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포럼 2009] 다양한 소재의 시대정신과 재미 고루 갖춘 55편 신작 선보여

주류들의 융단폭격에 ‘좌파’로 낙인찍힌 비주류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오늘날 독립영화도 비슷한 처지다. 독립영화인에 대한 ‘좌파’ 몰이와 함께 정부 차원의 개봉 지원 중단은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독립영화계 현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워낭소리’, ‘똥파리’ 같은 독립영화의 성공까지 ‘잘만 만들면 독립영화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라는 이상한 논리로 오도될 때, 독립영화는 다시 한 번 주류의 왜곡에 온몸으로 저항한다.

인디포럼2009의 모토는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마치 백인 침입자들의 폭력적인 점령 의지에 저항하는 인디언들처럼, 정부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맞서겠다는 의미를 ‘주먹쥐고 일어서’라는 슬로건에 담아 올해 행사를 치른다.

영화는 오락 또는 산업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인디포럼의 ‘작태’는 여전히 ‘좌파’라고 이를 붙일만한 것이다. 그러나 인디포럼은 영화를, 예술을 현실사회와 동떨어진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반영이라고 일갈한다. 이런 생각은 올해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이번 행사의 프로그래밍을 맡은 윤성호 감독은 올해만의 작품 선정의 특색을 ‘재미’라고 말한다. 물론 어느 프로그래머가 자신이 고른 영화들이 재미가 없겠냐고 하겠냐만은, 독립영화축제에서의 재미란 좀 다른 의미의 재미를 말한다.

이제까지의 독립영화들이 인종이나 계급, 젠더와 같은 사회학적 이슈들을 다루며 다소 경직된 태도를 보여왔다면, 올해 출품된 작품들은 보다 다양한 소재를 자기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낸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총 55편의 신작들로 구성된 올해 상영작들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과 ‘재미’의 두 가지 잣대가 고루 배려된 결과들이다. 너무나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로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는 시선에 관한 것들이다.

출품작들이 뿜어내는 정서 역시 ‘재미있게’ 변화된 점 또한 흥미롭다. 억압에 짓눌려 늘 무언가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하는 척박한 현실은 (슬프게도) 80년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간 독립영화는 상업영화가 대변하지 못했던(오히려 외면해왔던) 현실의 파편을 사실주의적으로 다루며 영화 안팎의 부조리에 저항해왔다. 때문에 독립영화가 오랫동안 대중 관객의 폭넓은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이 같은 ‘운동권’적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이 컸다.

그러나 2009년의 젊은 감독들은 20여 년 전의 작가들처럼 ‘인상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젊은 치기만을 내세워 대책없이 긍정하거나 조롱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살아가야 할 암울한 시대, 냉소보다는 유머와 눈물로 때로는 분노와 이성으로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고 관객에게 제안한다.

(위에서부터) '산책가' '외출' '불타는 필름연대기'

선배들에 비해 훨씬 유연해진 자세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올해 작품들의 경향은, 그래서 ‘주먹쥐고 일어서’라는 슬로건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

윤성호 프로그래머가 개인적으로 최고작이라고 추천하는 남궁선 감독의 ‘최악의 친구들 Worst Friends’은 이런 현실 사회와 개인의 문제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작품이다. 윤 프로그래머의 표현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세 친구’나 ‘국외자들’ 같은 영화에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같은 문학까지, 또 타란티노에서 고다르, 에이미 헥커링적 냄새까지 고루 풍기는 역작이다.

물론 프로그래머 개인의 기호가 십분 반영된 결과지만, 그런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독립영화라는 영역에서 이 같은 시도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최근 독립영화의 어떤 변화를 말해주는 단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에는 역시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수반된다. 독립영화의 변화는 다시금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독립영화가 지향해야 할 길은 어디인가’에 대한 질문을 야기시킨다. 이러한 질문과 고민을 함께 토론하는 자리가 있어야 함은 자연스러워보인다.

그 장으로서 마련된 것이 ‘촛불 1주년, 독립영화의 길을 묻다’라는 포럼이다.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촛불투쟁의 의미는 인디포럼 행사의 정체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제목이다. 이 자리는 감독들이 영화인으로서 당시 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동안, 다양한 영상기기를 들고 나선 대중의 창발성에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변화의 기로에 선 독립영화가 급변하는 시대에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의 문제가 이번 포럼의 주요 현안이 된다. 결국 새로운 독립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관한 문제. 이를 놓고 이택광 문화평론가와 고병권 수유+너머 추장이 발제를 하고, 진중권 문화평론가와 변성찬 영화평론가, 이송희일 감독, 허경 감독이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비단 행사를 떠나 현실의 가장 큰 이슈는 ‘촛불’이다. 2007년부터 인디포럼에서 매해 독립영화 정신을 가장 밀도있게 구현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주는 ‘올해의 얼굴상’ 역시 그런 맥락에서 진보신당의 ‘칼라 TV’에 돌아간다. ‘칼라 TV’는 인터넷 생중계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촛불 집회 중계로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칼라 TV의 이명선 아나운서와 영화배우 박혁권의 사회로 5월 29일에 개막한 인디포럼2009는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의 개막공연 ‘거리의 프리마돈나’와 개막작 ‘외출’(서재경), ‘산책가’(김영근, 김예영) 상영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좀 더 대중적으로, 좀 더 친숙한 소재로 변화하고 있는 새로운 인디포럼은 다음 달 5일까지 명동 인디스페이스와 홍대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만날 수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