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세상과의 거친 싸움

‘CanadianLiving.com’이라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Top 10 tools every woman needs’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기사는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서 ‘다이아몬드가 여성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노래한 마릴린 먼로가 분명 막힌 화장실 변기를 뚫거나 벽에 그림 한 장 걸어본 적이 없을 거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녀가 그런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모든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다이아몬드가 가득한 보석함이 아니라 망치나 끌이 담긴 공구상자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릴린 먼로의 서론에 이어서 여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열 가지 핵심 공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열 가지는 망치, 스패너, 드라이버, 펜치, 톱, 다목적 칼, 측량기, 줄자, 뚫어뻥, DIY 가이드다.

여성들이 이러한 핵심 공구들을 능숙하게 다뤄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여성의 경제력 상승과 빠른 가족의 해체로 싱글 맘이나 싱글 족들이 늘어나면서 한 때 남자들만의 집안일로 여겨졌던 집수리나 관리일이 자연스레 여자들 몫으로 맡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여성의 독립은 곱게 가꾼 보석함을 만지며 와인 잔을 기울이는 일이 아니라 ‘블랙앤 데커(유명한 공구 브랜드)’를 곁에 두고 먼지 가득한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인 것이다.

독립을 하는 여성들에게 왜 블랙앤 데커가 진정으로 필요한지 전화선을 연결하는 간단한 일도 얼마나 절실하게 중요한 일인지 궁금하다면 영화 ‘패닉룸’을 한 번 보는 것이 좋다.

여성의 독립이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 어떠한 희생을 치러야 하며 어떤 준비를 해둬야 하는지 영화는 가슴 졸이며 답을 제시한다.

남편의 외도로 절망에 빠진 주인공 멕(조디 포스터)은 당뇨병에 걸린 딸과 함께 맨해튼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

그런데 멕이 선택한 이 집에는 특별한 공간, 외부의 위험에 대비해서 만든 비밀스런 은신처인 ‘패닉룸’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기분에 사로잡힌 멕은 누구의 침입도 막을 수 있는 ‘패닉룸’을 안전한 도피처로 여기며 이혼녀로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수룩한 강도 세 명이 침입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긴 이 공간은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돌변하고 패닉룸으로 몸을 숨기고 강도를 내?을 궁리를 하는 두 모녀와 패닉룸에 은닉된 돈을 빼내가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강도들의 대치상황은 점점 격렬해진다.

과연 모녀는 패닉룸에 안전하게 숨은 걸까, 위험하게 갇힌 걸까. 묘하게 모순적인 상황에서 영화는 공포를 자아낸다. 그런데 공포의 정점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순발력을 발휘하는 멕의 공구 사용 능력이다.

휴대용 가스 점화기로 막강 화력을 일으키고 집안 전화선을 끌어다가 미처 연결하지 못한 패닉룸 안의 전화 본체에 연결시키고 도끼같은 망치로 집안 곳곳 숨겨진 CCTV를 없애고….

분명 그녀는 평소에도 블랙앤 데커 공구 세트를 곧잘 이용했을 것이고 집안의 가스나 전기 시스템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미국과 유럽에서 ‘홈 데포(Home Depot)’와 같은 창고형 하드웨어 스토어나 ‘트렌드라인(Trendline)’같은 목공전문점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멕은 집도, 아이도 모두 무사하게 지켜낸다. 이혼 이후 처음 홀로 선 집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인 그녀는 이제 진정 가장이 된다.

외부의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맞서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완벽한 홀로서기의 시작, 사실은 가까운 데 있다.

막힌 변기 뚫기, 터진 전구 갈기, 시멘트 벽에 대못 박아 액자 걸기처럼 사소한 일상의 문제에 직접 맞서는 일. 그것이 독립의 시작이 아닐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g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