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명반·명곡] 미연&박재천 Dreams From The Ancestor2008년 오디오가이 (下)전통을 자신들만의 현대적 재즈어법으로 해석 기념비적 연주력 보여줘

되지도 않은 퓨전국악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기존의 퓨전국악이 보여준 한계는 음악적 고민 이전에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단순히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만 음악을 섞었기에 깊이가 없다.

앞으로 퓨전국악을 시도하는 뮤지션들은 자기 자신이 아는 음악 아우라에 대해 한번쯤 의심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미연&박재천 부부의 이번 앨범은 퓨전국악이 가야 할 하나의 모범 정답의 제시일지도 모르겠다.

판소리를 록에 접목했던 '사주팔자'를 능가하는 더욱 확대된 스케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낸 이번 앨범에 대해 당사자들은 "익숙하지도 않은 장단에 음악도 전위적 색채가 있어 대중이 즐기기엔 벅차기에 텍스트적으로만 생각한다."고 겸손해 한다. 사실 이 앨범은 예정된 중국공연이 중국 스촨성 지진으로 취소된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4개월의 연구 결과다.

이 앨범은 장르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전위적인 요소가 있지만 심플한 구석이 많고 프리 재즈로 보기엔 구성이 정갈하다. 그렇다고 팝으로 보기엔 애드립이 너무 재즈적이다.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YES나 오아시스 같은 70년대 해외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들이 구사했던 자유로운 애드립의 진보적인 느낌이랄까. 구조적으로는 호흡이 긴 점에서 서구적 정서가 아닌 동양의 정신이 배어있는 새로운 음악이다.

이들은 전통을 존중하되 그 틀 속에 매몰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현대적 재즈어법 해석으로 기념비적인 연주력을 제시했다. '조상이 남긴 꿈들'이라 명명된 앨범의 타이틀은 카피라이터 재능이 돋보이는 재즈평론가 김현준의 작품이다. 타이틀 속에는 서양의 왈츠와는 비교가 안 되는 놀랍도록 과학적이고 완벽한 시스템의 '49박'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장단을 치며 즐긴 조상들의 장단에 빚을 갚는다는 마음을 담았다.

사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긴 장단은 보존 자체도 힘겨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정형화된 리듬에 애드립을 쳐 음악적 발전을 시도한다는 것은 무한도전에 가까웠다. 실제로 박재천은 한 패턴 시작할 때마다 징을 쳤고 계속 숫자를 세면서 연주를 힘겹게 했다고 한다.

전통 장단에 재즈와 현대클래식의 어법으로 작곡을 입힌 '그것을 꿈이라 말하지 말라' 등 롱 버전의 네 트랙은 멜로디를 이끄는 미연의 피아노와 박채천의 타악기 듀오로 구성되었다. 시종 풀고 조임을 반복하는 자유로운 즉흥성으로 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수록곡들은 오채질굿, 자진모리, 굿거리, 칠채 같은 박제되고 소멸된 전통 장단을 이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소리로 둔갑시켰다.

가장 대중친화적인 두번째 트랙 '이어도는 땅 위에 있다'는 1992년에 박재천이 창작해둔 곡이다. 그가 곡의 패턴을 만들었다면 슬프고 서정적 이미지는 아내 미연이라는 탁월한 뮤지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새는 내 안에 있었다'는 6년 전에 썼지만 연주가 귀찮아 포기했던 곡이라 한다.

사실 이 앨범은 빛나는 음악적 성과에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소위 저주받은 걸작으로 발매와 더불어 운명이 정해졌다. 외국에서는 "마치 먼 나라의 파노라마를 보는 오디세이 같다. 음악유산이 대단한 한국은 이미 오래 전에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민족임에 분명하다"고 극찬을 하고 있건만. 대단히 슬픈 현실이다.

과거가 재즈 시대였다면 지금은 팝 세대가 점령한 시대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뮤지션들 대부분 과거의 팝에 대해 강렬한 그리움을 드러내는 점이 공통적이란 사실이다. 그건 이 시대의 공감대가 추억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전위음악은 정신은 살아있지 마음과 정서를 움직이기엔 2% 부족하다. 미연& 박재천 두 사람 역시 아방가르드, 프리재즈, 전위에 얼굴을 가리고 팝적인 그리움을 마음에 숨기고 있다.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중화! 우리 모두가 열광했기에 모두가 그리워하는 팝 세대의 단순한 정서를 어떻게 복잡한 아방가르드성향의 음악에 접목하느냐는 이들이 풀어야 할 음악적 숙제이자 크로스오버 장르를 사랑하는 모든 대중의 꿈이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