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문정숙 '나는야 가야지' 1959년 오아시스 드라마틱한 가창역 심금 울려… 90년대까지 리메이크 열풍

가수가 연기까지 잘하는 것이나 배우가 노래까지 잘하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할 신이 내린 축복일 것이다. 최근 가수들이 연기자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이 트렌드처럼 일반화되었다.

너나 할 것 없는 가수들의 배우 도전 붐은 대중가요계의 불황이 한 몫 거들었다. 가수들이 연기에 도전하는 일이 일반화된 시대라면 역으로 배우들도 가수 영역에 도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분명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수가 아닌 유명인의 노래 발표에 대중적 호기심은 언제나 뜨겁다는 사실이다.

배우들의 가수 도전 역사는 대중음악 역사와 궤를 함께 할 만큼 장구하다. 대중가요 전성시대를 이끈 이애리수 선생도 실은 배우 출신의 막간 가수였다. 이 부분을 언급하기 위해선 1950년대를 기억해야 된다.

당시 영화계는 OST음반 제작이 필수였다. 주제가의 인기는 영화의 흥행으로 이어졌고 영화의 흥행 여부에 따라 주제가 또한 자연스럽게 동반 히트되었기에 영화와 대중음악은 자연스럽게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대중문화를 접할 채널이 지금과는 달리 제한적이었던 당대였기에 모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는 곧 인기 가수가 되는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졌다.

1959년은 무려 111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며 수많은 주제가가 히트곡으로 등극했다. 그중 노필 감독의 <꿈은 사라지고>는 남녀 주연 배우가 공히 가수의 영역에 도전해 성공신화를 일궈낸 영화다.

원래 HLKA(현 KBS 라디오) 연속극이었던 이 영화는 드라마의 히트를 등에 업고 제작되었다. 당시 라디오 연속극에서는 안다성과 KBS 합창단이 주제가를 불렀지만 영화에서는 최무룡과 문정숙이 노래를 직접 불렀다.

특히 문정숙이 노래한 '나는 가야지'는 자신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되었을 만큼 엄청난 대중적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주제가 '나는 가야지'는 1959년 SP(유성기)음반으로 첫 모습을 보인 후 10인치 LP로도 수없이 재발매되었다.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이 주제가는 배우 문정숙에게 양옥집을 부상으로 줄 만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처럼 영화에 대한 당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은 영화 주제가들만을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 제작 붐으로 이어졌다. 그 중 대중적 선호도가 가장 높았던 오아시스 영화주제가 시리즈 1집에는 총 8곡이 수록되었다.

커버 모델로 등장한 문정숙을 비롯해, 최무룡, 현인, 박재란, 손시향, 백일희, 권혜경, 안다성 등 가수들의 면면 또한 당대 최고였다. 문정숙의 노래는 말이 필요 없는 흥행보증수표였다.

마치 연기를 하는 듯 드라마틱한 가창력으로 대중의 심금을 울린 문정숙은 60년대에도 영화 '심야의 블루스'와 '그 이름 잊으리', '예라이샹', '계약결혼', '검은머리', '여자만이 울어야 하나' 등의 주제가를 취입하며 배우겸 가수로서 확고한 영역을 확보했다.

지금도 그녀의 노래가 실린 음반들은 옛 가요음반을 수집하는 팬들에게는 중요 아이템일 정도. 문정숙은 60년대의 가장 뛰어난 성격파 여배우이기도 했다. 섬세한 표정과 심리적인 깊이가 엿보이는 연기는 압권이었다.

그녀는 요즘 유행하는 단어인 '팜므파탈'적 느낌을 처음 선보이며 '복수의 페르소나'라는 별명까지 획득했다. 이처럼 미모와 연기 그리고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그녀는 탤런트 양택조의 이모이기도 하다.

1973년 국내가수 이주랑은 일본 현지에서 이 노래를 취입했다. 또한 양희은, 홍민, 패티김, 문주란, 정훈희, 이성애, 숙자매, 남화용, 최진희, 김수희, 김란영 등 수많은 남녀 가수들을 통해 90년대에까지도 리메이크 열기가 이어진 문정숙의 '나는 가야지'는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불후의 명곡으로 평가받기에 손색이 없다.

이처럼 연기자들에게 노래실력은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중요성만큼이나 단순한 흥미의 대상이 아닌,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되는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비단 배우뿐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를 뛰어넘어 새로운 장르에 도전을 하는 유명인의 모습은 대중에게 언제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타 영역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