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영화가 만나 대중성을 겨냥하다서사의 상투성·인물 갈등 평면성 폭력 영화 조선시대 버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주장은 위협받고 있다. 전통 역사학자의 공론의 장에서는 이 주장이 유효하겠지만 최소한 한국의 충무로 영화 제작 현장에서는 이 주장이 무시되거나 붕괴되고 있다.

오히려 역사는 과거 사실에 근거한 영화 소재로서 역할이 극도로 제한되고 영화적 상상력이 총동원되고 있다. 아니 과거의 역사는 최소한의 사실만 제공하며 현재의 작가들은 극도로 팽창된 상상력의 붓으로 여백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의 혈투의 장이 바로 한국영화 제작 현장이다.

한국영화와 역사와 관계는 영화를 위한 역사의 아낌없는 희생과 밀월과 헌신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이전의 한국영화사에서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영화는 역사적 사실의 스크린에 담아내기에서 치중해왔다면, 2008년 한국영화는 역사적 사실은 드링크제에 함유된 최소한의 원액 정도로 치부되고 작가적 상상력은 95% 이상을 채우는 수분과 같은 양적 우위로 새로운 역사 집필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미 이준익의 <황산벌>은 기존의 나당연합군과 백제 군사와의 전투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팩션과 퓨전 사극이라는 비평적 조어로 설명하게 만든 바 있다.

연산군 시절의 광대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낸 <왕의 남자>와 신윤복을 여성으로 재현하고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김홍도를 질투의 화신으로 재창조한 <미인도>도 팩션의 범위를 확장하는 데 기여했으며 급기야는 역사적 사실의 왜곡문제로 논란을 야기했다. 한국의 역사는 한국영화의 작품성과 대중성 획득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균동의 <1724 기방난동사건>도 조선 경종시대의 한양을 배경으로 하지만 시대만 조선시대일 뿐 사용하는 말과 복장과 지명은 현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퓨전 역사영화 계보를 잇는다.

여균동은 탈옥수를 주인공으로 한 로드무비인 <세상 밖으로>에서 이미 탈옥수의 거친 입담과 욕설로 한국 시나리오에 욕설을 공식언어로 편입시킨 주역이었다.

지나친 욕설의 상용화는 <세상 밖으로> 이후에 충무로 영화에 적극 유입되어 욕설이 ‘조폭’영화의 표준어로 채택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바 있다. <1724기방난동사건>은 여균동 감독의 필살기인 욕설과 거친 입담이 자막까지 동원되어 대중과 소통 코드로 적극 채택된다.

이 영화는 독창적인 것과 상투적인 것이 심하게 몸싸움하는 영화다.

독창적인 것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현대어를 사용하고 현대 복장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현대 대중가요를 조선시대 싸움꾼이 부르는 장면을 통해 돋보인다. 언어와 가요의 어긋난 사용은 시대와 문화의 불일치를 야기하여 웃음을 만들어내려는 코미디의 희극 장면으로 귀결된다.

겉으로는 조선의 양대 조직폭력집단의 대결구도를 따르는 액션영화이지만 내용은 시대배경과 어긋난 복장과 언어의 전도를 통해 불일치하고 부조리한 상황을 만들어낸 코미디장치를 속에 숨겨두었다. 희극적 요소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읊조리는 만득의 대사와 조선시대 순종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깨는 기생 설지의 당찬 태도, 두목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일관된 충성심을 보여준 양주파 조직원들의 과도한 충성심의 반복된 태도와 원색적인 욕설을 내뱉는 인물의 대사가 주는 감정적 배설감에 들어있다.

이 영화에서 여균동 감독이 힘을 준 부분은 천둥과 만득 캐릭터 같다.

천둥은 마포의 전설적인 주먹에 걸맞지 않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고 조직에 대한 개념도 부족하며 사랑에 대한 비장함도 결여되었지만 조직과 사랑을 위한 자기 결단을 마지막에 보인다. 만득은 과거의 김석훈이 보여준 모범생 이미지를 일그러뜨리며 붉은 옷과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노력과 근본적인 계급을 넘어설 수 없어 조용필의 가사로 자신을 위장하려 안간힘을 쓰는 악의 분신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두 인물의 성공적인 구축은 착한 주인공과 악한 적대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완화시키고 개성있는 두 캐릭터의 밀고 당기는 경합을 지켜보는 특별한 재미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두 인물의 분발에도 불구하고 조직 간의 싸움과 복수라는 액션 느와르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서사 방식과 한 여성을 사이에 둔 두 남성의 대결구도, 선한 주인공 일당과 악한 적대자의 싸움으로 양분되는 선악 이분법은 대중영화의 상투성에 복무한 인상을 준다.

마포에서 주먹으로 명성을 날리던 천둥(이정재 분)은 평양기생학교 수석졸업생 설지(김옥분 분)를 만난다. 두 사람의 연애감정이 생길 즈음 설지는 종로의 명월향으로 떠난다. 종로의 명월향에 배정되었던 설지는 배달 사고로 마포의 명월향으로 잘못 찾아왔던 것이다. 천둥은 우연히 양주파의 두목 짝귀와 대결한다. 짝귀가 졸도하자 천둥은 불시에 양주파의 보스로 등극하게 되고 종로 명월향의 회합에 참석한다.

결국 만득과 천둥은 명월향에서 만나며 조직의 전쟁에 직면한다. 조직의 전쟁은 회합자리에서 설지를 요구한 천둥의 선택으로 비롯되며 여자의 요구는 도전의 의미라는 관행에 따라 두 세력은 전면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천둥은 설지의 마음을 얻게 되지만 양주파와 천둥은 심한 타격을 입게 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천둥은 만득과 일대일 대결을 벌여 싸움의 승리와 함께 설지의 사랑을 동시에 얻는다. 영화는 조직의 승리와 사랑의 획득이라는 해피 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대중성을 얻은 대신 여균동의 독창성은 빛을 잃고 만다.

이 영화는 이율배반적이다. 표면에는 장르 혼합과 퓨전 사극으로 장르적 유연성을 극대화시켰지만 이면에는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설정은 장르 영화의 공식을 굳건하게 고수한다.

여균동 감독의 트레이드마크는 전위적 행보와 실험 정신이었다. 그의 대중영화의 장 안에서 자행된 전투적 실험은 여균동 스타일의 수립과 관객과 소통 실패로 절반의 성공이라는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그는 여균동표 영화 제작 양보와 대중성 추구를 가시화하고 있음을 이 영화로 분명히 한다.

여균동 감독은 <724기방난동사건>에서 대중성 확장의 포문을 열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균동의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서사의 상투성과 인물 갈등 구조의 평면성으로 인해 조직폭력배 영화의 조선시대 버전으로 폄하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학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