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말까지 3연작 프로젝트 앨범… 첫카드는 '모던 록'지난 19년 정리 앞으로 19년 모색 모험이자 실험 감행

비가 주적거리던 10월의 어느 날, 투명한 유리 천장이 인상적이던 서울 강남의 한 와인바에서 신승훈과 마주했다. 신승훈은 인사를 마치자 ‘가왕’(歌王) 조용필이 했다는 충고를 떠올렸다.

신승훈은 “(조)용필 형이 데뷔 때부터 기자들 하고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웬걸요. 밤에 통화를 할 때면 기자 분들하고 술 한잔을 하고 있더라고요. 완전히 속았죠. 자기 혼자 기자들 다 독점하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나도 이제 사람들하고 좀 편하게 지내보려고요. 이런 자리(인터뷰) 말고 언제 편하게 술 한잔씩 꼭 해요”라고 말했다.

신승훈은 오랜만에 마주한 기자와의 어색함을 달래고 싶어서 적당히 농담을 섞어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신승훈은 1집부터 8집까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10집까지 1,500만장 이상의 누적 판매고를 기록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그를 ‘발라드 황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 위치까지 신승훈은 자신의 말대로 ‘꽉 쪼여진 나사’처럼 살아왔다. 노래만 생각하며 달려왔다.

신승훈은 이제 자진해서 그 나사를 풀겠단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천천히 걸어가겠단다. 최근 발표된 그의 삼연작 프로젝트 앨범 <3 웨이브즈 오브 언익스텍티드 트위스트(3 Waves Of Unexpected Twist)>은 그의 다짐이 잘 녹아있다.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카드는 ‘모던 록’이다. 그는 “오아시스나 블러가 하는 노래를 신승훈이 해도 좋구나”라는 반응이 기다려진단다. 신승훈은 내년 말까지 2차례 더 이런 모험이자 실험을 감행할 계획이다. 지난 19년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19년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모범생’ 신승훈에게 일탈과도 같은 음악적 변화를 그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이번 활동은 대중에게도 한결 친숙해진 느낌이다.

=대중과 너무 멀어졌다는 생각에 겁이 났어요. 제가 어느 날 TV에 나오면 ‘재가 왜 나오지’ 하는 분위기인 거에요. 7,8년 정도는 공연만 하다 보니까 기존 팬들하고는 유대감이 깊어졌지만 일반인들과는 멀어진 것 같았죠. 그동안 너무 멀리 온 게 아닌가 싶어요.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가 이제 겨우 능선에 올랐어요. 꼭대기는 아니고요. 능선에서 뒤를 돌아보고 사람들한테 같이 가자고 하는 게 맞겠지요.

▲‘능선’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같다.

=맞아요. 전 아직 멀었죠. (조)용필 형이 있는데….(웃음) 전 아직 산 정상에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조)용필 형 35주년 기념 무대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난 이런 무대에 언제 서보나’‘더 해야겠구나’‘아직 멀었구나’ 하고 느꼈죠.

▲데뷔 후 처음으로 미니앨범을 냈다.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시대가 변했죠. MP3나 컴퓨터로 음악 들으면서 LP나 CD처럼 갈아 끼워야 하는 불편함 이 없어졌어요. 자기가 듣고 싶은 이 가수 저 가수의 음악을 짜집기해서 듣는 옴니버스 시대가 된 거죠. 그렇다 보니 제가 예전처럼 10곡 이상을 앨범에 담으면 그 ‘자식’같은 노래를 책임질 수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6곡을 담았어요. 이 노래들 만큼은 내가 책임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3연작으로 나올 이번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새롭다.

=정규 앨범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냈죠. 일탈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앨범표지를 보면 세가닥으로 꼬이는 모양이 나와요. 딱 그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일렉트로니카를 신승훈이 하니까 이렇구나’ ‘오아시스나 블러가 하는 음악인데 신승훈하고도 어울리네’ 같은 반응이 나왔으면 해요. 세번째 프로젝트까지 다 나왔을 때까지 기다려서 봐주면 좋겠어요.

▲가을철인데도 인기를 얻는 발라드 곡을 찾기 어렵다. 외롭지 않나.

=한국은 원래 장르에 따라서 쏠림이 심하잖아요. 1990년대에는 하우스가 그랬고 2000년대 들어서는 테크노가 인기였죠. 시대의 흐름이 아닌가 싶어요. 근데 이게 잠시의 현상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발라드의 약세 대신 후렴구가 강조된 일명 ‘후크송’이 대세다. 가요계의 변화를 실감하는가.

=이번 녹음을 할 때 컴퓨터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믹싱을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내가 데뷔할 때는 110만원 정도 하는 야마하 엔에스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작업을 했어요. 좋은 스피커가 보급되면 더 좋은 사운드를 담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던 시절이었죠. 근데 15만원짜리 컴퓨터 스피커를 놓고 믹싱을 하는 거에요. 그렇게 되면 아예 베이스 음대가 아예 죽는다는 문제가 있어요. 소리를 압축시켜야 하거든요. 댄스 음악이야 그렇다쳐도 그 외의 장르는 문제가 심각해져요. 예를 들면 20인조 오케스트라로 만든 사운드도 압축을 할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인 거죠. 30년 전 음악이지만 비틀즈나 핑크플로이드 같은 그룹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사운드가 깊고 풍부하잖아요. 앞으로 30년이 흘러서 후대가 2000년대 음악을 들었을 때 창피하지 않을까요. 바퀴벌레는 태초 때부터 있었다고 들었어요. 빙하기 같은 기후변화에도 살아 남았죠. 음악도 마찬가지겠죠. 지구가 멸망해도 어딘가 음악은 바퀴벌레처럼 남아 있을 텐데 이런 식이라면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한탄스럽죠.

▲일본 활동은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번 프로젝트 음악이 일본 관계자들에게도 고무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사실 일본에 발표할 발라드 곡을 만들어 놓은 상황인데 이번 걸로 가자고 할 정도죠. 내년 투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아레나 투어 같이 크게 하는 것보다 통기타를 치면서 작은 규모로 여러 곳을 찾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내년이면 제가 데뷔 20주년 준비에 들어가는데요. 일본 관계자들은 2010년 12월까지 20주년 기념 활동 계획을 짜고 있더라고요. 그 치밀함에 놀랐죠. 여러가지 이벤트를 위해 일정과 장소를 조정하고 있어요.

▲일본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아타미라는 일본에서 온천이 유명한 작은 도시가 있어요. 공연 전날부터 모포를 쓴 팬들이 줄을 서고 있었어요. 전 그 때 일본 아이들 그룹이 와서 팬들이 많구나 했죠. 근데 자세히 보니까 제 팬이었어요. 작은 도시까지 절 보러 오신 분들을 보니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승훈스럽다’는 말이 있다면 그건 무슨 뜻일까.

=‘안주하지 않는다’가 아닐까요. 가요계 주기를 봤을 때 한 가수가 나오면 5년 정도를 봐요. 3년 후 최고가 되고 4,5년 뒤에는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죠. 전 4집 때 앞의 앨범보다 더 잘됐으니까요. 후배들에게 그런 롤 모델로 남고 싶어요.

▲평생을 음악한다고 했다. 묘비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래를 할 줄 알았던 사람 신승훈 여기 잠들다’ 정도면 좋지 않을까요. 노래를 잘 하다가 앨범을 많이 팔았다가 아니라 노래를 할 줄 알았던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성한 기자 wing@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