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과 엽전들 1집 초반 '저 여인' 1974년 지구 JLS각설이 타령조의 노래 국민애창곡초반 공식 앨범 외 여러 가지 버전 존재… 최초 발표 LP판 100만 원 호가도

이제는 신중현이 차지하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의 광활한 지분을 거론하는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그에 대한 재평가작업은 결실을 맺었다. ‘신중현 사운드’가 붙은 음반이라 하면 적어도 ‘모아야 되는’ 부동의 콜렉터스 아이템이 되었다. 신중현의 수많은 걸작 중 ‘미인’이 수록된 록밴드 ‘엽전들’의 1집은 음악내용은 물론이고 대중성까지 겸비한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록의 빛나는 명반이다.

'엽전들'의 라인업은 처음엔 5인조에서 신중현(기타), 이남이(베이스), 김호식(드럼)의 3인조로 재편되었다. 3인조 록밴드는 당시로는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밤무대 출연업소였던 서울 힐탑 호텔 나이트클럽은 이들의 연습 장소이기도 했다. 6개월간의 합숙 앨범 작업 후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사한 1집을 제작했다.

하지만 1973년 석유파동으로 휘청거렸던 지구레코드는 ’팔릴 음반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비매품으로만 1천장 소량만을 제작했다. 그 후 드러머가 권용남으로 교체되는 내홍을 겪은 후 하드록 풍으로 재 취입되었다.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미인'은 바로 후기 엽전들의 공식 1집에 수록된 노래 가락이다.

‘한국적 록 사운드를 창조했다’는 극찬을 받는 엽전들의 1집은 여러 가지 버전이 혼재하는 음반이다. 공식 1집의 타이틀곡은 '미인'이지만 초판에선 2면 3번째 곡이었다. 처음 타이틀곡은 ‘저 여인’이었다. 이 음반은 진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총 10곡의 수록곡 중 7곡이 퇴폐, 저속, 방송부적합을 이유로 금지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1964년 록밴드 '에드훠'부터 이어진 신중현의 음악여정은 이 앨범을 통해 형식과 내용(음악과 대중성)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며 정점에 올랐다.

‘엽전들’이라는 한국적 향내가 물씬 풍기는 밴드 이름에 걸맞게 이 앨범은 서구의 록에 국악이 접목된 진보적 음악을 담고 있다. 5척 단구에 벙거지를 눌러쓰고 긴 전기기타를 휘두른 신중현이 각설이 타령조로 노래한 '미인'은 일대 충격파를 날렸다. 단순 반복적 노랫말과 경쾌하고 친근한 선율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듣는 이의 혼을 빼앗았다.

요즘 대중음악계의 유행인 바로 그 후크송이다. 계층을 초월해 사랑받은 이 노래는 단숨에 '3,000만의 주제가'로 떠올랐다. 동명의 영화 ‘미인’까지 제작되었다. 신중현은 팀 멤버들인 이남이와 권용남과 함께 주연배우 출연은 물론 음악감독까지 맡았다. 대개의 한국음악영화가 그랬듯 통속적인 멜로물인 이 영화도 완성도를 따질만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엽전들의 실제 연주모습은 실로 소중한 이미지다.

하지만 '미인'의 대히트는 실험적인 곡들로 무장된 이 위대한 명반의 진정한 평가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음악적으로 최대 화두는 '나는 너를 사랑해'다. 구슬픈 상여가락이 인상적인 이 노래는 군사정권이 잉태한 신뢰를 잃어버린 당대 사회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엔 노래 제목도 반대로 발표했다.

가사도 지극단순하다. ‘나는 너를 사랑해’를 '해랑사를 너는나', 그리고 '나는 너를 좋아해'를 '해아좋를 너는나'로 반대로 반복해 부르는 것이 전부다. 2면 마지막 트랙인 싸이키델릭 연주곡 '떠오르는 태양'은 이남이의 베이스 기타 선율이 태양처럼 빛나는 명연주다.

지금까지 확인된 1집 음반은 초반, 공식 1집 이외에 1974년 10월 비매품 버전, 금지해제 후 출반된 1987년 버전, 1994년 CD와 최근에 재발매된 갖가지 CD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 중 최초 발표된 LP은 100만원을 호가하는 초 희귀음반이다. 하지만 ‘엽전들’의 최대 명반은 환각상태에서 녹음을 시도한 미발표 사이키델릭 버전일 것이다.

서유석의 ‘선녀’, 장현의 ‘나는 너늘’, 김정미의 대표곡 ‘바람’등을 수록한 보물 같은 미공개음원 속엔 상상을 초월하는 신중현 사운드의 미증유의 세계가 담겨있다. 신중현은 1975년 장미리의 ‘두 남편’음반을 끝으로 대마초 파동에 휘말렸다. 활동이 전면 금지되면서 그의 빛나는 창작력 또한 사실상 끝이 났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