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유성기 시대의 3대 명곡 중 하나유행가 열풍주도 전성기 활짝 연 빅 히트곡나라 잃은 설움 달래준 민족노래 故 박정희 대통령 애창곡으로 유명

1930년대는 사실상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태동기다.

대중가요를 신민요라 표현했던 당대 유성기 시대의 3대 명곡을 꼽으라면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 이애리수의 '황성의 적(1932년)', 그리고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년)'을 거론할 수 있다. 지금은 거금을 준다 해도 구할 수 없는 초 희귀 유성기 명반들이다.

유행가 열풍을 주도하며 전성시대를 열어 제친 최초의 빅히트 곡은 단연 '황성옛터(원 제목은 황성의 적)'다. 발표 당시엔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준 민족의 노래로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이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애창곡을 넘어 지금까지 많은 대중에게 널리 애창되는 불후의 명곡이다.

1932년 빅터 레코드를 통해 발표된 이 노래는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동시대의 남인수, 신카나리아, 김정구는 물론 손시향, 최정자, 이미자, 조용필, 배호, 나훈아, 은방울자매, 윤복희, 박일남, 오기택, 문주란, 이수미, 이은하, 한영애 등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총망라되어 이 노래에 불멸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노래를 부른 최초의 가수는 이애리수(본명 이음전 혹은 이보전)다.

독특한 예명 '애리수'는 서양 이름 '앨리스'를 따온 것이라 한다.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9세 때부터 극단의 배우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10월 28일 그녀의 생존소식을 알린 보도이전까지 이 가수는 1935년 이후 한 줌의 소식조차 궁금했던 베일에 가려진 전설적인 여가수였다.

1960년 한 잡지에 근황이 한 차례 소개되었을 뿐 세상에서 그녀의 존재는 완벽하게 지워졌었다. 그래서 그녀에 관한 온갖 소문과 억측만이 난무했었다. 이애리수의 생존소식은 인터넷 검색순위 1위를 기록했을 만큼 경악스럽다.

1910년생이니 그는 우리나이로 100세를 코앞에 둔 99세의 나이다. 2006년까지 한국 대중가요계의 최고령 가수는 신카나리아(본명 신경숙)였다. 당시 94세였던 그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현재 93세인 반야월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제 최고령 생존가수의 월계관은 이애리수의 차지가 되었다.

이애리수의 생존을 최초로 보도한 신문기사는 '황성옛터'가 한국인이 작사하고 작곡한 1호 대중가요로 주장했다. 명백한 오보다. 한국인 최초의 창작가요는 ‘황성옛터’보다 3년 앞선 1929년에 발표된 김서정 작사작곡의 '낙화유수(일명 강남달)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정숙이고 1927년 제작된 무성영화 '낙화유수'의 영화주제가로 사용된 곡이다. 물론 작곡가 전수린이 작곡한 ‘황성옛터’, ‘원성’같은 막간가요가 ‘낙화유수’보다 앞서 막간 무대에서 소개된 정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식화’ 할 수 없는 이유는 정식 ‘음반’으로 발표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먼저 발표된 ‘희망가’나 ‘사의 찬미’도 최초의 대중가요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도 외국번안곡이기 때문이다. 황성옛터'는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라기 보단 대중가요 전성시대를 만개시킨 최초의 히트곡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1938년에 뻐젓하게 재발매된 <황성의 적>이 금지1호곡이란 대목도 확인할 길은 없다. 오히려 가사는 그대로 두고 제목만 변경해 1933년 이경설이 발표한 최초 리메이크 버전 <고성의 밤>은 금지의 기록이 있다. 민족감정을 대변해 금지된 이애리수의 노래로는 1933년 6월에 발매되었다가 9월에 금지된 <변조 아리랑>이 있다.

이참에 최초의 대중가요 ‘낙화유수’의 창작자 김서정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그의 본명은 김영환이다. 20-30년대에 단성사의 무성영화 변사로 활약했던 그는 1924년 무성영화 ‘장화홍련전’으로 데뷔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활동 때는 본명을 사용했지만 대중가요 창작자로는 예명 김서정을 사용했다. 이애리수와 그는 ‘황성옛터’ 발표 이전인 1931년에 ‘유랑의 노래’를 통해 이미 인연을 맺었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