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제작시스템에 원작 감독이 한국서 직접 촬영하는 새로운 방식

영화 <폰>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 원작이 2002년 개봉했고 리메이크작은 2011년 개봉 예정이니, 거의 10년 만이다.

이제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폰>의 리메이크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할리우드 제작사가 제작하되 원작 감독인 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에서 촬영한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사업 모델인 셈이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양측의 이해가 맞물린 현상이다. 산업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는 더 넓은 시장을 찾았고, 할리우드 제작사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9월 펴낸 <한국영화 미국시장 진출 유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북미 시장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할리우드 영화 35편 중 17편이 아시아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다.

하지만 리메이크가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진출의 교두보로 자리 잡았다고 하기엔 그 실적이 크지 않다. 제작이 완료되어 극장 개봉한 영화는 3편에 불과하다.

과 프로듀서 마크 모건
많은 영화들이 리메이크 계획 발표 이후 표류하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할 뜻을 밝혔던 <올드 보이>도 얼마 전 제작사인 드림웍스가 판권 확보에 실패해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폰> 역시 리메이크 이야기가 처음 나온 2004년부터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마돈나와 가이 리치 감독이 세운 제작사 매버릭스튜디오와 유니버설스튜디오 계열의 포커스픽쳐스 등이 리메이크를 추진하다 중단했다.

결국 제작을 맡은 곳은 임프린트 엔터테인먼트. 최근 제작한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며 주목받고 있는 제작사다.

국내 제작사 미로비전의 채희승 대표가 임프린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프로듀서 마크 모건과 함께 2005년 <샘스 레이크>를 제작한 인연이 결실로 이어졌다. 채희승 대표도 <폰> 리메이크에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폰>은 할리우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이전의 한국영화와 달리, 이 직접 한국에서 연출한다.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고용되어 한국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셈이다. 촬영의 전후 과정은 미국에서 진행된다.

지난 3일 열린 '폰' 할리우드 리메이크 제작발표
이는 일본 감독 시미즈 다카시가 자신의 영화 <주온>을 <그루지>로 리메이크한 방식이다. 시나리오를 영어로 각색한 뒤 할리우드 배우를 기용했고, 할리우드 제작사가 제작을 총괄하되 일본 제작자가 합류했다.

이는 리메이크작의 완성도와 비용 면에서 최선의 효과를 얻기 위한 절충안이다. 우선 미국 감독이 아시아영화의 정서를 소화하지 못해 낳곤 하는 엉뚱한 결과물을 방지하는 의미가 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 '<폰> 할리우드 리메이크 프로젝트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프로듀서 마크 모건은 "원작의 맛을 잃고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리메이크작이 많았다. 원작 감독의 능력을 활용하는 이런 방식은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원작 감독에게 자율성을 주되 할리우드 특유의 효율성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영화제작사 토일렛픽쳐스의 대표이기도 한 이 단지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바뀔 수 있는 계기로써 <폰> 리메이크의 의의를 설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감독에게 너무 많은 역할과 권력이 주어진다. 이는 그만큼 감독의 판단에 따라 제작 기간이나 비용이 상승될 요인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르 영화의 경우 감독이 현장에서 촬영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업화 시스템이 완성도를 높이고 비용은 줄인다. 감독으로서도 더 편하다."

영화 '폰'
영화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행정적 의도도 이번 프로젝트를 뒷받침한다. 제작자 마크 모건은 서울시와 서울영상위원회가 해외 영화의 한국 로케이션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로케이션 투어에 참석했다. 은 "촬영 과정에서의 지원 내용도 논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폰> 리메이크는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의 윈윈 게임이 될 수 있을까. 내년 11~12월 크랭크인해 내후년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미국 관객은 재미로만 평가… 더 자신 있다"

[ 인터뷰]

이번 리메이크를 통해 기존 <폰>을 할리우드 버전으로 개작할 뿐 아니라 업그레이드하려는 욕심이 있을 것 같다.

안병기 감독
2002년에는 예산의 제약으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이번에는 충분한 예산(약 1000만 달러)이 주어지기 때문에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촬영할 때 미국을 비롯한 해외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한국에도 초국적인 공간이 많이 생겨 리메이크 촬영에 적합한 것 같다. 촬영을 한국에서 하더라도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나리오 수정에 대해 미국 제작사가 요청한 사항이 있다면.

원작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지난 주 영어 번역된 스크립트를 받았는데, 이제껏 리메이크를 염두하고 각색한 것들 중 가장 원작과 가까웠다. 원작의 모티프와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다문화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력 구성은 어떻게 되나. 미국 배우를 캐스팅하되 국내 스태프가 참여하는 식인가.

주연 배우는 할리우드에서 캐스팅 중이지만, 한국 배우도 일부 캐스팅하고 싶다는 의사를 제작사에 밝힌 상태다. 스태프 구성을 어떻게 할지는 의논하고 있다.

미국 스태프들이 한국에 출장을 오게 되면 그만큼 제작비가 상승하는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전원 한국 스태프를 고용하면 할리우드 영화와 만듦새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 타깃이 달라지는 셈인데 새로운 관객에 대한 사전 조사는 했나.

공포 영화만 10년 동안 만들었기 때문에 이 장르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들이 상업 영화에도 작품성을 기대하는 것과 달리, 미국 관객들은 상업 영화는 오로지 재미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장르 영화 감독으로서는 오히려 더 자신이 있다. 오컬트적인 표현도 더 마음껏, 과장되게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을 계기로 할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도 있는 건가.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만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만 미국은 부가판권 시장이 워낙 넓어 기회가 더 많지 않나. 할리우드가 마냥 '꿈의 시장'은 아니지만 한국 영화산업이 영세하니 세계로 나가야 한다.

한국영화는 세계에서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고, 좋은 감독도 많다. 누군가 해외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면 한국영화 전체에 더 넓은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