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가 관객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시즌은 일년에 두 번, 바로 크리스마스 전후와 밸런타인데이다. 특히 밸런타인데이는 평소 영화를 잘 보지 않던 연인들도 영화관을 찾을 정도로 특수를 누릴 수 있는 날. 그래서 밸런타인데이를 이틀 앞두고 개봉하는 이 영화는 오로지 연인들을 위한, 연인들에 의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맞춤 연애영화’다.

로맨틱 코미디는 <귀여운 여인> 같은 할리우드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 새로운 버전으로 발전해왔다. 맥 라이언과 줄리아 로버트로 대표되는 연애 판타지가 한계를 갖자 현실 속의 연애에 주목한 데 따른 변화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고 차갑게 선언하는 이 영화 역시 환상보다는 ‘실전형’ 연애를 그리고 있다. 인기 시트콤 <섹스 앤더 시티>의 작가가 쓴 책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영화 속 여성들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는 연애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7년 동안 동거하면서도 결혼은 싫다는 남자, 유부남이면서도 작업을 걸어오는 남자,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 등은 <사랑과 전쟁>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영화는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남녀 관계에서 저지를 수 있는 시행착오들에 대한 실전 가이드를 제시한다.

원작도 내용도 ‘독하다’고 해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달콤함을 잃지는 않는다. 수많은 ‘사랑’영화에서 각자의 매력을 발산해온 제니퍼 애니스톤, 드류 베리모어, 제니퍼 코넬리, 스칼렛 요한슨 등의 연기와 로맨틱한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음악은 영화관을 나설 연인들에게 하나의 이벤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1918년 80살의 외형을 갖고 태어난 벤자민 버튼이 해가 갈수록 점점 젊어지며 겪는 일대기를 다룬 영화. 현재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작품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벤자민은 비록 외모는 남들과 다르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보통 사람이다. 어릴 적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고, 생모를 그리워하기도 하며, 사랑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남들과 똑같이 가정을 꾸리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딸이 태어나면서 점점 어려지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벤자민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평생을 고통을 겪어야 하는 그의 운명이 더 안타깝고 애절하게 다가온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2년 원작 소설에서 기본 설정을 빌려와 살을 덧입힌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절절한 연기로 원작의 아픔과 애잔함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다우트>

무언가를 명쾌하게 단정짓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을 흔드는 것이면 더욱 그렇다. ‘의심(Doubt)’으로 가득찬 이 영화는 비단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한다. 가톨릭 학교에서 신부가 학생인 흑인 소년을 성추행했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이 사실만으로는 가치 판단이 쉽지만 캐릭터에 대한 관점이 들어가면 판단에 자신이 없어진다. 신부는 자상하고 진보적인 성격으로 호감형 캐릭터다. 그를 공격하는 수녀는 성격 안 좋고 보수적인 비호감 캐릭터.

게다가 실제로 신부가 소년을 추행했는가의 여부도 확실치 않다. 시비가 불분명한 당시 가톨릭 세계 안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나름대로의 판단을 요구한다. 하지만 메릴 스트립과 바이올라 데이비스, 필립 시모어 호프먼 등 명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밖의 신작

<작전>, <작은 영웅 데스페로>, <스트레인저- 무황인담> 이상 2월 12일 개봉



송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