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벽' 넘은 한국계 - 세계 스포츠 무대서 별로 뜬 그들이 자랑스럽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사회의 뿌리깊은 차별은 의외의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에도 끄떡 않던 견고한 차별의 장벽은 혜성같이 나타난 한 인물의 등장으로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슈퍼볼에서 MVP를 거머쥐어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한국계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 워드(30).

그의 유명세가 혼혈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통적인(?) 편견에 균열을 낼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본격적인 변화라고 하기에는 얼마 못가 식어버리는 우리의 ‘냄비 근성’이 걱정되지만 사회 곳곳에서 혼혈인 차별에 대한 반성의 움직임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워드 열풍’으로 전 세계 스포츠무대를 주름잡았던 정상급 한국계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인종차별을 피해 과거에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선수도 있었지만 ‘정면돌파’해 뿌리깊은 차별을 극복했던 선수들도 많았다. 이들 덕분에 이제 한국계라는 사실은 ‘결정적인 핸디캡’이 되고 있지 않다.

하인스 워드(미국ㆍ미식축구)
미 프로풋볼 왕별로 뜨다

미 프로풋볼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 결승에서 볼을 잡고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 프로풋볼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하인스 워드가슈퍼볼 결승에서
볼을 잡고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워드는 남들과 ‘똑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했다.

흑인 주한미군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그리고 부모의 이혼과 가난은 워드에게는 고통스런 ‘낙인’이었다.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루이지애나의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8살 때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깨 애틀랜타 부근에 정착한 워드는 포레스트파크 고교 재학시절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을 포함해 모든 공격 포지션을 소화해냈으며 야구에선 빠른 발을 앞세워 톱타자로 활약했다.

졸업반 때 플로리다 말린스로부터 2만5,000달러의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대학에 가야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집에서 가까운 조지아 대학에 진학했다.

98년 졸업후 피츠버그 스틸러스에 입단한 워드는 팀의 간판 공격수로 성장했다. 2001년부터 4시즌 연속으로 1,000야드 이상의 패스를 받아내 팀의 주전 와이드리시버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해 9월 4년간 2,750만달러(약 267억원)의 조건으로 재계약한 워드는 피츠버그의 역대 최고연봉 선수로 이름이 올라 있다. 여기에 슈퍼볼 MVP라는 ‘감투’가 더해져 워드는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됐다.

가네다 마사이치(일본ㆍ프로야구)
일본 프로야구 최다승 투수

일본 프로야구 연감에는 한국인이 세운 두 개의 대기록이 실려 있다. 장훈이 기록한 통산 최다안타(3,085개) 기록과 가네다 마사이치(63ㆍ한국명 김정일)가 기록한 통산 최다승(400승) 기록이 그것이다.

한국 국적을 가졌던 장훈과 달리 일본에 귀화했다는 이유로 가려져 있지만 가네다는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다.

1951년부터 무려 14시즌 동안 연속으로 한 시즌 20승을 기록한 것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4,490개의 탈삼진 기록 역시 일본 프로야구 최다 기록이다.

186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속구와 낙차 큰 변화구가 주무기였던 가네다와 일본 야구계의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와의 58년 맞대결은 아직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 당시 개막전에서 요미우리와 맞붙었던 가네다는 나가시마를 4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워 완승을 거뒀다.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철인 28호’의 주인공인 가네다 쇼타로의 이름도 가네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73년엔 롯데의 지휘봉을 잡아 74년 팀의 사상 첫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가네다의 글러브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전시돼 있을 정도다.

미셸 위(미국ㆍ여자프로골프)
세계 골프계 신드롬 일으킨 천재소녀

미셸 위 (연합뉴스)

미셸 위(17)의 이미지는 한국계 선수들이 흔히 겪는 차별과는 동떨어져 있다. ‘골프 신동’, ‘터미네이터’, ‘장타 소녀’ 등의 화려한 별명이 미셸 위를 수식한다. 여기에 하나 더 따라붙는 수식어는 ‘1,000만달러의 골프소녀’.

