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미인도 논란드라마 '바람의 화원' 이어 신윤복은 여자·김홍도 악행 설정 등 도마위에

한수련 원작 영화 <미인도>가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성(性) 정체성을 비틀었을 뿐 아니라, 단원(檀園) 김홍도(1745~?)의 악행까지 설정하면서 <바람의 화원>에 이어 역사왜곡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 김홍도가 성폭행범, 살인자(?)

13일 ‘팩션(faction; 사실(fact)와 허구(fiction)를 뒤섞은 것)’형식의 영화와 소설로 발표된 <미인도>에서는 김홍도가 가상인물 강무를 독화살로 살해하고, 심지어 여성으로 묘사된 신윤복을 성폭행하는 장면까지 나와 역사왜곡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미술사가들은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이다. 홍선표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는 “김홍도는 인문학적, 문예적 가치를 숭상한 인물로 폭력과 악행을 저질렀다는 설정은 말도 안된다”며 “상업 영화가 어느 정도 자극적일 수 있다는 측면은 이해하지만 실물명을 거론했을 때 역사적, 문화적, 예술사적 의미가 왜곡된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안휘준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은 “뻔히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것을 혜원과 단원의 후손들이 본다면 어떻겠나”라며 “이들을 아끼는 미술사가 역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신윤복 = 여자(?)

<바람의 화원>에 이어 <미인도>가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 역시 논란거리다. 한수련 작가는 신윤복이 <미인도>에 ‘얇은 저고리 밑 가슴속 가득한 정을 붙끝으로 전하노라’라는 첨문을 남긴데서 이 그림의 모델이 신윤복 자신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신윤복의 여성 설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신윤복에 관한 거의 유일한 기록인 ‘근역서화징’에는 “신윤복. 자 입보(笠父). 호 혜원(蕙園), 고령인(高靈人). 부친은 첨사(僉使) 신한평(申漢枰)”이라 해 그가 남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선시대 족보에 여성은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신윤복이 활동한 조선시대 상황에 비추어봐도 이런 설정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가 이전에 비해 사회분위기가 열려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낮에는 기녀 외에는 여성이 길거리를 다닐 수조차 없는 유교사회였다는 점이 그 이유다.

홍선표 교수는 “당시는 도화서 화원을 포함해 조선 전체에 화원이 100명도 안됐다”며 “여성에게는 문예 교육을 아예 하지 않았던 사회에서 여성이 10년 이상의 교육이 필요한 화원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미인도> 그림의 주인공은 혜원의 애인이나 기녀로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추측이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국민의 화가, 민족의 화가의 성 정체성을 뒤흔든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개탄했다.

영화 <미인도>에서는 신윤복이 어린시절부터 기성작가 이상의 천재적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두고 한수련 작가는 “시나리오 원작에서는 신윤복이 아버지 신한평에게 10년 정도 그림을 배우고 김홍도를 사사하는 것으로 돼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천재성을 부과하기 위해 바로 처음부터 잘 그리는 것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1- 영화 '미인도'에 등장하는 김홍도(좌)와 신윤복 영화
2- '미인도' 영화
3- '미인도' 신윤복(우)과 가상 연인 강무

■ 김홍도와 신윤복은 '그렇고 그런' 사이(?)

<미인도>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사이를 사제관계를 뛰어넘는 애정관계로 그렸을 뿐 아니라 둘 사이에 신윤복과 사랑을 나누는 ‘강무’, 김홍도를 흠모하는 기녀 ‘설화’를 넣어 ‘사각관계’로 설정해 치정관계로 발전시킨 것 역시 ‘허무맹랑’하다는 지적이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1726~?)이 김홍도와 동시대의 화원이었으며, 이들이 함께 주문 받은 작품을 그리는 등 사적으로도 친밀했던 점에서 신윤복과도 알았거나 사제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둘 사이를 애정관계로까지 본 것은 지나치다는 설명이다. 15살 이상의 나이차가 있는 거장 예술가가 동료의 자식을 탐한다는 설정이 상식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휘준 위원장은 “역사적으로 명백한 남성을 여성으로 바꾼 사람들이 그 밖의 뭘 꾸미는 것인들 못하겠냐”고 말했다.

신윤복의 화풍이 김홍도와 비슷해 사제관계로 추측하고는 하지만, ‘근역서화징’에 나오는 두줄 외에는 신윤복에 관한 사료가 거의 없어 둘의 관계가 입증된 바는 없다. 당시 김홍도를 모사하는 것은 화원들 사이에 하나의 유행이었다.

안 위원장은 “조선후기 문화를 차원 높고 흥미진진하게 소개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며 “작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좋지만 명백한 사실을 뒤집어서 관심을 끌려는 것은 창의력과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왜곡된 역사로 제대로 된 미래 구상을 할 수는 없다’는 게 안 위원장의 주장이다.

■ '영화적 상상력' 허용해야 반론도

문학과 예술의 상상의 자유를 허용해 너그럽게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성봉 경기대 다중매체학부 교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관계 설정 역시 실제에 충실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서 배워온 하나의 진리를 여러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느냐”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현실과 미래에 반영한다면 내일의 비전을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그간 조명 받지 못한 신윤복에 대해 최소한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해 줬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며 “상상의 자유는 무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가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것은 ‘우연의 일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련 작가는 2006년에 한 문예수업에서 <미인도> 시나리오 초본을 발표했으며 작년 4월에 저작권 위원회에 등록을 마쳤다. 이정명 작가는 10년전부터 작품구상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미인도> 발표보다 빠른 작년 8월에 <바람의 화원>을 출간했다.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작가적 상상력은 무한히 열려 있는 게 좋다”면서도 “신윤복의 그림이 감동을 주는 핵심 요소인 리얼리티를 제외하고 엉뚱한 상상력만 전개하는 것은 신윤복의 정신을 올바로 되살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