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의 그림자 후광으로 덮다기존 시나리오 틀 유지, 감각적인 몽타주 장면 독창성 뛰어나

연작은 늘 전작에 대한 비교의 위협을 받는다. 일찍이 연작이 전작을 넘어선 경우는 드물었다. 다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는 모든 작품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여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대부분의 연작은 전작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영향 아래서 위축되었다. 원작은 지명도라는 후광을 주기도 하지만 그림자라는 족쇄를 채우기도 한다.

연작보다 더 불편한 것은 성공한 영화를 다시 제작한 경우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작품은 <춘향전>이다. <춘향전>은 한국 영화 초창기부터 임권택의 <춘향뎐>까지 시대와 감독을 달리하여 무수히 제작되어 왔다.

<춘향전>은 한국영화사와 함께 한 영화로 기억될 작품이다. 한국 영화의 시나리오가 미국에 판매되어 영화화되었다. 시나리오 빈곤에 허덕이는 할리우드에게 동아시아의 시장은 매력적인 시나리오 황금어장일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미국에서 할리우드 버전으로 제작된 영화가 <마이 쎄시 걸>이다. 엽기적인 그녀인 전지현과 건방진 여성인 엘리사 커스버트의 연기 대결을 지켜보고 싶거나 한국의 전철 풍경과 뉴욕의 전철 분위기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기대가 관객의 관람동기 영순위 일 것 같다.

잘된 번역은 원작자의 의도를 잘 살리는 번역이다.

성공적인 리메이크는 전작의 장점을 살리고 리메이크의 독창성을 발휘하는 작품일 것이다. <마이 쎄시 걸>이 살려낸 장점은 시나리오의 틀을 유지했다는 것이며 독창성은 감각적인 몽타쥬 장면으로 시간을 압축하고 코믹한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한국의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이 발휘한 도발적인 매력과 과격한 코미디의 느낌에 대한 관객의 지지는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 곽재용의 <엽기적인 그녀>는 서사 구성의 짜임새도 좋았지만 견우 차태현과 그녀 전지현의 연기와 코미디 호흡이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전체 서사는 동일하지만 정서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감독 곽재용의 감수성과 얀 사뮤엘의 감각의 다름에서 틈이 생겨난다.

한 편의 영화는 감독 자신의 초상화에 가깝다. 영화 연출은 감독의 보이지 않은 손이 만들어낸 마술과 같다. 앙드레 모로아는 “나에게 영화 작업은 스크린이라는 밥상에 반찬을 차리는 행위”이며, “영화보는 것은 차려낸 밥상을 받는 것”과 같다고 했다.

대중미학자 박성봉은 “감독은 스크린 이라는 밥상 저편에서 나를 위해 땀을 흘리면서 밥상을 차리고 있는 존재”라고 각주를 달았다. 감독은 시나리오라는 설계도를 통해 다양한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통해 한편의 건축물을 만드는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동일한 요리책을 참고하지만 서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독창적인 조리법으로 한 편의 요리를 완성하는 요리사와도 같다.

두 편의 영화는 동일한 시나리오가 다른 문화와 배우와 배경과 감독이 만나 얼마나 다른 건축 스타일과 요리의 맛을 내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트뤼포가 로셀리니에게 배운 것이 ‘영화란 삶을 찍는다는 것’이라고 했다면 얀 사무엘은 ‘영화란 시나리오를 카메라로 옮기는 것보다 문화와 작가의 감성을 스크린에 담는 것’이라고 영화를 통해 발언하고 있다.

대학생 조단(엘리사 커트버트)은 술에 취해 엽기적으로 돌변하고 대학생 찰리(제시 브래드 포드)는 그녀를 귀가시키는 일을 전담한다. 남녀의 잦은 만남은 감정의 성장을 촉진하는 단비와 같다.

그들이 만난 지 33일째 되는 날 연주하는 조단에게 찰리는 장미를 선물한다. 그들은 해변으로 간다. 그리고 조단은 난간에 떨어진 맥주병 찰리를 구해주면서 감정은 사랑의 꼭지점으로 치닫는다. 어느 날 조단은 찰리에게 시한부 이별을 통보하고 타임캡슐에 넣을 연애편지를 써올 것을 부탁한다.

그들은 연애편지를 타입 캡슐에 묻고 나서 1년 후에 만날 것을 약속한다. 1년 후 그들의 만남은 어긋난다. 지하철을 타고 떠난 조단과 플랫폼에 남은 찰리의 모습은 멜로 영화의 전형적 장면으로 연출된다. 혼자 남은 찰리는 조단이 지하철을 타고 떠난 공간에 혼자 섬처럼 서 있다.

찰리는 조단을 인생의 단 한명의 여자로 생각한다. 찰리에게 조단은 유일한 여자이며 사랑과 동의어이다. 조단에게 찰리 역시 자신의 식탁에 차려진 행복의 빵이지만 차마 그 빵을 먹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과거의 상처다.

상처는 바로 약혼자의 죽음이며 자신의 행복은 죽은 약혼자를 위해 유보하거나 거부한다. 조단은 1년의 시간 동안 찰리와 미래를 위해 약혼자와 보낸 과거의 기억을 청산하려 한다. 청산은 자기 치유의 다른 말이다. 두 사람은 마지막 장면에 재회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엽기적 그녀>가 코미디와 멜로가 반반씩 섞였다면 <마이 쎄시 걸>은 멜로가 8할이다. 이 영화는 조단의 사랑을 통한 자기 치유 과정과 찰리의 첫사랑 성공기가 결합된 정통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준수한다. 할리우드가 세계 관객과 소통하는 전략이 스타 시스템과 장르 규칙의 준수에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이 영화가 보여준 또 다른 보너스다.



문학산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