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송창식 '밤눈' (1974 유니버샬)밤눈 실제로 보면서 들으면 눈물이 뚝뚝소설가 최인호 노랫말에 송창식의 아름다운 멜로디 최고의 시즌송

계절이 바뀌면 유난히 듣고 싶어지는 노래가 있다. 때가 되면 부활해 끊임없이 우리의 귀를 자극하는 시즌송말이다. 봄비가 내리거나 햇살이 강렬하고 낙엽이 지고 요즘처럼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어김없이 듣고 싶은 반가운 손님이다. 이처럼 시즌송은 그 계절이 올 때마다 두고두고 회자되며 영원히 추억으로 기억된다. 서랍 속에 고이 넣어뒀다가 문득 그리워질 때 꺼내보고 싶은 오래된 사진처럼 말이다.

시즌송의 대표주자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일 것이다. 1982년 발표된 이래 지금까지 10월31일이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와 TV전파를 타고 울려 퍼지는 불후의 명곡이 됐다. 하루 동안 무려 100회 이상의 전파를 타며 대중가요로는 단일 국가 내의 단일곡 중 최다 일일 방송곡이라는 타이틀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다. 예년보다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전국이 눈꽃 세상을 이루면서 '겨울 노래'들이 더욱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오래된 추억의 노래부터 최근의 신곡에 이르기까지 계절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즌송은 무수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 시절 들었던 노래는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가슴 속에 남는다. 시즌송도 세대 간 간극은 있다.

겨울시즌 송만 해도 젊은 세대들은 임재범& 테이가 함께 부른 '겨울이 오면'이나 박효신의 '눈의 꽃'을 선호하고 8090세대들은 이정석의 '첫눈이 온다구요'. 조관우의 '겨울이야기',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 조하문의 '눈 오는 밤', 푸른하늘의 '겨울바다'를, 7080세대들은 남성듀오 4월과 5월의 '겨울바람', 이종용의 '겨울아이', 현경과 영애의 '눈송이' 같은 노래를 즐겨 듣는다. 이처럼 세대별로 좋아하는 겨울시즌 송은 제각각이지만 겨울에 들어야 더욱 제격이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겨울노래의 키워드는 '눈'이다. 실제로 대중가요에는 눈을 주제로 한 명곡들이 무궁무진하다. 최근 서영은에 의해 리메이크되고 예능프로 여걸6에 등장해 인터넷 인기검색어 1위에 올랐던 조하문의 '눈 오는 밤'은 빠뜨릴 수 없는 겨울명곡이다. 하지만 송창식의 '밤 눈'이야 말로 최고의 겨울시즌 명곡이라 평해도 무방하다. 송창식의 창작곡들로 포진된 1974년 세 번째 독집에 발표된 이 노래는 길고 지루한 겨울밤에 친구들과 어울리다 온 세상을 하얗게 채색하는 밤눈을 실제로 보면서 들으면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서정적인 노래다.

'밤눈'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내가 아는 한 음악친구는 서울 정릉의 친구 집에서 밤 새워 야외전축을 틀며 놀다가 우연히 새벽 창밖 너머로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때마침 송창식의 '밤눈'이 생각나 LP를 틀었는데 노래를 듣던 모든 친구들이 하나같이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그때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도 노래를 듣고 운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송창식의 '밤 눈'은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워주는 카타르시스의 기능이 놀라운 곡이다.

송창식에게도 '밤눈'은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남성듀오 트윈 폴리오 이후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입대영장을 받고 제대 후에도 가수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소설가 최인호(음반에는 최영호로 표기되어 있다)가 통기타 가수들에게 노랫말을 줘서 곡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송창식에게 배당된 노랫말이 바로 '밤눈'이었다. '한밤중에 눈이 나리네. 소리도 없이…'란 최인호의 서정적인 노랫말도 근사했지만 허탈하고 답답한 젊은 날의 솔직한 심정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담아낸 송창식의 진심은 많은 젊은 영혼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켰다.

통기타 가수인생을 끝맺겠다고 마음먹고 만든 노래 '밤눈'에 대해 송창식은 "다시는 만들 생각도 없고 그렇게 부를 수도 없는 노래"라고 고백했다. 그만큼 가식 없는 진정성이 담긴 노래였기에 지금껏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애창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폭설과 한파가 지루하게 계속되는 이 겨울, 앞으로 내릴 눈이 새해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보다는 휴식과 평온과 낭만의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