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미술이야기] 르네상스 미술과 그림 고치는 의사

미술은 언어다. 하지만 너무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언어의 독해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미술작품이 지닌 뜻을 헤아리고 그 작품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는 계기로 삼거나 영화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로 사용해 왔다. 이렇게 영화 속의 미술은 영화의 또다른 은유나 비유로 활용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 왔다. 영화 속의 미술이야기를 통해 영화와 미술의 통섭의 세계를 만났으면 한다.

1-치골리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
2-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포스터
3-치골리 '요셉과 포티바의 아내'
4-두오모 성당 내부 천장화
5-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한 장면

누구에게나 애틋했던 사랑의 추억은 한 두 가지 있는 법, 특히 첫사랑의 경우 이루어질 수 없다는 속설 때문에 더욱 절박하고 가슴 저린 이야기로 남는다

작품이 완성되어 화가의 손을 떠난 지 수 백 년 된 늙고 낡은 그림을 복원시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콘서베이터(Conservator)가 자신의 애타는 첫 사랑은 결국 복원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면서 겪는 애잔한 사랑이야기가 있다. 바로 2001년 일본에서 제작된 '열정과 냉정사이'(2001년 제작)라는 영화이다.

일본의 타케노우치 유타카(竹野內豊, 1971~ )가 준세이라는 컨서베이터로 나오고 그의 첫 사랑 연인 아오이 역에 중국의 진혜림(陳慧琳, 1973~ )이 나오는 준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이야기이다. '라쇼몽(羅生門)'을 쓴 일본의 근대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를 기려 만든 저명한 문학상 아쿠다가와상이 있다.

이를 수상한 츠지 히토나리(つじ仁成,1959~ )와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불리는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1964~ )가 월간 '가도가와(角川)'에 연재한 소설이 원전이다.

에쿠니가 아오이의 이야기를 먼저 쓰고 다음호에 츠지가 준세이의 이야기를 쓰는 식의 싣는 소설로 후에 가도가와 출판사에서 남자의 이야기는 블루(Blu)로 여자의 이야기는 로소(Rosso)로 출간되었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에게도 사랑은 찾아오는 법이지만 궁극적인 사랑은 냉정과 열정의 그 어디에 있을까. 집안의 반대로 첫 사랑과 헤어지게 된 아오이는 밀라노로 떠나고 준세이는 피렌체의 수복보존연구소에서 사랑의 상처를 잊고자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콘서베이터로 명성을 얻기 시작 할 즈음 우연히 아오이의 소식을 전해 듣고 밀라노로 그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미국계 사업가와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고 그의 자리는 없었다.

상심한 채 돌아서는 준세이. 피렌체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 복원하고 있던 작품이 난도질 당해 수복연구소는 결국 문을 닫게 되고 그는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 아이의 유산과 관련된 오해였음을 알게 되면서 그는 서른 번 째 생일날만을 기다리면서 살아간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함께 하자던 사랑의 약속을 가슴 속에 담은 채.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반전은 그가 수복하고 있던 그림이 훼손되면서 일어난다. 그가 이즈음 수복하고 있던 그림은 치골리(Cigoli, 본명 Lodovico Cardi, 1559~1613)의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15세기 프레스코화인 프란체스코 코사(Francesco del Cossa, 1430 ~1477) 유화로 작품명까지 구체적으로 쓰고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 치골리의 작품도 명확하게 명제가 드러나진 않지만 아무튼 코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Renaissance)의 초기인 15세기(Quattrocento, 콰트로첸토)에 활동했던 화가이다.

그는 매우 사실적으로 인체를 묘사해서 그의 스승인 코시모 투라(Cosimo Tura, 1431년이전~1495)와 쌍벽을 이룬 인물로 두 사람은 에스테 궁의 내부 장식을 맡아 그 성가를 과시했다. 르네상스 초기에 활동했던 그의 작품은 원근법과 명암법이 완성되기 이전의 형태를 띠면서 약간은 고졸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는 초기 르네상스회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피렌체 대성당이 완성된 1420년을 기점으로 중세에서 근세로 전환하는 15,16세기 문화를 통털어 일컫는 말이다. 특히 건축과 회화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하면서 '인간은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척도'라는 가치관을 통해 사실적인 묘사와 과학적인 정확성 그리고 원급법 등을 통해 시각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1-프란체스코 코사 '세례 요한'
2-프란체스코 코사 '비너스의 승리'
3-치골리 '이삭을 바치는 아브라함'


초기 르네상스는 비잔틴의 종교적 상징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기를 미술사에서는 트레첸토(Trecento)라고 부르는데 르네상스 초기인 14세기를 일컫는다. 이 시대 변화의 중심에는 지오토(Giotto, 1266~1337)가 있다.

이후 15세기 후반 경 본격적인 르네상스 회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보이는 데로 묘사하고자 했던 르네상스화가들에게 투시도법과 원근법은 매우 중요한 발명이자 발견이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에 의해 처음 시도된 기하학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한 선 투시도법을 마사치오(Masaccio,1401~1428)가 작품에 응용해서 훌륭하게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구축하게 되고 사실성을 획득하게 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만테나(Andrea Mantegna, 1431?~1506)의 경우 해부학에 기초해서 인체를 그린 후 그 시대와 풍습에 맞는 의상이나 가구를 그려 넣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나 안젤리코(Fra Angelico,1387~1455) 같은 화가들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보다는 화면의 구성과 법칙을 중요하게 여겨 원근과 해부학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이런 르네상스 화풍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전역에서 하나의 양식으로 자리 잡아 습관적으로 되풀이되면서 양식화되고 독창성과 신선함을 잃게 되는데 이 시기를 친퀘첸토(Cinquecento)라 하며 16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지칭한다. 치골리는 이 즈음 미켈란젤로풍의 매너리즘 양식이 쇠퇴하고 바로크 양식이 등장할 무렵 피렌체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이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선배들이 이룩한 대조적인 양상들을 상당히 부분 반영하면서 북부 이탈리아풍의 강렬한 색채와 명암의 대비 외에는 나름의 독자적인 화풍을 전개하지 못했다. 그는 양식적인 측면보다는 감성적인 면에 관심을 두어 바로크적 성향을 드러낸 사람이었다. 따라서 치골리는 '냉정'보다는 '열정'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미술품은 언제나 섭씨 18~20도의 온도와 상대습도 50~55%를 유지해 주어야 한다. 더구나 오래된 작품들의 경우에는 이 조건이 필수적이다. 그림도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이렇게 병들고 다친 미술품과 유물들을 고치는 의사를 콘서베이터라고 부른다.

이들은 미술품, 건축물, 유물들을 보존하고 관리함으로써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는 문화재 보존에 헌신한다. 이들은 보통 복원과 보존의 영역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 범위는 매우 넓지만 어떠 한 분야와 시대에 집중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직업이다.

예를 들면 순수미술, 도서, 직물, 청동, 도자기, 유리, 토기 등등 고고학적 유물에서부터 현대미술을 망라한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의 깨진 사랑은 복원시킬 수 없다.



글 정준모(미술비평,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