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황보령 SmackSoft 3집 Shines in the Dark2009년 미러볼뮤직 (下)극복의 미덕으로 희망과 빛을 찾는 즐거운 음악여행

황보령은 마치 책을 또박또박 읽는 끊어질듯 이어지는 독특한 창법을 구사한다. 낯설고 이질적인 그녀의 창법은 매끄러운 대중가요의 관습적 창법과는 멀찍한 간극을 두고 있다. 그래서 처음 들으면 낯설고 불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3집에 수록된 12곡들은 들을수록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을 발휘한다.

모든 곡에는 직역이 아닌 외국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의 영어제목이 별도로 달려있다. 절판시킨 초반과는 달리 재반에는 44번이라는 이색적인 번호의 트랙 '한숨(어쿠스틱 버전)'이 추가되어 있다. 황보령은 44, 33, 55 같이 똑똑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한다. 기호에 민감한 뮤지션이란 이야기다.

오랜 공백을 딛고 다시 정규앨범을 낸 원동력은 미국에 있을 때 다음 앨범을 내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 공백기 동안 죽음에 다다른 아픔을 딛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살아나', '비상', '해', '식물펑크' 등을 작업했다. 삶의 경계를 넘나든 고통은 그녀에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애틋함을 더했고 건강한 삶에 대한 희망의 정서를 제공했다. 그래서 2집 이전과는 달리 좋은 음악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를 3집에 쏟아 부었다.

타이틀곡인 1번 트랙 '돌고래 노래'는 묵직한 첼로와 2개의 유리 위스키 잔을 흔들어 얻어낸 맑은 효과음의 충돌을 통해 깊고 어두운 심해로 빠져드는 환각적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12번 트랙에 같은 노래의 테크노 버전을 수록한 것도 이색적이다. 트랜스 테크노 음악에 관심이 많은 황보령은 "미국에 있었으면 테크노 DJ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테크노가 좋은 것은 가사가 별로 없기 때문인데 클래식도 반복적이고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는 것 같아 비슷하다. 그런 이유로 바흐의 음악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해 海 解 GO"는 '해'를 여러 가지 의미로 풀어낸 뛰어난 곡이다. 여기서 영어 GO는 한국어 '해'의 오타다. 황보령 자신이 가장 만족해하는 트랙인 '한숨' 오리지널 버전은 향후 그녀의 음악적 지향점을 예시하는 전형이다. 사실 이 노래는 옥상에서 걸려있는 해먹에 누워서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지하철과 하늘에 무심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느낀 단상을 옮겨 본 곡이다. 잘 들어보면 그녀의 데뷔곡인 '탈진'과 닮은꼴이다. '하늘'이란 가사로 시작하는 것도 그렇고 코드진행도 비슷하다. '해 海 解 GO'는 '탈진'의 업그레이드된 속편 격이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식물펑크'는 난해한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의 모순을 미친 듯 작렬하는 드럼 노이즈를 통해 마치 식물이 펑크처럼 자라는 정글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 노래는 친구의 잠꼬대에서 착안한 노래다.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정서만으로 민요의 느낌을 듬뿍 담아낸 '집으로 가는 길'과 '안녕', '그리운 사람' 역시 황보령표 감성이 고스란히 배여 있는 포크 록 질감의 트랙이다. 특히 6번 트랙 비상(soar)은 하늘로 날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되살려주는 경쾌한 비트가 인상적이다.

황보령은 발표되는 앨범마다 우일신의 면모를 확인시켜준다. 1집보다는 2집이 2집보다는 3집이 더 들을 만하다. 이번 3집 은 극복의 미덕으로 희망과 빛을 찾는 그의 즐거운 음악여행이다. '이단아'로 비칠 만큼 자유롭고 형식파괴적인 외형보다 한결같은 진지함은 황보령 음악의 핵심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슬픈 정서로 노래한 1집, 더욱 공격적이었던 2집과 이번 앨범의 차별성은 삶에 대한 고민이 염세가 아닌 절절한 애정으로 승화되었음에 있다. 또한 황보령=SMCKSOFT의 베이스 정현서, 피아노 박진선의 정규라인업에 한음파의 리드기타 박종근, 신중현 패밀리인 서울전자음악단의 리더 신윤철, 포크의 대모 양희은의 전담 건반주자 장경아의 세션으로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대중음악의 소임 중 으뜸은 위로일 것이다. 그럼 점에서 황보령의 3집은 바쁘고 힘겨운 일상에 지친 현대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소임을 발휘하는 따뜻한 앨범이다. "내 노래가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 있다. 음악이 내게 즐거움과 살아가게 해주는 에너지를 제공해 주고 있듯이."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