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색 영화를 보는 어떤 시선]'엘레지' '더 리더'등 과감한 노출, 목적 아닌 메시지 전달 수단

(아래 왼쪽)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아래 오른쪽) 영화 '엘레지'

살색 영화는 불황을 타지 않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스크린의 살색 바람이 다시 한 번 불 태세다. 지난해에는 '미인도'와 '쌍화점' 등 한국영화가 극장가에 살내음을 풍겼다면 3월에는 해외작들이 관객 앞에 속살을 드러낸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은 12일 개봉한 '숏버스'. 이미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잘 알려진 2006년산 문제작이지만, 노출 수위 때문에 등급 심의 논란을 일으키며 3년만에 대중에 공개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일 개봉하는 '엘레지'와 26일 개봉을 앞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에서는 올해 나란히 오스카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나눠가진 톱스타 페넬로페 크루즈와 케이트 윈슬렛이 각각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극장가를 채우며 주 관객층으로 부상한 중장년층 (남성)관객들의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우스개 소리도 들리고 있다.

영화 속 욕망과 욕망하는 영화

하지만 영화 속 노출이 반드시 흥행의 보증수표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과 홍보사가 선정적인 문구로 영화 속 정사 장면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가 실제 상영분에서는 '압도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탓에 오히려 처절한 실패를 겪은 영화도 있다. 사랑과 욕망의 관계를 다룬 작품에서 노출은 관객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메시지를 위한 것임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엘레지' 역시 '노출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주제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노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서른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노교수와 대학원생의 사랑을 다루며, 영화는 늙은 육체와 젊은 육체가 만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욕망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욕망'이 주는 끈적한 이미지가 살색 영상과 결합되어 포스트-'색계', 포스트-'쌍화점'의 역할을 하리라 기대케 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에는 이 영화가 전미 여성저널리스트 협회에 의해 '2008년 가장 리얼한 섹스&누드영화'로 선정된 사실도 한몫 했다.

하지만 분명히 '엘레지'는 영화 속에서 욕망을 다루고 있는 '멜로영화'다. 특히 늙은 육체의 소유자와 동일시된 카메라의 시선이 젊은 페넬로페 크루즈의 나신을 응시하는 장면은 욕망이 집착으로 변해가는 사랑의 한 과정을 암시한다.

마치 손가락보다는 손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는 듯, 영화는 육체의 향연이 아닌 사랑의 이면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관객은 이 영화의 방점을 홍보 문구의 '섹스&누드'에 맞출 것이 아니라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노미네이트'에 둘 필요가 있다.

공교롭게도 '엘레지'와 함께 2008년 가장 리얼한 섹스&누드영화로 꼽힌 '더 리더'도 마찬가지다. '엘레지'와 반대로 이 영화는 10대 소년과 30대 여자의 사랑을 그린다.

미성년자와의 관계에, 무려 15분에 걸친 정사 장면은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다. 게다가 이 장면에 등장하는 '헤어 누드'는 극장 밖을 서성이는 잠재관객들을 '낚기' 좋은 아이템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리더' 역시 욕망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영화인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대의 삶을 다룬 풍자성까지 겸한 작품이다. 때문에 이런 영화에서 '살색'이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주제를 설명하는 한 수단이며 과정이다.

살색에 민감한 우리 사회

그래도 '엘레지'와 '더 리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한'이라는 타이틀로 손쉽게 예술성을 획득한 경우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숏버스'의 경우는 만들어진지 3년이 지나서야 '제한상영가' 꼬리표를 떼고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으로 극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잘 알려졌듯이 '숏버스'는 한 번도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없는 섹스 테라피스트가 한 비밀모임에 참여하게 되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섹스를 경험하게 되는 내용을 담아냈다.

결정적으로 심의가 반려된 것은 영화 전반의 성기 노출이나 섹스 살롱 '숏버스'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섹스 장면들 때문. 이처럼 문자만으로 판단한다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예술'보다는 '외설'이라는 두 글자가 이미 머리에 떠올랐을 법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애초에 성인을 위한 '성 담론'을 주제로 한 드라마였으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 전 주요 부위를 미리 모자이크 처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영등위는 이를 제한상영가로 판정했고, 웃기게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왓치맨'에서는 극중 캐릭터가 버젓이 성기를 노출하고 다니는 해프닝을 절찬리에 연출 중이다.

한 영화평론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영등위의 모호한 심의규정이 빚은 촌극"이라고 규정하며, 아울러 "단순히 노출의 정도 문제가 아니라 성을 소재로 했다는 것 자체가 보수적인 심의위원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제한상영가' 판정이 해당 영화를 아직 접하지 못한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몇 년 전 국내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접한 신윤성 칼럼니스트는 "야하거나 음란하다기보다는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감상을 밝혔다. 결국 성을 통한 치유와 소통의 가능성을 다룬 이 영화는 '제한상영가'라는 낙인 때문에 영원히 '외설물'로 기억될 뻔한 것이다.

살색 영화에 대한 가치 판단은 쉬운 것이 아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지난한 논쟁은 당대에는 물론 후대까지 이어져 논란을 거듭하는 경우도 많다. '예술이 되어버린 포르노그라피'라는 홍보 카피가 인상적이었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본격적인 외설 시비가 붙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살색 영상은 그 자체가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 어떤 메시지의 수단이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국제영화제가 인정하고 영등위가 막아내려 했던 이 영화들의 '살색'에는 인간의 욕망과, 성과, 사랑과, 소통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