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박희곤의 '인사동 스캔들'제2의 복제품 반전에 반전, 그리고 또다른 비밀

박희곤 감독의 ‘인사동 스캔들’은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인 위작(僞作) 관행을 소재로 하여 비교적 리얼하고 시니컬하게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조선시대 전기의 최대 화가로 꼽히는 현동자(玄洞子) 안견(安堅)의 미발표 작품이라고 설정된 명화 ‘벽안도’를 놓고 펼쳐지는 미술계의 이전투구를 다루고 있다. 혜원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하여 호기심어린 반응을 이끌어 냈던 전윤수 감독의 ‘미인도’에 이어 이번에는 안견이라는 이름 석자가 스크린 상에 호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견은 누구인가? 그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미술사가 이동주의 ’한국회화사론’에 따르면, 안견은 지곡(池谷) 사람이며, 자는 가도(可度) 또는 득수(得守)라고 하는데 정사품의 벼슬을 지냈으며 그림 중에는 산수화에 능하며 그가 남긴 작품들로는 ‘청산백운도 靑山白雲圖’, ‘임강완월도 臨江翫月圖’ 같은 것들이 있으나 그의 작품으로 추정될 따름이며,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1447)만이 그의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그림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속에서 노닐던 도원경(桃源境)의 장면을 안견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이 그림은 현재 일본의 한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영화에서 안견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벽안도’는 픽션의 산물임을 감안해야 할 터이다. 안견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 중에 ‘적벽도 赤壁圖’가 있는데, 아마도 이것을 살짝 제목만 비튼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 ‘벽안도’는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였던 오원(吾園) 장승업의 서책을 통하여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으로 설정된다.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그렸을 때 안평대군이 제사(題辭)와 발문(跋文)을 써준 것에 대한 사은의 뜻으로 일필휘지로 그린 것이 바로 ‘벽안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벽안도’는 사라지고 말았다. 세조가 집권하면서 최대 정적이었던 안평대군을 축출했고, 이에 따라 안평과 절친했던 안견이 그가 용(즉 왕)이 되길 소망하면서 그려준 ‘벽안도’는 불온한 그림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벽안도’가 일본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전해지고 발 빠른 배태진이 나서서 거금을 들여 입수하면서 명작 쟁탈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름 하여 화(畵)의 전쟁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복원전문가 이강준(김래원), 국내 미술시장의 큰손 배태진(엄정화) 그리고 인사동의 마당발인 권마담(임하룡) 등이 영화 속 인사동을 헤집고 다니는 메인 캐릭터들이다.

어렵사리 입수한 ‘벽안도’는 그러나 400여 년의 풍파 속에서 몹시 훼손이 된 상태다. 제대로 복원만 한다면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명작으로 거듭날 테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단순히 회화사적 가치만을 가진 유품에 머무르게 될 터였다. 배태진 여사는 겉으로는 그림을 복원하여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속내는 일본 고미술수집가에게 천문학적 액수를 받고 되팔려는 속셈이었다.

그리하여 당대 최고 복원전문가인 이강준을 영입하게 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두 사람 간에는 오랜 앙금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강준이 배태진의 제안을 수락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방법을 동원하여 국보급 문화재의 해외 밀반출을 저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서로 자신의 목적을 위한 일시적 화해였던 셈이다. 과연 동상이몽(同床異夢)에 있는 그들의 작전은 성공을 거둘 수가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면, 스캔들로 들썩거리고 있는 인사동으로 가볼 것을 권한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사실 줄거리나 결말이 아니다. 우리가 ‘인사동 스캔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술품을 복원하는 과정과 위작들이 대거 유통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본 평자는 미술품의 진위여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란이 생겨나고 있는 작금의 미술시장 관행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감상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지난 1991년 천경자 화백은 자신이 그린 ‘미인도’를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부정함으로써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지난 2007년에는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여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가 위작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중섭의 자제가 국내 브로커를 이용하여 선친의 그림을 대량 위조하여 판매하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미술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화가의 명성과 지명도가 곧바로 경제적(금전적) 가치로 환원되는 미술시장의 추악한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미술계에 관한 한 문외한 일수밖에 없는 평자로서는 그 같은 설정만으로도 사실 흥미롭게 ‘인사동 스캔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 자체가 갖는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재 자체가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내가 특히 신선하게 보았던 대목은 이강준이 ‘벽안도’의 복원작업을 행하면서 그 원래 그림(즉 원접)의 이면지(즉 배접)를 분리해내어 그것을 마치 진품처럼 복원해가는 과정이었다. 동양화의 경우 원접의 변형을 막기 위해 똑같은 재질의 종이 한 장을 뒤에 덧붙이는 것을 배접이라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배접에도 먹물과 물감이 스며들게 되어,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자연적 복제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강준은 배사장과의 계약대로 원접의 복원에 전력투구를 하면서도 은밀하게 배접을 통한 제2의 복제품을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과정 속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플롯의 묘미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원접과 배접 사이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비밀이 ‘인사동 스캔들’의 내러티브를 해명하는 열쇠이자 작품의 성패까지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이 영화의 극적 구성과 캐릭터 설정에서 ‘범죄의 재구성’ 내지 ‘타짜’같은 이전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상업적 장르영화에서 관건은 독창성 여부가 아니라 자체의 완결성이라고 할 때 흠이라고 보긴 어렵다. 어쨌든 이에 대한 평가는 차후로 미룰 수밖에 없다.



김시무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