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소재로 한 옴니버스 영화 '황금시대' 관객과의 대화 지상 중계

1) 지난 13일 서울 홍대앞 상상마당에서 영화 <황금시대> 상영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패널들. 왼쪽부터 양해훈 감독 우석훈 경제학자 최규석 만화가 윤성호 감독.
"돈을 돌리기는 하는데 돈이 돌아오지는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네요."

'돈은 돌고 도는 것이어서 돈'이라는 '상식'을 새삼 거론하며 경제학자 우석훈이 말했다." 만화에도 영화에도 돈을 뜯기는 사람들만 많이 나온다"는 만화가 최규석의 씁쓸한 평과 "한국사회에서 돈은 왜 어둡게 그려질 수밖에 없냐"는 한 관객의 한탄조 질문이 오갔다. 분위기를 뒤집은 것은 윤성호 감독의 유머 감각.

"왜요~ TV 켜면 밝은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미래에 투자하세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드립니다, 같은."

지난 13일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는 영화 <황금시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황금시대>에서 각각 <시트콤>과 <신자유청년>을 연출한 양해훈 감독과 윤성호 감독,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 <대한민국 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등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 온 만화가 최규석이 참석했다.

<황금시대>는 돈을 소재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패널이 패널이니만큼 대화는 영화의 내용을 넘어 혹독한 '쩐의 전쟁'터인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으로까지 이어졌다.

2) 권종관의 <동전 모으는 소년> 3) 최익환의 <유언Live> 4) 윤성호의 <신자유청년> 5) 양해훈의 <시트콤> 6) 이송희일의 <불안> 7) 김영남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 8) 남다정의 <담뱃값>
윤성호 감독(이하'윤') 영화 본 소감이 어땠나.

우석훈 교수(이하'우') 원래 전공이 돈이라 재미있게 봤다. 돈이 좀 말초적이라서인지, 지금이 돈의 시대라서인지 좀 슬펐다.

최규석 작가(이하'최') 돈을 뜯기는 사람들만 나오는데, 그 돈을 어떻게들 뜯어 가는지도 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해훈 감독(이하'양') 미리 받아 놓은 관객 질문 중 이런 게 있었다, 요새 사는 낙이 뭔가요. 이 질문은 패스하겠다.(웃음) 한 관객이 최규석 작가에게 한국사회의 빈곤 문제를 다룬 <습지생태보고서>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습지생태보고서>는 수몰 지구의 원주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다. 외부 환경은 바뀌는데 아직 바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근거인 '돈'도 그닥 필 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를 테면 쌀을 판다는 표현으로 돈을 번단 이야기를 대신하는 어른들이랄까. 농부였던 이들이 돈의 논리 때문에 땅과 직업을 잃어버린 것을 그렸다.

<황금시대>의 제작비를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은데, 편당 500만원이다. 돈이라는 말초적인 콘셉트를 잡았더니 다양한 경제적 사정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 같다.

내가 제일 슬펐던 작품은 <불안>이었다. 주식 폭락으로 거대한 빚을 진 남편이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려 나들이를 떠나는데, 아내는 계속 초조해한다. 남편이 자신 명의로 들어 둔 생명보험 계약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험금을 노려 자신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영화가 시작한 후 5분 동안은 저 여자가 제정신일까, 싶었다. 그런데 아내의 불안이 맞는 거다.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돈 혹은 치정 문제로 설명되는데, 그 중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건 돈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불안>은 감독들 사이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된 작품이다. 하지만 평단이나 관객들에게선 가장 불편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관객석에서 질문해 달라.

관객 1 20대 후반의 여자다. <88만원 세대>를 읽고 비정규직은 절대 할 수 없단 생각에 프리랜서로'투잡'을 하고 있다. 또래들도 경제적 문제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세대에게 돈은 삶을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구조'다. 우석훈 교수는 어떻게 이런 돈을 잘 다스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돈을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다. 분석하는 게 돈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선진국의 경우 사람들의 행위 중 돈으로 설명되는 부분은 50% 정도다. 그런데 한국은 90% 정도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40세 이상 층은 99% 이상 설명된다. 그래서 후진국이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고 그런 사람들도 먹고 살게 만들어주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20대는 40대보다 돈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은데, 그게 '찌질한'것 이 아니라 선진국형이다. 프랑스, 스위스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런 구도를 뒤엎어야 하는데 개인이 풀기는 어렵고 집단적 접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쫓아간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적금을 든다고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고 '짱돌'이 없으면 안될 것 같다. 사람들이 각자 조금씩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관객 2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상상만 했는데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웃음) 일단 부모님께 '떼어'드리고 아들로서의 책임감에서 벗어나겠다.(웃음) 나머지로는 내 이름을 건 만화상을 만들면 되겠다. 아니다, 출판사를 차려 내 책 내겠다.(웃음)

로또를 한번도 산 적이 없어 당첨될 확률이 0%다.(웃음) 30년 전 프랑스의 한 연구자가 로또 당첨자들을 추적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불행해지거나 빨리 죽었단 결과가 나왔다. 행복해진 사람은 고작 10%였는데 서둘러 이사를 간 사람들이었다. 로또에 당첨되면 일단 이사를 가거나 숨어야 한다.(웃음)

