 일에서부터 취미생활까지 서로의 관심사항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높이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여성들만의 동류의식은 남편이나 남자친구와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홀로서기를 하려는 여성들에게 힘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Female bonding'을 다루는 영화들, 예를 들어 여성만으로 구성된 가족을 다룬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 여성의 자아찾기를 다룬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같은 영화들이 '페미니즘 적인 영화'로 인식되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꼭 무거운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사만다의 거침없는 섹스 이야기처럼 여성들의 내숭을 유쾌하게 까발리는 영화 '헤드 오버 힐스'를 보면 속물처럼 얄팍한 여자들만의 'Female bonding'도 때로는 진한 우정처럼, 의미있는 여성주의처럼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영화 '헤드 오버 힐스(Head over Heals, 완전히 사랑에 빠져버린)'는 남자친구가 바람피는 장면을 목격한 주인공이 새로운 룸 메이트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미술품 복원가인 여주인공 아만다가 만나는 룸메이트들은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많아 보이는 쭉쭉빵빵 모델들이다. 터무니 없는 행동을 보이는 모델들에 황당해 하던 아만다는 우연히 앞 집에 사는 멋진 남성 짐을 만나게 되고 어느덧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이제 엉뚱한 모델들이 주인공의 사랑만들기에 동참하게 되면서 여자들의 수다는 점점 요란해 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만다는 짐의 집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대책없는 여자들은 이제부터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나선다.

영화의 재미는 단연 모델들이 벌이는 스랩스틱 코미디. 마치 벤 스틸러와 오웬 윌슨 주연의 코미디 영화 '쥬랜더'의 여성 버전을 보는 듯 하다.

벤 스틸러가 톱 모델로 등장해 말도 안 되는 표정과 포즈를 지으며 개폼(?)을 잡지만 결국 대책없이 망가지듯이 이 영화에서도 여자 모델들이 멋지게 워킹하지만 끝내 우스꽝스럽게 자빠지는 식이다.

삐쩍 마른 외모를 동경하는 변태적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 조롱이나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모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다가 아니다. 영화에 캐스팅된 실제 모델들은 전쟁터 같은 패션 비즈니스에서 서로 의지해나가며 발전적인 동류의식을 쌓아나가는 모습들을 보여 준다.

대책없이 좌충우돌 하는 듯 보이는 여 주인공들이 사랑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남자들만이 주도하는 냉혹한 사회에서, 혹은 남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연애사업에서 끈끈한 'Female Bond'을 지켜나간다.

사랑에 실패한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그 인연이 제대로 된 사람인지 꼭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친구를 아름답게 치장해서 남자에게 수작을 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우정의 표현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언제나 사랑의 경쟁자가 아니라 지원자가 되어준다.

살면서 여자들만의 지독한 수다가 필요한 순간은 꼭 온다. 남편 때문에 남친 때문에 아니면 잘 풀리지 않는 인생 때문에라도.

함께 있으면 도무지 무서울 게 없는 미녀 삼총사나 칠공주 하나쯤 만들어 두는 건 어떨까? 남자가 있어도 외로운 세상 아니던가.


정선영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