지난해 10월 나이키, 소니와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는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미국 여자프로골프계의 가장 큰 뉴스메이커로 군림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5년의 뉴스메이커 23명 가운데 미셸 위를 포함시켰고, 폭스스포츠도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스포츠인 10명’가운데 5번째로 미셸 위를 꼽았다.

LPGA에서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한 미셸 위가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기 때문. 미스코리아(85년) 출신의 어머니 서현경씨를 빼닮은 미모와 183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거리 300야드의 장타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다.

남자대회에서 번번이 컷오프하며 ‘성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남자 선수들을 능가하는 배짱과 파워는 미국의 골프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89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5세때인 94년 골프를 시작한 미셸 위는 각종 아마대회를 석권했고, LPGA 투어에서 최연소, 최단기간 ‘상금 100만 달러 돌파’의 기록을 세웠다.

토비 도슨(미국ㆍ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입양아 출신… 인간승리 표본

토리노 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부문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토비 도슨(27ㆍ한국명 김수철)은 한국계 입양아 출신이다. 부산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시설에서 자라던 도슨은 3세 때인 82년 미국 콜로라도주의 스키 강사 부부에게 입양됐다.

4세에 처음 스키를 시작해 6세 때 알파인 경주에 출전했고, 12살 때 모굴로 종목을 바꾼 도슨은 미국 모굴의 최고수로 평가받는다.

2000년엔 사고로 인한 신장파열의 큰 부상으로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달 이탈리아 토리노 올림픽에선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메달 사냥에 나선다.

지난달 미국 디어벨리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솔트레이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얀 라텔라를 꺾고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페이스가 좋다.

도슨은 어린시절 불렸던 ‘수철’이란 이름을 버리지 않고 매년 여름 한국출신 입양아들의 캠프에서 카운슬러로도 일하고 있다.

넬리 킴(미국ㆍ체조)
코마네치와 쌍벽 이룬 비운의 스타

불과 몇분 차이 때문에 운명이 달라진 게 넬리 킴(49ㆍ한국명 김경숙)과 나디아 코마네치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코마네치는 체조 역사상 첫번째 10점 만점 연기를 선보였다. 그러나 1분도 채 되지 않아 당시 소련의 넬리 킴이 다른 종목에서 10점 만점의 연기를 펼쳤다.

넬리 킴은 코마네치와 함께 똑같이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으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코마네치에게 쏟아졌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절반의 한국인’ 넬리 킴은 이 때문에 ‘영원한 2인자’ 취급을 받고 있다. 많은 체조인들은 당시 넬리 킴의 연기가 코마네치보다 더 나았지만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비운의 스타’인 넬리 킴은 모스크바 올림픽 사이클 금메달리스트인 발레리 모프찬과 결혼했다 이혼한 뒤 96년 미국 미네소타에서 거주하고 있다. 84년부터 체조 국제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새미 리(미국ㆍ다이빙)
올림픽 2연패 위업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선 사상 처음으로 백인이 아닌 다이빙 선수가 금메달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선수는 4년 뒤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어 남자 다이빙 선수로는 최초의 2연패 선수로 기록된다.

주인공은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68)다.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순기 선생의 아들로 20년생인 새미 리 박사는 남가주대학(USC)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이비인후과 의사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학창시절 미식축구 선수를 꿈꿨으나 키가 157cm에서 더 이상 크지 않아 다이빙을 택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비틀기 역회전’ 기술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미국 대표팀의 동료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낸 뒤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원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LA 지역의 한국계 이민의 대부로 통하며 최근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그 외의 선수들
북미 아이스하키의 스타들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 최초의 한국계 선수로 91, 92년 피츠버그 펭귄스 소속으로 스탠리컵을 차지한 백지선(39ㆍ짐 백)과 밴쿠버 커넥스에서 뛰고 있는 박용수(29ㆍ리차드 박) 등도 세계 정상급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다.


한준규 기자 manbo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