이명박 대통령이 권하는 대로 펀드에 투자하면 되겠다.(웃음) 로또 긁는 게 취미였던 옛 여자친구가 생각난다. 만날 당첨되면 내가 영화 만드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당시 나에게 500만원만 더 있었으면 그와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돈을 더 썼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조금 더 여유 있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연애에 좀 집중해 보겠다.(웃음)

관객 3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에서 20대 주인공들의 정치 참여 의식이 원론적이거나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나 자신이 20대 초반에 정치에 무관심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요즘에야 내 삶과 정치가 상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정하는 어떤 기준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나. 우석훈 교수의 책에도 나오듯 연애나 동거 같은 사생활까지도 다 정치와 관계되는 것 같다.

관객 4 처음으로 돈의 개념이 확 와 닿았던 순간이 언제인가, 예를 들면 '나이키' 신발이 갖고 싶은데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거나.

5살 때다.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 당시 돈으로 10원을 주셨다. 그것으로 골목 아이들 모두에게 '눈깔사탕'을 사주고 2시간쯤 놀 수 있었다.(웃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작년부터 하고 있다. 사회운동을 10년째 했는데 마흔이 넘으니 몸으로 하는 것은 힘들어서 못하겠더라. 재단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려선 돈의 양이 중요한 줄 알았다. 가진 돈을 모두 10원짜리로 바꾸어 쌓아 놓고 놀았다. 만화책에 보면 해적들이 금화를 쌓아 놓고 고기를 뜯는 장면이 있지 않나.(웃음) 돈의 필요성을 느꼈던 건 학창 시절 대학교 만화과에 가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었을 때다. 만화가나 화가가 되려는 평범한 꿈을 이루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 돈이 없으면 꿈을 가지면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황금시대'는 돈에 웃고 우는 한국사회 비추는 요지경

<후회하지 않아>의 이송희일,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내 청춘에게 고함> <보트>의김영남, <새드무비>, 의 권종관, <여고괴담4>의 최익환,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빛나는 거짓>의 채기, <어느날 갑자기>의 김은경, <아이들은 잠시 외출했을 뿐이다>의 남다정.

활동 영역도, 스타일도, 화두도 각자 다른 젊은 감독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을 기념해 기획된 옴니버스 영화의 주제가 바로 '돈'이었던 것. 그들은 과연 각자 개성 있고 혈기 넘치는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을 모은 영화 <황금시대>는 돈에 웃고 돈에 우는 한국사회를 비추는 요지경이다.

돈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명징하고도 쓴 대답은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이다. 한 기자가 담배를 피우는 여중생을 발견하고 심하게 나무란다. 비밀을 지키기로 한 대가로 아이에게 돈을 건넨다. 노숙자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라는 것. 기자는 그 광경을 몰래 촬영해 기사화할 생각이다.

하지만 여중생의 불손한 행동에 노숙자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기자가 이 장면을 왜곡해 보도하면서 노숙자는 곤경에 처한다. 기자와 여중생, 노숙자라는 세대와 계급이 다른 이들의 삼각 구도에서 돈은 매혹인 동시에 위험을 옮기며 현실 속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매개다.

누군가는 돈 때문에 세상에 배신 당하고 자살의 궁지에 몰렸다.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는 두 청년의 절망을 비춘다. 자수성가를 꿈꾸며 시골에서 상경한 그들은 돈 때문에 얽히고설킨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참이다. 자신들의 억울함과 결백함을 호소하는 의미로 자살을 인터넷 방송에 생중계하기로 한 그들. 하지만 자꾸 엉뚱한 일이 벌어져 성공(?)을 훼방한다. 이 와중에 그들의 비장함은 슬프고도 우스꽝스럽다. 종종 돈 몇 푼에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이.

한편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은 1년 넘게 로또 1등에 연속 당첨된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고시원 총무로 근검절약하며 살던 그의 소시민적 인생은 어느새 일파만파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다. 자신의 운과 허영에 뻔뻔할 만큼 당당한 주인공과 그를 우르르 추종하는 사회의 모습은 감독의 말마따나 "돈 타령으로 풀어낼 수 있는 '대한민국'의 거대한 환상이자 서사"다.

김영남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그래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공장이 망한 후 밀린 월급을 받으러 온 여직원과, 가진 것은 없어도 악랄할 줄은 모르는 사장 간 불편한 대립은 점점 각자의 처지를 털어놓고 또 그사연에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변해간다.

이밖에 돈이 개입하면서 아이들의 천진한 감정과 관계도(권종관의 <동전 모으는소년>), 가정도(이송희일의 <불안>) 파국으로 치닫는 풍경, '용산 참사'의 배후에 있는 돈의 정체를 '테러'하려는 시도(양해훈의 <시트콤>), 아예 돈을 벌고 쓰는 일이 생략된 방랑자의 존재를 시적으로 응시하는 시선(채기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 등이 펼쳐지는 영화 <황금시대>는 지난 10일 개봉해 절찬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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