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감독 '구세주'쉴새없이 이어지는 폭소, 대중적 코미디 영화의 전형

'웃음을 줄테니, 표를 사라'. <구세주> 류의 코미디가 노리는 바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가문의 위기>나 <투사부일체> 등의 무뇌아적 코미디가 한국 코미디 영화의 흥행 기록을 연이어 갈아치우는 극장가 현실을 고려할 때 연타로 터지는 웃음 퍼레이드를 흥행 비책으로 내놓은 이 코미디는 일단 경쟁력을 확보한 셈이다.

말하자면, <구세주>는 젠체하는 '하이 코미디' 보다 말초적일지언정 왁자지껄한 웃음판을 벌일 수 있는 대중적 코미디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최강의 웃음으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라는 다짐에 값하기 위해 이 영화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소의 향연으로 관객의 의식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

<위대한 유산>의 송창용 프로듀서가 기획한 영화답게 <구세주>는 웃음의 횟수와 빈도, 그것이 터지는 지점 등이 비교적 잘 계산돼 있는 코미디다.

대단히 독창적이거나 음미해볼 만한 코미디의 경지를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하겠다는 영화의 목적은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다.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졸부의 아들 임정환(최성국)은 놀멘놀멘 하며 세월을 보내는 팔자 좋은 연극학과 학생이다. 여대 법학과 학생들과 미팅 자리에서 정환은 똑똑하지만 외모가 딸리는 고은주(신이)를 만난다.

물에 빠진 은주를 정환이 얼떨결에 구해주면서부터 그를 새 생명을 얻게 해 준 구세주로 생각한 은주의 육탄공세가 시작된다. 시간은 흘러 은주는 검사가 됐고 정환은 군제대 후에도 여전히 놈팽이 대학생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다.

그 순간, 정환 앞에 쌍둥이 아이를 대동한 은주가 나타난다. 생면부지의 핏덩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자 정환은 하는 수 없이 은주와 결혼에 동의한다.

어울리지 않는 남녀 캐릭터의 대결과 화합을 축으로 한다는 점에서 <구세주>는 <가문의 영광> 시리즈와 일맥상통한다.

차이가 있다면 <구세주>는 최성국과 조상기, 신이와 김수미, 백일섭과 박원숙 등 주변 인물들로 대결의 모티프가 확장된다는 점. 정환이 은주의 구세주라면, <구세주>의 웃음을 책임지는 메시아는 최성국과 신이 콤비다.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처음으로 공동 주연한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꽃피운다. 물만난 고기 마냥 찰진 궁합을 과시하는 두 코믹 배우의 온 몸을 던진 코믹 연기는 처연하게 보일 정도.

두 배우의 체면을 버린 연기로 일궈낸 <구세주>의 코미디 코드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좌충우돌 몸으로 웃기는 슬랩스틱 개그와 악취미 취향의 화장실 유머, 엇박자로 리듬을 깨는 허무 개그 등이 지뢰처럼 매설돼 있다.

이런 류의 영화가 내세울 게 있다면 관객을 왕으로 모시려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다. 오직 웃기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봉사 정신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기 마련이라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성격과 환경, 모든 것이 상반된 두 남녀를 엮기 위해 동원된 '원 나잇 스탠드'와 '아이', 도무지 지적으로 보이지 않는 은주가 검사가 되고 뺀질거리는 정환이 순순히 결혼에 응하는 등의 억지 설정도 큰 흠결이 되지 못한다.

빤스 벗고 웃겨라 성공한 한국 코미디의 공식인 웃음과 감동의 황금비율을 <구세주> 역시 따르려 한다. 정신이 혼미할 만큼 웃기다가 돌연 감동의 눈물 한 방울로 마무리하는 코미디의 정석을 따라 관객의 발길을 붙들려 하는 것이다.

적절히 배합된 것은 극적 요소들만이 아니다. <구세주>는 성공한 코미디 영화들의 뉘앙스를 매끈하게 흡수했다. 하룻밤 동침이 발단이 되는 설정은 <가문의 영광>에서, 판이한 성격을 지닌 커플의 질긴 관계는 <위대한 유산>에서,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결말은 <조폭마누라> <마파도>의 코드를 따른다.

극적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일관성, 그럴듯한 주제의식은 애초부터 포기한 듯한 이 좌충우돌 코미디는 웃겨주는 것만으로 ‘2시간-7천원’의 값어치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한다.

백일섭과 박원숙, 박준규, 그리고 김수미 등 노회한 중견배우들까지 체면을 버리고 웃음 하나를 위해 전력투구한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이렇게 혼연일체로 한 목소리 내는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은행나무 침대> <쉬리> <단적비연수> <태극기 휘날리며> 등 굵직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참여했던 신인 김정우 감독도 '다음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신인감독의 올인 정신을 코미디에 걸었다.

'웃길 수만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하겠어'라고 선언한 영화가 유리한 이유는 웃을 준비를 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상대적인 관대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곳곳에는 목불인견의 억지 설정과 세련되지 못한 유머가 있다.

모든 걸 얻을 수 없다면, 하나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단순한 목적의식이 만들어낸 필연의 결과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 영화의 순진한 만듦새는 어떻게든 비판을 피해가면서 최대한 흥행의 요소를 버무리기 위해 머리를 쓴 영악한 상업영화들에 비해 밉지 않다.

'기왕 웃기기로 작정한 몸, 빤스라도 벗고 봉사하겠다'는 그 저돌적인 헌신성에 기꺼이 무장해제를 당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세주>는 정글과 같은 흥행의 도박판에서 오직 '웃음'이라는 패 하나로 모든 걸 얻으려 한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하나로 수렴되는 이 패가 회심의 승부수가 될지 주목된다.


영화평론가 장병원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