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라 감독의 '7급 공무원'신분을 숨긴 두 국정원 직원의 일과 사랑

신태라 감독의 ‘7급 공무원’은 한국영화로는 흔치 않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상업영화이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상업영화란 어떤 것인가? 우선 장르영화여야 한다. ‘7급 공무원’은 가장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속성을 더블로 갖추고 있다.

액션에 치중하는 첩보영화와 애정에 치중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을 두루 포괄한다. 극중 두 명의 주인공이 국가정보원에서 일을 한다는 설정이 눈길을 끄는데, 직업의 성격상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신분을 속일 수밖에 없다는 데서 드라마틱한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남자 주인공 재준(강지환)은 회계사를 사칭하고 있지만, 실은 해외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신참 국정원 요원이다. 여자 주인공 수지(김하늘)도 역시 여행사 직원을 사칭하고 있지만, 실은 경력 6년차인 베테랑급 국정원 요원이다. 그래서 ‘7급 공무원’의 영문제목은 비밀의 커플(secret couple)이다. 이때 방점은 물론 ‘비밀’에 찍혀진다.

이들 커플이 조국의 부름에 따라서 오늘도 불철주야 첩보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영화 ‘7급 공무원’의 메인 플롯이다. 첩보물이란 적대적인 상대방을 상정하기 마련인데, 바로 그러한 설정을 통해서 이른바 ‘이데올로기적 쾌락(ideological pleasure)’이란 것이 야기된다.

예컨대 얼마 전에 치러졌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서 우리나라 야구팀이 일본팀을 꺾었을 때 온 국민이 느꼈던 희열의 감정 같은 것이다. 역으로 결승전에서 우리나라가 통한의 패배를 당했을 때 모두들 얼마나 열을 받았던가? 요컨대 액션이 아무리 멋있고 강렬해도 그것이 우리가 동일시하는 주인공의 활약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 ‘7급 공무원’은 일종의 게임의 장이다. 이를테면 구소련을 상대로 한 첩보전 같은 것이다. 이 영화의 대단원을 살짝 들여다보자. 관객은 수천의 군중이 운집한 수원성 축제의 한마당에서 펼쳐지는 우리 측 요원과 저들간의 최후의 공방전을 관전하면서 야릇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게 다름 아닌 이데올로기적 쾌락이다. 게다가 코믹하기까지 하니 관전의 재미는 배가 될 터이다.

외관상 첩보물인 ‘7급 공무원’의 이면에 깔려 있는 또 다른 조건은, 이미 지적했듯이 로맨틱 코미디의 철칙이다. 극중 좌충우돌하는 우리의 주인공 두 사람이 각자 비밀리에 자신의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하다보니 애정전선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로맨틱 코미디의 핵심 코드인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게 된다.

알다시피 로맨틱 코미디란 서로 지극정성 사랑하는 닭살 커플이 사소한 오해 탓에 티격태격하다가 마침내 절대사랑을 확인하고 대망의 결혼으로 향한다는 장르영화의 전형이 아니던가. 이 영화는 그처럼 빤한 영화적 귀결을 통해서 뻔뻔(fun & pun)한 재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상업영화의 핵심은 역시 스타의 등장이다. 웬만한 상업영화에 스타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겠냐마는 문제는 그 또는 그녀가 단순 출연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스타 페르소나(star persona)의 소유자인가하는 점이다.

극중 주어진 역할에 딱 어울리는 그런 이미지의 소유자가 배역을 맡아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얘긴데, 비밀스런 커플의 한 축을 맡은 김하늘은 그런 점에서 적역이라 여겨진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수지라는 캐릭터는 이제 10년차 연기경력에 접어든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강하게 부각시켰던 엑기스만을 뽑아내 정련한 듯 보인다.

2003년 작인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동갑내기 파트너인 지훈(권상우)를 녹였던 수완의 단수 높은 애교, 2004년 작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순진남인 최희철(강동원)을 농락했던 거짓말의 달인 영주의 내숭, 거기다 드라마 ‘온에어’에서 보여주었던 여배우 오승아의 도도한 매력까지 고스란히 수지 캐릭터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전에 그녀의 필모에는 없었던 강인한 여성성(tough feminity)까지 보태져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던가.

비밀스런 커플의 또 한축을 맡은 강지환의 캐스팅도 매우 적절했다고 본다. 그는 영화계 쪽만을 한정해서 본다면, 지난 2008년을 장식했던 ‘영화는 영화다’에서의 배우 장수타 캐릭터로 그야말로 새롭게 떴지만, 실은 그전에 살짝 출연했던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2006년)라는 독립영화에서부터 대기만성형의 싹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강지환이 맡은 역할은 특정 종교에 깊이 침윤된 신실남이었는데, 그가 어느 날 우연찮게 제멋대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남으로써 삶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워낙 소수파 영화이다 보니 흥행은 물론이고 비평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본 평자는 ‘방문자’야말로 강지환의 진정한 데뷔작이라고 본다.

이 영화에서 그는 나름의 신념대로 살아가려는 건실한 청년상을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바로 그러한 역할 모델이 있었기에 이후 깡패에 버금가는 캐릭터인 장수타와 코미디언 뺨치는 요절복통 캐릭터인 재준으로의 변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난해 언론에서 하도 ‘영화는 영화다’만을 놓고 떠들다보니 정작 중요한 필모그래피 하나가 슬그머니 빠져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신태라 감독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는 2005년 ‘브레인 웨이브’라는 일종의 SF 영화로 데뷔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지만, 독립영화계 바깥에까지 그 영향력을 전파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두 번째 작품인 ‘검은 집’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한국영화계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검은 집’은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보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였다.

이전에도 스릴러 영화는 심심치 않게 만들어졌지만, 무늬만 스릴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검은 집’은 이 장르에서 거둔 하나의 소중한 성취라고 할 만 했다. 이 영화는 보험사기라는 현대사회에 만연해있는 병폐현상과 사이코패스라는 원인 모를 병리현상을 절묘하게 결합한 매우 지적인 스릴러 영화라는 것이다.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나름대로의 연출력을 과시했던 신태라 감독은 세 번째 작품인 ‘7급 공무원’을 통해 장르영화의 관습과 코드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차세대 감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상업영화는 그 취지에 걸맞게 관객에게 봉사한다는 측면에서 제대로 만들어야한다고 본다. 완벽한 상업영화는 장르영화를 통달함으로써 구현된다. ‘7급 공무원’은 잘 만든(well-made) 장르영화의 한 표본이다.



김시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