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패티김 길옥윤 패티김 결혼기념 싱글앨범 1966년 지구레코드 '사월이 가면' 미국으로 떠날 패티김 위해…결혼식 하객용 한정 제작 비매품, 가수 커플 첫 결혼 기념 음반

많은 여성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남성의 모습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대중가요는 대중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기능 외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맺어주는 작업 송으로도 역할을 발휘해 왔다.

요즘 스타급 남자 연예인이 방송에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위 '작업송'을 불렀다하면 어김없이 인터넷 검색 1위에 등극한다. 아마도 클레이지콰이의 알렉스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처럼 이성의 관심과 사랑을 얻어낼 수 있는 효과만점의 작업송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지대하다. 노래방에 이성친구들과 함께 갔을 때나 회식 자리에서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근사한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노래 한 곡으로 인해 결혼에 골인한 가수들도 제법 있다. 패티김, 길옥윤의 '사월이 가면', 홍서범, 조갑경의 '내 사랑 투유'.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는 이 방면에서 대표적인 노래들이다.

'작업송'의 키포인트는 적절한 상황이나 공간에서 적절한 내용의 노래 선택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술 한 잔을 하고 있다면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 작업을 거는 날이 수요일이라면 다섯손가락의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을 부르며 빨간 장미를 건네면 완벽할 것이다.

패티김은 서구적인 외모와 시원한 목소리, 깔끔한 무대 매너, 엄격한 자기 관리를 통해 반세기 넘도록 한국 대표 여성가수로 군림하고 있다. 그녀에게 길옥윤은 첫 사랑이자 필생의 음악동지일 것이다. 음악을 통해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졌던 두 사람의 노래 화두는 언제나 사랑이다. 패티김의 대표곡 중엔 '사월이 가면'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패티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길옥윤의 작업송이다. 두 사람은 1958년, 미8군 가수 공연단의 일본 동경 국제극장 공연 때 첫 만남을 가졌지만 처음부터 연정이 싹튼 사이는 아니었다. 1966년 1월, 미국 진출 이후 정상급 스타가수로 거듭난 패티김은 어머니의 병환으로, 길옥윤은 사업실패로 비슷한 시기에 귀국해 방송에 동반 출연하며 운명적 만남을 이어갔다.

그때 4월이 지나면 다시 미국으로 떠날 패티김의 출국 날이 다가오자 길옥윤은 애가 탔다. 이미 사랑의 포로가 되어 있었기 때문. 그는 패티김을 눌러 앉히기 위해 노래 작업에 몰두했다.

봄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셔주던 4월 어느 날 새벽. 길옥윤은 심야에 패티김이 묵고 있던 호텔방으로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패티김에게 전화를 한 그는 작업송 '사월이 가면'을 불렀다. 작곡가 이전에 가수이기도 했던 길옥윤의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진심 어린 사랑고백과 달콤한 멜로디에 패티김은 마음이 흔들려 출국을 포기했다.

두 사람의 결혼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기막힌 사건이 하나 있다. 두 사람은 전방위문공연 후, 군 책임자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타고가야 할 첫 버스를 놓쳐 두 번째 버스를 올랐다. 그날도 비가 많이 내렸다.

헌데 승차했어야 할 앞 버스가 전복을 해 사망자까지 나오는 대형사고가 눈앞에서 벌어졌다. 천운으로 사고를 모면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운명을 느꼈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1966년 12월 10일 워커힐호텔에서 김종필 당시 공화당의장의 주례로 3,000여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패티김과 길옥윤 커플에게는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음반이 한 장 있다. 비매품으로 일반 판매가 아닌 결혼식장에 초대된 하객들을 위해서만 한정으로 제작된 음반이다. 지구레코드에서 비매품으로 제작한 이 싱글음반 속엔 사랑의 감정을 처음으로 고백했던 바로 그 노래 '4월이 가면'과 '사랑의 세라나데' 두 곡이 담겨 있다.

가수 커플의 결혼식 기념음반의 존재는 기록이 전무하다. 스타 가수 커플 1호인 고복수 황금심 그리고 배우이면서 가수를 겸했던 2호 커플 강흥식 전옥 커플이 만약 이 같은 결혼기념 음반을 발매했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로 제작된 가수 커플의 결혼기념 음반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