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마이클 만 감독의 엄격한 관찰자 카메라로 잡아낸 숨 막히는 현장감

영웅은 궁핍한 시대를 먹고 자란다. 무기력증에 빠진 대중은 특별한 개인에게 ‘영웅’의 작위를 내리고 추종함으로써 시대를 견딜 에너지를 번다. 한편 궁핍한 시대를 조용히 넘기고 싶은 정부로선 ‘내 편이 아닌’ 영웅의 탄생은 골칫거리다.

대중의 술렁임을 일으키고, 정부의 사회 장악력을 의심케 하는 자를 영웅이란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힘이 들어갈수록, 실수도 잦기 마련이다. 정부의 실수에 대중은 환호하고, 환호하는 대중에 정부는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동안 영웅의 무용담도 영글어간다.

1930년대 혹독한 대공황을 견디던 미국에선 한 은행 강도가 ‘영웅’의 작위를 선사받았다. FBI가 미치도록 잡고 싶었던 ‘공공의 적 1호’이자 대중에겐 ‘기관총을 든 신사’로 불렸던 존 딜린저.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는 단 13개월 만에 시카고를 무법천지로 바꿔 놓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은행 강도 존 딜린저의 짧고 강렬한 전성기를 스크린 위로 건져 올린다.

영화는 존 딜린저(조니 뎁)의 대담한 탈옥으로 문을 연다. 동료들과 함께 우아하게(?) 교도소를 탈출한 딜린저는 본격적으로 시카고의 은행들을 초토화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많은 은행 중에서도 부유층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악덕 은행만 골라 단 몇 분 만에 금고를 털어나오는 신출귀몰한 행적으로 점점 유명세를 얻는다.

게다가 절대 인질을 죽이지 않고, 심지어 인질로 잡힌 여성에게 “추울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수트를 벗어주는 신사다운 태도는 그를 단순한 강도가 아닌 정부를 골탕 먹이는 ‘반영웅’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연일 화려한 은행털이 기술을 보여주던 딜린저는 우연히 고급 레스토랑에서 코트를 받아주는 일을 하던 여종업원 빌리 프리쳇(마리온 코티아르)에게 한 눈에 반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한편 번번이 눈 앞에서 딜린저를 놓치며 비웃음을 사던 경찰 수사국(현 FBI의 전신)의 국장 에드거 후버(빌리 크루덥)은 최고의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를 기용해 본격적인 딜린저 소탕작전을 벌인다. 퍼비스를 필두로 한 수사국의 총공세 끝에 드디어 딜린저를 잡아들이는 쾌거를 이루지만, 기쁨도 잠시.

호송되는 중에도 환호하는 대중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취재기자들 앞에서 검사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농담을 건네는 등 여유를 보이던 딜린저는 감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탈옥해 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퍼비스 팀은 거의 이성을 잃고 딜린저 추적에 열을 올리고, 딜린저 역시 옥죄어오는 수사망에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언제나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마이클 만 감독에게 희대의 악당이자 대중들 사이에선 록스타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존 딜린저는 매혹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마이클 만 감독은 딜린저의 실화를 정리한 책 <공공의 적들: 미국의 최대 범죄증가와 FBI의 탄생>을 원작으로 <퍼블릭 에너미>의 기본 뼈대를 완성했다.

이 전대미문의 은행강도가 벌인 ‘범죄’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다. 1분40초 만에 은행을 터는가 하면, 매번 그를 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는 수사망을 피해 유유자적 달아났다. 불을 뿜는 기관총을 액세서리처럼 차고 있지만 폭력을 혐오했다. 게다가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탓에 오히려 사랑에 대해선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못 말리는 로맨티스트였다. 공황의 시대에 탄생한 낭만의 갱스터. 마이클 만 감독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영화작업에 착수했다.

<퍼블릭 에너미>는 첫 장면부터 독특한 화면으로 시선을 빼앗는다. 대사를 하는 배우의 입을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 밖으로 밀어내는 가로 화면은 처음엔 생소해서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곧 그 화면의 비밀을 눈치 챌 수 있다. <퍼블릭 에너미>의 카메라는 존 딜린저가 등장하는 신에서는 그의 일당 중 한 명 같고, 퍼비스가 등장할 때는 수사국 일원의 한 명 같다.

마치 인물의 심층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듯 그 인물에 달싹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카메라는 인물들과 함께 뛰고, 춤추고, 총 쏘고, 걷는다.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카메라는 클로즈업이 아님에도 클로즈업처럼 인물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미세한 눈꺼풀의 떨림, 동공의 움직임만으로 인물들의 내면이 술술 독해된다. <퍼블릭 에너미>의 놀라운 긴장감은 여기서 탄생한다.

이 모든 것은 마이클 만 감독의 의도다. “나는 관객이 그들을 ‘보길’ 원하지 않는다. 관객이 그 현장에 ‘있길’ 원했다.” 1930년대의 시카고가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 세트는 영화에 전시될 겨를이 없다. 감독은 한 구석만 봐도 놀라운 완성도를 짐작케 하는 세트와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배우들의 전신을 포기하는 대신, 관객이 현장 귀퉁이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숨 막히는 현장감을 얻었다.

굳이 세트를 전시하듯 보여주지 않아도 시대의 공기를 채집할 수 있다는 대가의 여유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려한 부감으로 도시의 비경을 잡아내는 데 탁월했던 마이클 만 감독의 전작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가 조금 갑갑하겠지만, 적응하는 데는 채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 마이클 만의 인장인 ‘도심 총격신’이 터지기 시작하면, 생소한 화면 비율 따윈 금세 잊는다.

<퍼블릭 에너미>의 훌륭한 점을 꼽으라면 수도 없지만, 그 중에서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배우들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 등 ‘남자배우 세기의 대결’을 성사시켜 온 마이클 만은 이번엔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을 맞붙였다. 일견 전형적인 캐스팅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니 뎁의 자유로운 방랑자 적인 면모는 희대의 ‘낭만강도’ 존 딜린저의 괴짜 기질과 맞물리고, 크리스찬 베일의 날카롭고 단정한 이미지는 FBI 일등 수사관 멜빈 퍼비스와 쉽게 이어진다.

하지만 두 배우는 기존의 이미지 따윈 떠올릴 겨를도 없이 딜린저와 퍼비스를 즉각 흡수해 버린다. 역할 상으로 크리스찬 베일이 수비수이고, 조니 뎁은 공격수다. 그렇기에 뎁의 연기가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연기는 종종 숨 막히게 완벽하다. 영화 중간 체포된 딜린저가 대중에게 손을 흔들고, 검사에게 팔을 기대는 여유로움은 그의 배짱이 아니라 오기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약한 면이 과장된 자신감으로 포장되는 그 미세한 양면성이 조니 뎁의 눈 속에 훤히 비친다. 이미 제작진의 이름만으로도 <퍼블릭 에너미>의 파괴력은 예상하고 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명작과의 만남은 예상보다 훨씬 더 반갑다.



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