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 성공 vs 공백감 글쎄… 무기 대신 본드 액션·본드 걸 대신 전사형 카밀

문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 누군가는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교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학의 자긍심이 제국주의적 욕망보다 우위에 선다.

영국의 영화인들은 아마 <007>시리즈를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전 작품과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007>시리즈는 영국의 첩보원을 주인공으로 한 대중 시리즈이기 이전에 영국 영화사를 써내려간 대표적인 장르이며 할리우드에 대항하여 영국영화의 상업적 자존심을 지켜준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블록버스터가 권선징악을 주제로 영웅의 모험을 다루었다면 영국의 007시리즈도 동일하다.

하지만 미국의 영웅들이 배트맨,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으로 초능력을 소유한 슈퍼 히어로이거나 외계인의 침입에 맞서는 전사들로 다양하게 포진되어 있다면 영국의 영웅은 충성심 강한 첩보원 제임스 본드로 단일화되었다는 점이다.

제임스 본드와 무수한 미국의 영웅은 미국과 영국의 차이다. 미국 영화의 영웅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를 미화시키고 미국의 세계사적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악의 무리들을 응징했다면 영국의 제임스 본드는 신사의 이미지로 무장되어 국익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태도와 여성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관객의 지지를 받는다.

필자 역시 중학교 시절에 <007 문레이커>와 만남 이후 <007 포 유어 아이스 온리>를 재개봉관에서 감상하면서 고교시절을 보냈으며 대학 때는 다른 영화에 한눈을 팔게 되어 007관람에 소홀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직업적으로 감상해왔다. <007 나를 사랑하는 스파이>는 최초의 007 관람 체험이었으며 <007 카지노 로얄>은 <007>시리즈의 가장 최근 기억이다.

삼국지가 연령에 따라 수용되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007>시리즈도 감응의 지점이 달라진 것 같다.

초기의 <007>시리즈는 상상을 초월한 비밀무기에 대한 기대와 감탄으로 시작하여 본드 걸과의 정사장면에서 감상의 절정을 이루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줄어든 기대와 잘 짜인 서사가 주는 안정감만 확인했다.

최근에 <007>을 감상하는 것은 정답을 보고 나서 수학 문제를 푸는 일과 같다. 액션과 서사에 너무 익숙해진 관객은 경쟁률 낮은 대학을 지원하는 수험생처럼 긴장감이 감퇴된다.

이와 같은 나쁜 감상 태도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도 적용되어 처음 시퀀스에 자동차 추격 장면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다이내믹하게 추격 장면이 잘 촬영되었는지를 확인하려는 기술시사에 참석한 스텝처럼 감시의 눈길만 보낸다.

심지어 제임스 본드의 생사에 대한 관심보다 어차피 엔딩장면까지 목숨을 부지할 주인공이므로 그가 얼마나 강도 높은 적들의 위협과 공격을 받게 되며 어떤 액션으로 대항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20회가 넘는 시리즈 영화가 갖는 장점이면서 한계가 바로 반복된 서사로 인한 익숙함과 상투성의 극복이라는 난제다.

<퀀텀 오브 솔라스>는 전작 <007 카지노 로얄>의 속편에 가깝다.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크)는 연인 베스퍼의 죽음으로 위로가 필요하다. 제목도 ‘위로의 총량’(Quantum Of Solace)이다.

본드는 베스퍼의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배후조직을 파헤치게 되며 가족의 복수를 위해 정보원이 된 카밀(올가 쿠릴렌코 분)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사적 복수라는 공유지점을 갖고 있다. 본드는 죽은 연인의 복수이며 카밀은 죽은 가족의 복수이다. 사적 복수와 공적 임무 수행의 갈등을 겪는 제임스 본드의 내면은 <연을 쫓는 아이>를 연출한 마크 포스터 감독의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들은 결국 수자원을 독점하려는 악덕 자본가와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하려는 부도덕한 장군이라는 악의 세력을 퇴치한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임무수행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국익의 명분으로 남미의 군사 쿠데타 세력과 이를 돕는 악덕 기업가의 군산커넥션을 방조하는 미국의 태도를 영화의 대사로 슬쩍 꼬집고 넘어간 대목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태도에 우호적 협력자였던 영국이 미영합작 <007>시리즈에서 은근한 비판을 가한 점은 흥미롭다.

그동안 <007>시리즈는 관객에게 두 가지를 선물했다. 하나는 제임스 본드의 무기였고 또 하나는 그가 사랑하는 본드걸이다. 영웅은 초능력을 무기로 대신하고 그를 지지하는 시선은 늘 요염한 본드걸이 담당하였다. 이번 <퀀텀 오브 솔러스>는 제목에서 007을 삭제한 만큼 무기와 본드 걸의 향연도 자제했다.

무기 대신 제임스 본드의 몸으로 하는 액션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선정적인 본드 걸 대신 전사형 카밀이 등장한다. 제임스 본드 무기와 본드걸의 퇴조로 과거의 <007>시리즈의 차별화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에게 차와 포를 떼고 두는 장기처럼 혹은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공포영화처럼, 스프를 넣지 않고 끓인 라면처럼 견딜 수 없는 공백감을 던져준다.

<007>시리즈는 제13탄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 영국과 미국이 합작을 시작하여 최근작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의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미국과 합작한 <007>은 미국스텝과 감독의 합류로 <007>의 정체성보다는 미국 블록버스터의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그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 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