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영화제] 한국·일본·대만·유럽 등 다양한 호러물 판타스틱한 시도 특징

1-‘피시 스토리’, 2-‘소년 메리켄사쿠’, 3-‘노르웨이의 숲’
4-‘V소녀 대 F소녀’, 5-‘나도 스타가 될 거야’, 6-‘반드시 크게 들을 것’
1-'피시 스토리', 2-'소년 메리켄사쿠', 3-'노르웨이의 숲'
4-'V소녀 대 F소녀', 5-'나도 스타가 될 거야', 6-'반드시 크게 들을 것'

피와 비명이 화면을 흥건하게 적시면 일단의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간혹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질끈 감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살인마 또는 악령들이 산 자들을 희롱하며 자신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때, 자처해서 어둠 속으로 들어온 관객들은 다음 장면을 예상하며 탄성을 내뱉고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공포영화 팬들조차 고개를 돌리게 했던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의 상영 장면이다. 서울아트시네마와 CGV 채널에서 방영되기 전, 이 악명높은 작품들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 이하 부천영화제)에서 이미 호러 팬들의 눈을 거쳤다. 원래도 강렬한 공포영화들로 유명했던 부천영화제는 이 시리즈의 시즌 1,2를 잇따라 상영하며 '공포 전문 영화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지난 16일 시작된 제13회 부천영화제는 그래서 공포영화 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왔던 축제다. 대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장르인 만큼 부천영화제가 주는 기괴한 방식의 '판타스틱함'에 두려움을 표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부천영화제의 특징은 강렬한 호러라기보다는 판타스틱한 시도에 방점이 찍힌다.

올해 부천영화제의 특징은 유독 음악적 실험을 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는 것. 장르 영화 팬들만의 전유물 같았던 부천영화제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된 (비교적) 편안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 최대의 음악제인 ‘유로비전’의 청소년 버전인 ‘주니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 <나도 스타가 될 거야>는 제2의 폴 포츠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성장담을 뭉클하게 그린다.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최근 네티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유행어 ‘우린 안 될거야 아마’의 주인공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인디밴드 ‘타바코쥬스’의 드러머이기도 한 그는 이 작품에서 세상을 향한 자조 섞인 목소리 대신 라이브클럽 ‘루비살롱’의 탄생과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독특한 색깔로 이목을 끄는 작품들은 모두 일본감독의 영화들이다.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고>의 쿠도 칸쿠로 감독은 <소년 메리켄사쿠>에서 코미디와 펑크 음악을 접목시켰다. 20년 전에 해체되어 이미 '찌질한' 아저씨들이 된 멤버들이 일으키는 해프닝과 코믹한 설정들이 쉴 새 없이 웃음을 선사하는 유쾌한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인 2012년을 배경으로 하는 <피시 스토리>는 SF와 펑크 음악을 결합했다. 이 영화는 혜성과의 충돌을 앞둔 지구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 과거의 무명 밴드 ‘피시 스토리’의 펑크 음악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인상적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람들의 진심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독특한 주제를 선보이며 'SF 뮤직판타지'를 표방하는 영화다.

이리에 유 감독의 <거기엔 래퍼가 없다>는 올해 일본 자주영화의 놀라운 성과로 꼽힌다. 올해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그랑프리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고 한심한 청춘들이 래퍼에 도전하면서 겪는 눈물겨운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부천영화제를 기다려 온 공포영화 팬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게다가 '부천영화제'라는 브랜드가 갖는 공포의 변주는 장르 팬들을 넘어 씨네필 모두를 기대케 하는 점이 있다. 이제까지 공포영화 거장들의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공포의 심연을 맛보게 했다면, 올해는 보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시도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대만 최초의 슬래셔 영화라는 <인비테이션 온리>를 비롯해, 독일에서 실제 있었던 미해결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고딕풍 미스터리 스릴러 <카이펙 머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색다른 공포의 정서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세르비아 최초의 본격 좀비 영화라는 <좀비습격>은 좀비군단에 맞서는 인터폴 요원들과 죄수들의 한판 승부를 그린다.

상기 세 작품과 함께 박진형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작품은 <섹시 킬러>. 매력적인 여대생이 사실은 냉혈한 살인마라는 콘셉트로 풀어가는 SF 코믹 호러 스릴러로, 섹시한 장면과 어처구니 없는 유머가 뒤섞인 독특한 호러다.

부천영화제 팬들에게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금지구역'은 가장 과격한 표현 수위의 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섹션. 올해 '금지구역'은 휴가온 의대생들과 나치 좀비 부대의 대결을 그린 <데드 스노우>, 제목에서 벌써 '포스'가 느껴지는 <인육국수>, 등 5편이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의 V와 F는 각각 뱀파이어와 프랑켄슈타인을 나타낸다.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제목이 영화를 말해주고, 영화는 과연 제목을 배반하지 않는다.

'프랑스 호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영화도 만날 수 있다. 어린 시절 학대받았던 소녀가 15년 후 한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 그 주인공이다.

반면 무덤에서 관우가 살아나 학살을 벌이자 <이블 데드>의 주인공 브루스 캠벨이 본인으로 등장해 영화처럼 싸워달라고 부탁받는다는 <내 이름은 브루스> 같은 코믹 호러도 장르 팬들을 기쁘게 한다.

한편 한국산 코믹 호러를 표방하는 <노르웨이의 숲>과 2000만 원의 제작비로 만들었지만 한국 좀비 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평가받는 <이웃집 좀비> 같은 한국 호러들도 이번 영화제를 통해 공개돼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들은 권용민 프로그래머로부터 "조지 로메로(<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감독) 이후 좀비 세대를 예감하게 할 만큼 장르적 재미가 충만하다"는 평가를 받아, 한국 호러의 진보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