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마크 웹 감독의 평범한 모든 사랑을 위로하는 비범한 '로맨틱 새드 코미디'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평범하고도 비범한 단어가 또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을 가진다. 그래서 평범하다. 동시에 누구도 완벽한 '사랑'을 가졌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범하다. 마크 웹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500일의 썸머>는 사랑의 속성과 꼭 닮았다. 영화가 시작되면, 중후한 내레이션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이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영화 중 최소한으로 잡아도 절반 이상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다. 이야기로 치면 <500일의 썸머>는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뒤이어 덧붙는 설명. "하지만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지만, 사랑이야기가 아니라고? 이 점이 <500일의 썸머>만의 비범함이다.

여기 '톰'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있다. 이름만큼이나 평범하다. 카드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그의 눈에 어느 날 한 여자가 콕 박힌다. 그녀의 이름은 '썸머'. 이름만큼이나 특별하다. 썸머는 언뜻 보기엔 평범하지만, 기이할 만큼 주변의 관심과 호감을 독차지한다.

톰도 썸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는 썸머가 운명이라 믿는다. '운명'의 증거는 기껏해야 같은 가수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뿐이지만. 소심한 성격에 며칠째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읽으며, "그녀는 나를 좋아해. 아냐. 그녀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라며 '혼자 연애' 증후군에 빠져있던 톰은 회사 회식자리에서 결국 '고백 비슷한 고백'을 한다.

"노래는 못한다"고 빼던 썸머가 가수 뺨치는 솜씨로 "슈슈슈~슈슈슈슈~슈거 타운"을 불러제끼는데, 안 넘어갈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썸머는 '고수'(라고 쓰고 '나쁜 년'이라 읽는)다. "나는 누군가의 '무엇'이 되는 삶을 상상해 본 적 없어. 사랑은 모두 환상이야"라며 애매하게 방어막을 쳐놓고는, "나 좋아한다는 거 정말이야?"라고 묻고, 다음날 복사실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선사하는 썸머에게 사로잡혀 톰은 애간장이 녹는다.

이쯤 되면, 대충 감이 온다. 키스도 오케이, 섹스도 오케이, "이상해. 이런 이야기를 한 건 네가 처음이야"라며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부담스럽게 왜 이래? 우린 친구잖아. 처음부터 그렇다고 했잖아"라며 심장을 찌르는 미워할 수 없는 악마.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귀었다"는 영화의 카피문구처럼, 우리는 모두 '썸머'라는 이름의 '나쁜 X'과 연애경험을 통해, 톰이 앞으로 얼마나 속이 문드러질지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완벽한 이별을 고하는 그 순간까지도 '운명적'으로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낸 썸머 덕에 톰은 가혹한 '여름의 사랑'을 제대로 경험한다.

처음부터 당당하게 '러브스토리가 아니'라고 밝혔듯이,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는 열병 같은 '여름'을 겪은 한 청년의 달뜨고 쓰라린 '회고담'이다. 이 알싸한 '로맨틱 새드 코미디'의 가장 큰 장점은 지극히 평범하면서, 매우 독창적이라는 사실이다.

단 한 번이라도 '연애'라는 걸 해 본 경험이 있다면, 톰에게 감정이입을 안 할 수가 없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을 강조하기 위해 특별한 해프닝을 불러들이지만, <500일의 썸머>는 모든 이들의 현실적인 연애 일상으로 해프닝을 대체한다. 하지만 지루할 새가 없다. 최소한 10번은 톰과 함께 "내가 미쳤지!"라며 무릎을 치고 싶은 생생한 에피소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하지만 톰이 썸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천국을 경험하고, 갈등을 겪고, 지옥에 떨어졌다가, 겨우 회복됐나 싶을 때 다시 썸머를 만나고, 완벽하게 차일 때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전개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절반으로 줄었을지도 모른다. 마크 웹 감독은 톰의 회고를 랜덤으로 들려준다. 실연당한 현재와 열애 중인 과거가 달력을 뒤적이듯 특별한 설명 없이 앞뒤로 오간다. 자칫 영화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10분쯤 보고 나면, 이 독특한 방식이 얼마나 영리한 선택인지 실감할 수 있다.

<500일의 썸머>는 끝난 사랑을 다룬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더라도, 실연 후를 한 번 떠올려 보자. 골방에 틀어박혀 끝난 사랑을 시간 순으로 복기하는 사람은 없다. 원래 끝난 사랑이란 멀쩡히 길을 지나다 그 사람과 함께 듣던 음악이 흘러나올 때, 밥을 먹다가 그 사람이 좋아하던 반찬을 집어들 때, 잠자리에 누워 뒤척일 때 문득문득 떠올라 날카로운 파편처럼 가슴을 헤집는다. 진행 중인 사랑은 시간 순이지만, 끝난 사랑은 어쩔 수없이 랜덤이다. <500일의 썸머>는 끝난 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형식으로 표현한다.

영화는 연애경험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에 집중하는 대신 감정에 집중한다. 뮤지컬과 애니메이션, 고전 명작을 패러디한 영화 속 영화, 일기 형식의 홈 비디오,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 재기발랄한 장치를 사용해 톰의 환희와 희열, 고통과 절망을 표현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어떤 장치보다 훌륭한 건 톰 역의 조셉 고든 래빗의 연기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사람의 달뜬 미소와 썸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고 써 있는 두 눈이 점점 생기를 잃고 퍼석해질 때, 관객의 마음에도 멍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 만인의 미워할 수 없는 '나쁜 X'으로 등극할 썸머 역의 주이 드 샤넬의 연기도 훌륭하다. 영화는 "썸머는 왜 톰을 떠났나?"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주이 드 샤넬은 썸머를 통해 '떠난 사랑'의 모호함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상대의 본심을 떠보면서 절대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고, 과도하게 솔직하고, 크게 뜬 눈을 살짝 찡그리는 것만으로 상대를 움직이는 '나쁜 X'의 진수는 물론이고. 신인 감독 마크 웹은 아마도 자신의 경험담을 98% 쯤 녹여 만들었을 데뷔작 <500일의 썸머>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확인시켰다.

<500일의 썸머>는 마지막까지 사랑스럽다. 영화는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톰'들에게 속삭인다. "걱정 마, 사랑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그저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어설프게 우리를 위로하는 게 아니다. 다른 현실적인 에피소드처럼, 이 역시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여름의 사랑'이 있다. 입술을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 불볕 같은 사랑. 여름이 결실의 계절이 아닌 것처럼, 여름의 사랑은 바짝 마른 나만 남기고 떠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열매가 여름의 뜨거운 볕을 양분 삼아 속을 채워가듯, 우리는 뜨거운 '여름의 사랑'을 겪으며 조금씩 단단해진다. 또 하나 여름이 지나가는 게 내 탓이 아니듯, 여름의 사랑이 떠나는 것도 나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니 여름의 사랑을 두려워하지 말자. 톰이 '썸머'를 보내고 '어텀'을 만났듯, 여름의 사랑이 가면 가을의 사랑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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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은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