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은 뱀파이어를 채식주의자로 만든다헌신·절제로 애정의 지속성 유지, 흡혈귀 영화의 진화된 모습

철학자나 작가나 영화감독은 인생이라는 칠판에 한 가지 질문을 써놓고 평생 그 해답을 찾는다. 철학자는 관념의 모험에 공을 들이며 작가는 창작의 그물망에 정답과 오답을 포획하고 감독은 스크린에 연기와 미장센으로 모범답안을 작성한다.

철학자 김상봉은 ‘슬픔은 철학의 어머니’라고 했다. 철학이 슬픔에 대해 묻는 것은 생각이 자기 본래성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며 슬픔으로 인생과 철학을 사유했다.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은 “왜 현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평생 던졌으며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허영심” 때문이라는 답안지를 자신의 소설을 통해 입증했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감독의 일은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며 동시에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생각했다.

그는 사랑을 ‘자학과 피학이 엉클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했기에 그의 작품은 자학과 피학의 피 흘리는 격투장이 되었다. 질문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들 사적인 모범답안을 작성하는 데 온 몸을 바쳤다.

장르 영화도 마찬가지다. 장르 영화는 관객들이 외면할 수 없는 감정의 과녁을 겨냥한다. 코미디는 극장 밖에서 웃음 부족인 관객을 위해 극장을 웃음 보급소로 명의이전시키고 멜로 영화는 연애 패잔병들이나 연애 승리자들에게 아름다운 연애와 슬픈 연애사례를 알려주는 발표장이다. 공포영화는 세상의 공포를 예방접종한다.

캐서린 하드윅의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 영화의 계보를 잇는 공포영화이며 동시에 뱀파이어와 소녀의 사랑이라는 멜로영화 공식을 준수한다. 공포영화이지만 젊은 관객들과 소통가능한 10대의 뱀파이어 등장과 현대적인 공간에 거주하는 뱀파이어 가족을 통해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와 차별화했다.

뱀파이어의 폭력성은 수퍼히어로의 파워로 미화되고 뱀파이어의 관습적인 공간인 오래된 성과 지하실의 음험한 이미지는 거부되고 숲속의 현대적 건물에 가족을 구성한 이상적인 뱀파이어 가족상을 부각시켰다.

이는 뱀파이어의 현대화를 통한 관객과 소통 노력의 산물이며 동시에 사람의 피를 먹으며 성장하는 흡혈귀에서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동물의 피만 섭취하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를 등장시켜 거리감을 좁혔다.

뱀파이어는 힘과 스피드와 불멸성을 부여받았지만 흡혈귀로 살아야하는 운명과 초인적 힘과 스피드로 인한 타자화시켜 내면적 고뇌와 깊이도 확보했다. 이 영화는 권선징악의 이분법과 선명한 이야기 구조와 주인공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불문율로부터 일정한 거리두기에 성공했다.

배트맨 시리즈의 2008년 버전인 <다크나이트>가 권선징악의 이분법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면 <트와일라잇>은 성찰적 흡혈귀의 출현으로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장을 확장하였다. 할리우드 영화는 맞춤형 상품 영화에서 성찰형 대중영화로 보폭을 넓혀간다.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가 흡혈귀의 행적에 더 집중했다면 <트와일라잇>은 뱀파이어에 매혹된 여성 벨라(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의 능동적인 사랑과 그녀를 지켜주려는 뱀파이어 에드워드(로버트 패튼슨 분)의 노력으로 멜로영화의 감정과 타자와의 사랑과 소통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

스탕달은 돈 주앙의 연애와 베르테르의 연애로 나누어 사랑을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돈 주앙의 연애는 ‘사냥의 취미’와 같다. 이에 비해 베르테르의 연애는 ‘한편의 비극을 좀 더 잘 쓰고자 몇 번이고 고쳐 쓰는 학생의 감정’에 가깝다.

돈 주앙은 다다익선을 추구하며 대상의 포획 자체에 가치를 둔다면 베르테르는 5년 동안 연애편지를 쓰고 10년 동안 연애 감정으로 바라보는 일에 의미를 둔다. 사랑의 유형은 무수히 많지만 <트와일라잇>은 베르테르 같은 감정을 토대로 사랑하며 두 사람의 헌신과 절제로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다.

벨라는 어머니가 자신의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자 아버지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 포크스로 간다. 그곳은 비가 많이 오며 음습한 분위기의 고장이다.

등교하는 첫날 다양한 친구와 인사하지만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에드워드의 강렬한 눈빛에 두려움과 매혹을 동시에 느낀다. 에드워드는 며칠 동안 결석하여 벨리의 관심을 더 유발하게 된다. 에드워드는 며칠의 결석에 아랑곳하지 않고 벨라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수업에 임한다.

벨라가 학교 주차장에서 친구의 부주의한 운전으로 교통사고의 위협에 빠질 때 그녀를 구해준다. 멜로영화에서 한 남성의 결정적인 도움은 여성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사랑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치명적 위협이기도 하다. 사랑의 독성은 마약 같은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인내와 일관된 애정을 기반으로 한 헌신성으로 해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사랑의 치명적 독성을 무시하고 연애의 쾌락이라는 늪에 뛰어들고 만다. 벨라와 에드워드는 절제와 헌신이라는 덕목으로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하지만 흡혈귀와 인간이라는 조건은 두 사람의 관계 발전에 치명적인 장애다.

사랑의 판타지는 모든 장애를 무력화시킨다. 벨라에게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는 단지 자신과 다른 식습관을 갖고 있는 남자이며 빛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다는 정도의 취향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름에 대한 상호 이해는 벨라와 에드워드의 사랑을 허용해준다.

번개 치는 날 뱀파이어 가족이 야구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며 절정으로 넘어가는 관문이다. 번개 소리는 뱀파이어들이 배트로 공을 치는 소리와 유사하다. 초능력을 소유한 그들의 야구 경기는 홈런 타구를 번개 같은 스피드로 수비수가 잡아내서 홈으로 던져 태그 아웃시키는 과장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가장 행복한 순간의 꼭짓점에서 늘 가장 힘든 불행이 찾아온다. 뱀파이어 가족들이 야구경기로 즐거워하는 순간 킬러 뱀파이어들이 찾아와서 선악의 대결 구도로 넘어간다. 결국 여성을 위기에서 구하는 남성 영웅의 장면으로 완성된다.

<트와일라잇>은 <노스페라투>에서 시작된 흡혈귀 영화의 진화의 정점이면서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사랑에 성공한 멜로 영화라는 평가를 내려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문학산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