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폭력 위주의 전형적 상업영화, 한국사의 창조적 재해석 부족

역사와 영화는 공생과 긴장 관계다. 역사가 영화에 사건과 영웅적 인물의 보물창고로 기능할 때 악어와 악어새처럼 지낸다. 하지만 영화가 역사의 일부 사실을 대여하여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하거나 사실을 비틀 때 역사의 왜곡이라는 항의를 받게 된다.

역사의 왜곡은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영화가 지배 이데올로기의 확성기가 되어 정치적 목적의식에 충실할 때, 다른 하나는 제작사의 현금인출기가 되어 상품화의 전위부대가 될 경우다.

자본과 권력은 영화와 역사의 관계를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으로 설정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마르크 페로는 ‘민중들의 기억과 구전 전통 덕분에 영화인이 공식제도가 빼앗아갔던 역사를 사회에 되돌려 줄 수 있다’고 했다. 영화와 역사에 대해 연구한 마르크 페로는 역사에 대한 영화적 독해에 대해 깊은 관심과 낭만적인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영향력을 눈치 챈 독재자와 자본가들은 역사의 영화적 번역에 대한 관심보다 역사의 정치화와 역사의 상품화에 더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역사의 정치화 맨 앞자리에는 국책홍보용 다큐멘터리가 있을 것이며 역사의 상품화의 중간에는 역사적 영웅의 일대기를 영웅이야기로 포장한 역사영화가 있다. 역사는 영화 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그 결과 역사적 사실과 창조적 허구의 비빔밥으로 재구성한 팩션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역사와 역사적 인물을 재해석하거나 재가공한 영화들이 스크린을 점령하기도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에 대한 영화적 독해 혹은 적극적인 수용이라는 포즈를 취한 역사의 상품화이다.

한국영화도 팩션의 대표적인 영화인 이준익의 <황산벌>에서 역사적 인물을 창조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영화적으로 가공한 <미인도>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유하의 <쌍화점>은 고려가요를 제목으로 채택하고 공민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상업영화다.

시인 출신 유하 감독은 시인의 자의식을 영화계에서 불식시키려는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말죽거리 잔혹사>로 이어지는 장르 영화로 점철되었으며 장르 영화는 충무로 대중영화와 등호로 연결된다. <쌍화점>은 유하 감독의 행보와 역사를 재현하는 충무로의 관행이 공모한 상업영화다.

<쌍화점>은 상업영화의 공식 소재인 폭력과 섹스를 절반씩 섞었으며 폭력의 코드는 권력유지와 모반의 세력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이분법적이며 섹스의 코드는 왕과 그의 정인이며 신하인 홍림 그리고 왕비로 구성된 견고한 삼각관계다.

공민왕의 왕권 유지와 이를 무너뜨리려는 원나라 세력을 등에 업은 대신과의 싸움이 서사의 한 축이다. 이 싸움에서 공민왕은 충직한 친위부대인 건룡위의 도움으로 역모자를 처단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승리한다.

역모자의 피습과 역모자에 대한 피의 살육이 폭력의 스펙터클을 장식한다. 공민왕의 왕권유지와 역모자 제거는 사극의 상투적 서사다. 하지만 <쌍화점>에서 왕과 신하의 선 굵은 권력 싸움은 멜로드라마가 노출한 작은 서사의 선을 보완하는 장치로서 적절하게 활용되고 있다.

<쌍화점>은 고려가요 중에서 가장 농익은 남녀의 욕망을 직설적으로 다른 가요다. 조동일에 의하면 ‘<쌍화점>은 충렬왕 때의 오잠, 김내성 등이 놀이에 탐닉하는 왕을 기쁘게 하기 위해 제작한 노래’이다. <쌍화점>은 여성이 화자이며 “어디로 가니 누가 손목을 잡으면서 잠자리를 함께 하자고 하더라”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가사로 살펴볼 때 한 여성이 구체적인 잠자리의 유혹을 받은 성적 표현의 강도가 높은 가요다. 이 가요가 <가시리>와 함께 영화에 등장하면서 공민왕과 그의 정인 홍림 그리고 왕비의 애욕의 드라마의 주제가로 사용된다. 고려가요의 주제를 섹스라는 대중적 코드로 번역하여 영화적으로 풀어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왕(주진모 분)은 자신의 근위대인 건룡위를 양성한다.

원나라 공주(송지효 분)와 정략 결혼을 한 공민왕은 왕비 대신 건룡위의 총관 홍림(조인성 분)을 총애하며 그를 후궁처럼 자신의 처소에 들게 하고 침실까지 공유하면서 동성애를 즐기며 홍림에게는 권력을 준다. 원나라에서는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왕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이 총애하는 홍림을 왕비의 침소에 들게 하여 후사를 생산하려 한다.

왕비는 자신의 연적인 홍림에 대해 처음에는 눈을 감고 거부한다. 하지만 두 번째 합궁에 성공하면서 처음으로 여성으로 눈을 뜨며 홍림 역시 첫 경험으로 인해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세 번째 합궁에는 두 남녀는 입술을 서로 허락하며 몸과 몸은 합일의 상태로 돌입한다.

왕비와 홍림은 세 번의 합궁으로 인해 왕을 서로 소유하려던 적대자에서 서로의 몸을 요구하는 욕망의 대상자로 지위 변동된다.

홍림은 왕비에게 향갑을 선물하고 감기 걸린 왕비에게 약재를 올리며 감정을 표현한다.

왕비 역시 홍림에게 손수 수놓은 두건을 선물하며 서로의 감정을 선물로 표현한다.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선물은 가장 원초적인 애정고백의 수단이다. 왕과 왕비와 홍림의 삼각관계는 파국의 꼭지점을 향해 내달리는 시한폭탄이다.

결국 홍림과 왕비의 정사 장면은 왕에게 목격된다. 성적 배신행위 장면의 목격은 멜로드라마에서 가장 결정적인 파국 장면이다. 이로 인해 홍림은 거세되고 왕비와 왕의 권력 싸움이 펼쳐진다. 삼각관계는 파국으로 귀결되거나 한 사람의 희생양을 통한 한 쌍의 사랑 성공이라는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쌍화점>은 파국을 선택했다.

파국은 폭력의 선정성의 스펙터클과 섹스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장치다. “너는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정인으로 생각한 적 있느냐”라는 공민왕의 대사는 과잉된 폭력과 섹스 장면의 스펙터클을 통해 도달한 파국적 결말을 치정극으로 축소시켜버린다.

<쌍화점>은 섹스와 폭력이라는 대중 코드와 관습적인 삼각관계가 합작한 부인할 수 없는 상업영화다. 이 영화에서 한국사는 창조적 재해석보다는 위축된 충무로 상업영화의 마중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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