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배철수의 음악캠프> 등 아날로그적 감성 자극

KBS '전국노래자랑'
강산이 몇 번씩 변할 동안 우리의 감성이 그대로 남아있을까.

최근 방송가는 강산이 두세 번씩 변할 동안 방송을 그대로 유지해 온 장수 프로그램들로 화제다.
더욱 놀라운 건 장수 프로그램일수록 장수 진행자가 많다는 것. 이들이 냉정할 만큼 성과에 집착하는 방송가에서 오래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980년 11월 9일. KBS <전국노래자랑>이 첫 방송을 시작한 날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이날 이후 일요일 낮 12시면 어김없이 안방극장을 찾아오는 프로그램이 됐다. <전국노래자랑>은 지상파 방송 3사 중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얼마 전 1,505회를 맞았다.

그간 무대에 선 출연자만 3만여 명이며, 연인원 관객만 줄잡아 1000만 명에 이른다. <전국노래자랑>이 3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전국노래자랑>의 채형석PD는 "무한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통했던 게 큰 비결이었다"고 말한다.

채 PD는 "<전국노래자랑>은 시청자들에게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자신들보다 조금 못한 것 같은 출연자들에게 더 다가간다"며 "너무 잘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 나보다 못한 서민들의 사실적인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보인 것 같다. 조금은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것이 30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다"고 전했다.

KBS '황정민의 FM대행진' 라디오
특히 <전국노래자랑>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국을 돌며 각 지역에서 예심을 거쳐 출연자를 선별한다. 서울의 경우 예심에서만 600여 명, 지방의 경우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심에 참여한다. 제작진은 직접 각 지역을 순회하며 일대일 방식으로 출연자들과 만남을 갖는다.

제작진이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민들의 참여율이 높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이 많지 않으면 질이 떨어지는 방송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차원적인 진행방식을 30년간 고수하고 있다.

1988년 이후 22년 간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으로 활동한 사회자 송해 씨 역시 아날로그적인 고집을 이어왔다. 그는 한 지역에서의 녹화가 정해지면 미리 그 곳을 찾아 예심을 통과한 출연자들을 직접 만난다. 그 지역의 목욕탕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송 씨는 "녹화를 하기 전 그 지역을 먼저 찾는 이유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다. 어떤 사람들이 출연하는지 알아야 그에 맞는 멘트 등을 미리 생각해 놓을 수 있다"며 "목욕탕은 그 지역의 역사나 특색 등을 알아내는 정보교환의 장소라 빼놓지 않는다"고 말한다.

최첨단 정보화시대를 맞은 현실에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방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80년대에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방송가의 뒷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전국노래자랑>만의 끈질긴 방식이 결국 지상파 최장수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결이 됐다.

MBC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 라디오
라디오 만큼 아날로그적인 매개체가 또 있을까. 라디오에서 장수 프로그램을 보면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으로 청취자들을 대하는 게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하기보다는 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1990년 첫 전파를 탄 이후 20년 동안 청취자들과 함께 했다. 7,000회가 넘는 방송을 하면서 최신 유행가보다는 올드 팝의 잔잔한 향취를 전하면서 청취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20년 전 주청취층이 20~30대였으며, 현재 또한 주청취층은 20~30대라는 점이다. 강산이 두 번 변했지만 젊은 층의 감성을 여전히 흡수하고 있다.

배철수는 "평상시에도 젊은 층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TV를 시청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젊은 감각을 유지했던 게 장수 DJ로 이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하지만 꾸준한 관리가 20년의 명예를 지켜온 비결이 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정홍대 PD도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20년 전의 진행방식과 많이 다르지 않다. DJ 배철수와 청취자들의 교감을 가장 큰 틀로 마련해 두고, 아기자기한 코너와 이야기들을 엮어가는 방식이다. 팝의 최신 경향을 듣고 설명하긴 하지만 예전의 것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젊은 층에서 올드 팝의 신청 횟수가 더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언급했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DJ가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경우는 더 있다. MBC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는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다. KBS 라디오 <황정민의 FM대행진>도 올해로 12주년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DJ가 오랫동안 마이크 앞을 지키며 청취자들과 만나왔다.

MBC '배철수 음악캠프' 라디오
황정민 아나운서는 쿨FM 최초로 KBS로부터 '골든 페이스(Golden Face)'를 수여받기도 했다. 황정민 아나운서는 "10년 간 DJ로서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제작진과 유기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코너의 성격, 청취자들의 반응 등을 점검한다. 그래야만 청취자들과 소통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믿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