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에서 세상을 구원했던 키아누 리브스가 이번에는 지구를 끝장내러 왔다. 뉴욕 센트럴파크에 거대한 미확인 물체가 착륙하고, 그 안에서 정체불명의 한 남자(키아누 리브스 분)가 걸어나온다.

남자는 인간이 죽어야 지구가 살고, 인간이 살면 지구가 죽는다며 무시무시한 공격을 경고한다.

그러니 인간의 선택은 하나. 모든 전력을 투입해 그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한편, 막강한 공격력을 가진 외계 로봇에게 거친 저항을 시작한다. 하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로봇의 내구력과 파괴력에 지구의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영화가 낯설지 않는 것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지구 최후의 날>(1951)을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독보적인 SF영화로 평가받는 <지구 최후의 날>은 외계인의 공격과 지구 종말이라는 소재를 충격과 공포로만 내세웠던 다른 SF영화들과 궤를 달리 했다.

진지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면서도 세련된 스타일로 당대를 살아가는 ‘지구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인간보다 월등한 힘과 지성을 가진 외계인은 지구인들의 서로를 향한 경계심과 적개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외계인이 지구의 상황에 ‘개입’하며 종말을 앞당긴다는 설정은 종교적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그러나 구원의 손길을 뿌리친 인간들에게 남은 것은 결국 멸망뿐이다. 유독 지구나 종말 관련 영화에서 돋보였던 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 리볼루션> 이후 최고의 개봉 첫 주 흥행성적을 거두며 판타지 액션계의 명불허전임을 증명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