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워낭소리'관람 인식재고 계기 마련… 열악한 환경 개선 아쉬움

요즈음 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워낭소리>(감독 이충렬)다. 관객 10만을 넘어도 '대박'을 축하하는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에서 <워낭소리>는 지난 20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독립영화에서 100만이란 숫자는 상업영화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무엇보다 영화관에서 선택지가 없어 방황하던 관객에게 <워낭소리>의 진정성이 성공적으로 어필했다는 것은 차후 등장할 독립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워낭소리> 신드롬'은 지난 2월 5일 개봉한 <낮술>(감독 노영석)로 이어졌다. <낮술>도 개봉 11일 만에 1만 관객을 동원하며 '제2의 워낭소리'로 순조롭게 건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에 대한 인식 차이, 독립영화 속탄다

대통령 내외가 직접 극장을 찾아 이충렬 감독과 함께 <워낭소리>를 관람한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독립영화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독립영화를 관람한 최초의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감독을 격려하며, 주변에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전용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게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부터 독립영화의 홍보마케팅을 지원하는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대통령의 말과 거꾸로 가는 정책인 셈이다. 용어만 '다양성'이라고 바뀌었을 뿐, 독립영화를 둘러싼 환경은 이렇게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독립영화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 역시 독립영화에 대한 어떤 고정관념을 보여준다. 그것은 대체로 독립영화가 '뜨지' 못하는 것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독립영화도 잘 만들면 <워낭소리>처럼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독려하기까지 하는 발언들에서 잘 드러나 있다.

1-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 요리> 2-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ie Bad)> 3-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4-문정현 감독의 <할매꽃>
1-나홍진 감독의 <완벽한 도미 요리>
2-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ie Bad)>
3-안해룡 감독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4-문정현 감독의 <할매꽃>
독립영화에 대한 이러한 인식들은 우리에게 다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영화는 '문화'다. 이들에게 영화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좋은 영화란 현실의 다양한 측면을 폭넓게 때로는 심도있게 파헤쳐주는 '예술작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영화는 '상품'이며 오락거리다. 이들에게 영화는 여가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워낭소리>의 흥행을 둘러싸고 독립영화계의 우려와 걱정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영화'에 대한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문화'라는 말 뒤에 '콘텐츠'나 '산업'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시대, <워낭소리>는 그저 '적게 들여 크게 성공한 문화콘텐츠'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과 문화부 장관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고, 그래서 현장의 독립영화인들은 더 답답한 심정일 수밖에 없다.

독립영화, 새로운 영화 문법의 보고

어쩌면 <워낭소리> 돌풍은 점점 더 구태의연해지는 상업영화 스타일에 질린 관객들의 해갈 측면에서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규모와 볼거리를 추구하는 상업영화와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가영화가 시스템적으로 건강하게 공존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선 더욱 그렇다.

미국의 선댄스영화제는 매년 독특한 발상의 독립영화들을 발굴해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자신이 연기한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영화제로, 스티븐 소더버그, 코엔 형제, 쿠엔틴 타란티노, 케빈 스미스 감독 등 현재 할리우드와 칸 등 전 세계 영화계를 주름잡는 감독들이 선댄스가 발굴한 인재들이다.

오늘날 이들의 위상을 생각하면 독립영화의 존재란 더욱 더 소중해진다. 기존 영화문법을 부수고 재창조하는 다재다능한 감독과 배우들이 독립영화를 통해서 주류 영화계로 발돋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류승완, 류승범 형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와 <다찌마와 Lee> 단 두 편의 독립영화로 류 형제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여기서 스타란 주류 연예시스템이 키워낸 스타의 의미가 아니다. 자신만의 연출과 연기 스타일을 확립해 끊임없이 그것을 공고히 하고 확장시켜나가는 '작가적' 의미의 스타를 말한다.

지난해 장편데뷔작 <추격자>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충무로를 평정한 신예 나홍진 감독도 그 이전에 <완벽한 도미 요리>와 <한> 같은 단편영화를 통해 <추격자> 제작을 위한 실력을 검증받았다는 점은 건강한 독립영화 시스템에 대한 확립을 더욱 절실하게 말해주는 부분이다.

한동안 거대 투자자본과 전문 배급사의 등장으로 한국영화는 중흥을 맞이했었다. 이와 함께 등장한 멀티플렉스 극장은 복합 문화상품을 찾는 '소비자'를 극장으로 유혹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로서의 영화들은 소비자에게 소외당해왔고, 결국 이런 영화들은 '독립영화'라는 멍에를 쓴 채 힘겨운 사투를 벌여 왔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활기를 잃어가며 대중에게 소외받고 있는 지금, 독립영화 시스템의 위기는 한국영화 전체의 존폐와 연관되어 있다고 과하지 않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제까지 한국영화의 젖줄이 되어 왔던 영화적 다양성의 출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대중의 관심이 독립영화에 쏠려 있는 가운데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비롯해 <할매꽃>, <똥파리> 등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워낭소리>가 불러일으킨 독립영화에의 관심이 이번에는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확립될지 기대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