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샘 멘데스 감독의 행복 찾아 길을 떠나는 겁 많은 어른들을 다독이는 다정한 시선

영국 감독 샘 멘데스의 장기는 '회칼질'인 줄 알았다. 그의 요리감은 그럴 듯해 보이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통 부조리의 균열로 가득한 현실이다. 그는 날카롭게 벼린 시선을 균열의 틈새에 꽂아 넣고, 포를 떠서 펼치듯 부조리의 실체를 가시화시켰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그린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1999), 한국에 개봉하진 않았지만 이라크 파병된 젊은 군인들이 광기에 휩싸이는 과정을 담은 블랙코미디 <자헤드>(2006)를 보면 샘 멘데스 감독의 칼질 솜씨를 알 수 있다. 신기에 가까운 재주가 드러난 건 (개인적으로 샘 멘데스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다.

무료하고 심드렁한 현실을 가식적인 행복으로 위장한 부부의 삶에 파고든 감독은 '회칼질'의 끝을 보여준다.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의 마지막 아침 식사 장면을 떠올려보자. 평온한 식탁에 마주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은 어떤 스릴러 호러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범접하지 못할 만큼 숨 막히고 소름끼친다. 단순히 "권태로운 중산층 가정의 붕괴"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끝내 손에 넣지 못한 미지의 것에 대한 갈구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슬픈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샘 멘데스 감독은 '부부' 즉 유일하게 선택으로 생성된 가족관계를 대상으로 이 슬픈 본성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성이 있는지 확인시켜왔다. <아메리칸 뷰티>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뒤를 잇는 '샘 멘데스의 부부 3부작' <어웨이 위 고>를 기다린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어웨이 위 고>는 깜짝 놀랄만한, 동시에 기분 좋은 반전이다.

"우리는 루저야?" 툭하면 난방이 끊기는 작은 집 소파에 앉아 배가 남산만한 베로나(마야 루돌프)가 남자친구 버트(존 크라신스키)에게 묻는다. 이 자조적인 물음은 <어웨이 위 고>의 주인공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단조로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해부학 일러스트를 그리는 베로나와 보험 텔레마케터인 버트.

두 사람은 30대 중반이지만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베로나가 임신사자 부유한 버트 부모님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기 위해, 그 근처로 이사해 살고 있다. 넉 달 뒤엔 아기가 태어나는 상황. 너무 낙천적인(그래서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버트는 마냥 신났지만, 베로나는 현실적인 고민에 배보다 머리가 더 무겁다.

그러단 어느 날, 버트의 부모는 그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알린다. 2년 간 외국에서 살기로 결정했다는 것. 시어머니 글로리아(캐서린 오하라)는 베로나에게 "세입자를 찾지 못하면 너희가 여기서 살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비용을 두둑이 내겠다는 세입자가 나타나자 버트와 베로나는 안중에 없다.

버트 부모의 부재로 이젠 그 곳에서 살 이유가 없어진 두 사람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가장 좋을 '어딘가'를 향해 떠나기로 결심한다. 매인 직장도 없고, 살림살이도 단출하니 그저 몸만 떠나면 된다. 드넓은 미국 땅을 다 돌아볼 순 없으니, 그들은 '최고의 이웃'이 되 줄 지인들이 사는 동네를 후보로 삼는다.

<어웨이 위 고>는 우리 시대 30대 버전의 동화 <파랑새>이자 <오즈의 마법사>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태풍에 휩쓸려 집을 떠난 것처럼, 버트와 베로나는 버트 부모의 '폭탄 선언'에 밀려 길을 떠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뤄준다는 '오즈'를 찾아 나선다. 버트와 베로나의 '오즈'는 아기를 낳아 키우기 좋은 최적의 동네. 하지만 그 곳은 어딘가에 분명히 있다지만, 아무도 본 적은 없다는 '파랑새' 같다. 30대 중반의 나이, 몸은 다 큰 어른이지만 속은 어린애와 마찬가지인 그들의 여정은 난관의 연속이다.

난관을 만드는 건, 별난 사람들. 버트와 베로나가 찾아간 지인들은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비교도 안 될 만한 '콤플렉스 덩어리'들이다.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에 영합해 딸에게 "레즈비언처럼 걸어보라"며 킬킬대는 베로나의 옛 상사, 이상적이고 자유로운 가족을 만들겠다며 "자녀들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 게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버트의 옛 친구,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입양하는 데 열을 올리는 베로나의 옛 친구 부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내 때문에 울먹이는 무기력한 버트의 형은 현대 가족이 품고 있는 고민을 극대화시킨 콤플렉스로 읽을 수 있다.

<어웨이 위 고>는 이전의 '부부영화'와 달리 이 콤플렉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이 영화가 목적했던 건 문제를 헤집고 도려내는 게 아닌 듯하다. 주인공 캐릭터를 보면 확실해진다. 얼핏 보면 '루저' 같지만, 버트와 베로나의 관계는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적이다. 그들에게 소통의 부재나 권태 따위의 현대 부부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사회적인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할 뿐이지, 두 사람은 마치 동화처럼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샘 멘데스 감독은 버트와 베로나를 '모범예시'로 보여주며, 소위 세상의 기준으로 행복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이야기한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파랑새>의 교훈처럼 "행복은 네 안에 있다"며 우리 시대의 '버트와 베로나'들에게 "우린 루저가 아니"라고 다독인다. 말만 들으면 나태한 결론 같지만, 샘 멘데스가 잡아낸 감성적인 영상과 다정한 포크 음악이 함께하기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칼'을 내려놓자 샘 멘데스 감독은 못 말릴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어웨이 위 고>의 두 사람은 "사랑만 먹고 살아도 배부르다"고 외칠법한 인물이고, 입만 열면 낯간지러운 (종종 낯이 화끈거릴 만큼 격렬한) 사랑고백을 늘어놓는다. 대표적인 고백 하나를 소개하자면 "네 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뚱뚱해져도, 나는 너를 사랑할 거야"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로맨틱한 순간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로의 바람에 "I do"를 반복하는 장면이다. 과격하게 의역하면 "내가 잘할게"쯤 되겠다. 결혼서약에 대한 답으로 "I do"를 외친 이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상대에게 "그렇게 꼭 해줄게"라고 맹세했던가. 30대의 부부관객이라면 잠시 뭉클한 감정이 솟아날 듯하다.

<어웨이 위 고>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의 기찬 연기다. 매우 '현실적인' 외모의 존 크라신스키와 마야 루돌프는 어떤 멜로 영화의 선남선녀 배우보다 흐뭇한 사랑의 순간을 재현한다. 한 영화 속에서 배우들은 '공격수'와 '수비수'로 나뉘는데, 두 배우는 영화 전체의 사랑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는 수비수다.

물론 수비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이 공격수의 활약이다. 특히 버트의 엄마 글로리아를 연기한 캐서린 오하라, 베로나의 옛 상사 릴리 역의 앨리슨 제니퍼, 버트의 어린 시절 친구 NL 역의 매기 질렌홀의 눈에 콕 박히는 '밉상 연기'가 최고다. 그 중 MVP를 꼽으라면 단연 매기 질렌홀이다. <어웨이 위 고>의 관객이라면,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박혜은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