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장기하와 얼굴들 1집 '별일 없이 산다' 2009년 붕가붕가 레코드반복해 들을수록 묘한 중독성 발휘사전 예약 8000장… 인디앨범으론 이례적·판매기록 행진 중

장기하의 성공은 단순히 인기획득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노래에는 백수, 88만 원 세대로 대변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정서가 녹아 있다.

성공한 자들만이 대접받는 우리 사회에서 그가 노래한 실패한 자들의 덤덤하고 당당한 일상은 새로운 중심문화로 떠올랐다. 바로 ‘루저(Loser) 문화’다. 그런 면에서 장기하는 대중음악을 통해 승자위주의 역사논리마저 전복시킨 문화혁명가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는 다양성이 부족한 주류 일변도의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희망적 대안으로 떠올랐다. 인디음악계의 열악한 제작, 홍보, 활동환경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의 성공은 경이적이다. 그의 노래가 대중적 흡인력을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음악성은 뮤지션에게 가장 필요한 필요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가치를 음악성만으로 논할 수 없다는 점은 대중 음악사를 수놓았던 수많은 히트곡들의 면면이 증명한다. 탁월한 음악성은 없어도 그저 동시대 대중의 솔직한 심정을 단순하고 익숙한 멜로디로 대변하면 족했던 것이 사실 아니던가!

예컨대, 대마초 파동으로 대중가요계가 무주공산이 되었을 때 정상에 오른 송대관의 ‘해뜰날’은 탁월한 음악성을 담보한 노래는 아니다. 하지만 시대를 넘어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는 점에선 적어도 그 노래엔 시대를 초월해 대중이 공감한 ‘꿈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과거의 음악유산에서 장점만을 끌어 모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창조해낸 장기하의 음악적 재포장 재능은 독보적이다. 그의 노래는 앞서 언급한 히트곡의 필요충분조건에서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금년 2월 ‘장기하와 얼굴들’의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발표되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사전 예약만으로 8000장이 팔려나갔다.

인디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일일 판매 1위를 기록하며 지금도 2만장이 넘는 판매기록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이 등장하는 공연 역시 어김없이 만원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대중적 성공과는 달리 음악성에 대해서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유보적 시각이 많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1집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실망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수록곡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 앨범은 처음보다는 반복해 들을수록 노래마다 묘한 중독성을 발휘하며 감칠맛을 더하는 특이한 음반이다. 총 13곡이 수록된 1집은 포크, 록, 블루스. 레게 등 다양한 7080시절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혼재되어 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후크송의 느낌이 강한 읊조리는 듯 반복적인 가사와 더불어 코러스와 춤을 맡고 있는 ‘미미시스터즈’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무표정하고 진지해서 더 웃긴 이들은 개그맨들의 패러디를 통해 화제의 중심에 서있음을 재차 확인시킨다. 약속의 땅에 왔지만 속았다고 말하는 ‘아무것도 없잖어’와 ‘그 남자 왜’, ‘나를 받아주오’, ‘별일 없이 산다’는 이들의 대표적인 코믹버전일 것이다.

또한 송창식의 필이 느껴지는 ‘나를 받아주오’와 신중현의 ‘꽃잎’이 연상되는 '삼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분명 옛날에 듣던 노래 같은데 뭔가 다른 새로운 느낌으로 중년세대들에게도 착착 감겨오는 트랙들이다.

그의 노래가 앞으로 얼마나 롱런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지금과 똑같은 스타일로는 곧 식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예측이다. 이는 앞으로 그가 고민해야 될 음악적 과제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하는 평론가와 팬들의 이 같은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나는 언제나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하려고 했고, 앞으로도 할 거다. 그것을 대중이 좋아해 준다면 다행이고, 만약 최대한 열심히 했는데 별로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덤덤하게 말한다. 장기하는 인기에 연연한 뮤지션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할 것 같은 믿음이 가는 대목이지만 앞으로 자신의 음악성을 발전시키고 진보시키는 진지한 고민도 결코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