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디씬의 판도를 바꿨다"평단 호평·흥행 두마리 토끼 잡아차별화 된 멜로디 라인과 신세대 감성의 가사 신선한 충격

90년대는 ‘음악 산업’이란 용어가 국내에 처음으로 등장한 한국 대중음악의 절대적 호황기였다. 당시는 인터넷이 출현하기 전 통신이 온라인 세상을 주름잡고 있던 시대였다. 단말기나 컴퓨터 통신을 통해 수많은 장르의 커뮤니티들이 생성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막 열려나가고 있었다.

90년대의 음악씬에서 <서태지와 아이들>를 필두로 한 랩 댄스 장르의 범람과 홍대권 음악으로 지칭되는 ‘인디밴드 열풍’의 지분은 가히 절대적이다.

신드롬으로까지 불린 서태지의 등장은 소위 신세대 문화를 사회적 이슈로 떠올린 최대 사건이었지만 홍대 앞 길거리에서 밴드들이 난장판을 벌인 소위 ‘스트리트 펑크 쇼’도 후끈했던 열풍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젊고 새로운 문화의 등장은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태지와는 달리 매체를 통해 전파된 인디음악의 태동기 모습은 본질이 왜곡된 이미지만이 난무했다. 일시적인 젊은이들의 광란이나 새로운 유흥문화의 발흥쯤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인디음악은 곧 펑크로 대변되는 오해 속에서 록의 본고장 영국의 모던 록 밴드와 비견할만한 상큼한 사운드로 관심을 모은 두 밴드가 있다. 이석원이 이끄는 <언니네 이발관>과 김민규가 리드하는 <델리 스파이스>다.

이들이 표방했던 음악은 당시 영국에서는 주류였지만 국내에는 생소했던 모던 록이다.

이 두 팀은 명멸의 인터벌이 짧은 대중음악계의 현실적 관행을 비웃듯 모진 시련을 딛고 지금은 한국 모던 록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또한 전문 뮤지션출신이 아니라 90년대의 시대적 미디어를 상징하는 통신을 통해 결성된 밴드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지금은 3인조의 라인업이지만 <델리 스파이스>는 1995년 3월 록음악동호인 김민규(보컬/기타), 윤준호(베이스/보컬), 오인록(드럼), 이승기(키보드)의 4인조 밴드로 시작했다.

리더 김민규가 당시 PC통신하이텔의 모던 록 감상모임 동호회에서 구인광고를 통해 밴드 결성을 시도해 그 해 8월 홍대 앞 클럽 ‘드럭’ 무대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들은 프로뮤지션을 지향하진 않았지만 2년의 산고 끝에 한국대중음악의 명반(100대 명반 순위 9위)이 될 데뷔 앨범 ‘Deli spice’를 생산했다.

1집은 “대한민국 인디씬의 판도를 바꾸었다”는 평단의 호평은 물론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냈다. 이전과는 차별되는 멜로디 라인과 신세대적 감성을 담은 가사는 주류는 물론 펑크와 하드코어가 난무하던 인디음악계에서도 신선했다.

2명의 보컬 시스템으로 녹음된 총 11곡 수록곡은 하나같이 주옥같다. 찌그러진 디스토션 인트로 사운드가 인상적인 첫 트랙 ‘노 캐리어’와 ‘오랫만의 외출’ 2곡은 윤준호의 작품이고 나머지 9곡은 모두 리더 김민규의 창작곡이다. 모든 수록곡들은 일상을 소재로 한 곡들이다.

김민규가 노래한 90년대 한국 모던 록의 최고 명곡으로 회자되는 3번 트랙 ‘차우차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2002년 영화 ‘후아유’에 OST로 사용된 이들의 대표곡이다.

처음 타이틀 싱글로 생각했다는 귀에 감겨들어오는 윤준호 보컬이 인상적인 밝고 경쾌한 멜로디의 ‘가면’, 서정적 멜로디의 ‘기쁨이 없는 거리’, 경쾌한 리듬과 엇박자가 느껴지는 독특하고 재미난 소재의 ‘저승 탐방기’, 사운드의 질감이 독특한 ‘누가?’ 유머러스한 곡 진행의 묘미가 흥미로운 ‘콘 후레이크’도 추천할만한 곡이다.

리더 김민규는 활발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밴드를 이끌면서 ‘스위트피’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인디 레이블 ‘문라이즈’를 설립했다. 다재다능한 음악적 역량을 펼쳐내는 중요 뮤지션으로 성장한 그의 성장과 걸맞게 1집 또한 대중음악사에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넘어 신화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